[조이뉴스24 박진영 기자] "오죽하면 그랬겠냐" 김남길은 '어른'에 대한 질문에 정지아 작가가 했던 이 말을 거듭 강조했다. 내 생각, 내 마음보다 상대를 먼저 헤아릴 수 있는 것. 이는 김남길이 배우로서, 또 사람으로서 꼭 지키려 한다는 신념과도 맞닿아있다. "'내가 무조건 맞다'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라는 김남길은 사람을 대할 때 편협하게 자기 생각만을 강조하지 않을뿐더러, 넓은 마음으로 상대의 말을 잘 받아들이고 공감하려 한다.
1시간도 안 되는 짧은 인터뷰 시간 속에서도 김남길은 어떤 말도 허투루 듣지 않고 적극적으로 대답하고 리액션을 취하며 유쾌하게 분위기를 이끈다. 이는 단순히 말이 많아서가 아니라, 기본적으로 상대를 배려하는 다정다감한 성격이 바탕이 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인터뷰 시간이 얼마 안 남았다"라는 안내 말에도 "아직 충분하다, 7분이면 몇천 마디는 더 할 수 있다"라며 의지를 불태우며 마지막까지 웃음을 주는 그다. 인터뷰에서도 이 정도이니,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그가 주축이 되는 촬영 현장 분위기가 얼마나 화기애애할지 예상 가능하다. 본업인 연기를 잘하는 건 기본이고 매 순간 최선과 진심을 다하는 김남길은 참 좋은 사람이자 어른, 그리고 '우주 최강 배우'임에 틀림없다.
지난 22일 전 세계에 공개된 넷플릭스 시리즈 '도적: 칼의 소리'(연출 황준혁 박현석, 극본 한정훈)는 1920년 중국의 땅, 일본의 돈, 조선의 사람이 모여든 무법천지의 땅 간도에서 소중한 사람들과 삶의 터전을 지키기 위해 하나 된 이들이 벌이는 액션 활극이다.
김남길은 노비에서 일본군으로, 그리고 도적단의 리더로 거듭난 이윤 역을 맡아 서현, 이현욱, 유재명, 이호정, 김도윤, 이재균, 차청화 등과 연기 호흡을 맞췄다. 지난 과오에 고통받으며 힘겨워했던 이윤은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을 지키기 위해 도적이 됐고, 독립군은 아니지만 의로운 일을 행하며 더욱 성장해 나간다.
그 과정에서 김남길은 다양한 액션과 깊이가 다른 감정 열연을 완벽하게 소화하며 다시 한번 '믿보배' 저력을 입증했다. 최근 '도적: 칼의 소리' 뿐만 아니라 이상윤과 함께 한 MBC '뭐라도 남기리'를 통해 인간적인 매력까지 보여준 김남길은 조이뉴스24와의 인터뷰에서 작품을 통해 배운 것, '좋은 어른'의 의미 등을 솔직하게 고백했다.
- 의미 있는 사회공헌 활동도 많이 하고 있고, 작품도 쉼 없이 하고 있는데 얻는 지점이 많을 것 같다.
"매 작품 배우는 것 같다. 작품에서 작가들이 말하고자 하는 주제의식이 있는데, 그것을 만드는 사람들의 사상이나 철학, 세계관을 이해하지 못하면 연기를 할 수 없다. 또 작품마다 다른 사람들을 만난다. 그들을 통해 다양한 생각들을 배우게 된다. 철두철미하게 내 신념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아닐 수도 있구나, 다르게 생각할 수 있다는 것을 배우게 된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사는 것에 대해서 배우들은 많이 열려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 그렇다면 이번 '도적: 칼의 소리'에서 배운 부분은?
"'내 돈을 뺏어가면 다 죽여버려야 된다'(웃음) '뭐라도 남기리'를 하면서 명확하게 느낀 건데, 정지아 작가님이 '오죽하면 그랬겠냐'라고 하신 것처럼, '도적'을 하면서 그런 생각이 든다. 나라를 빼앗으려 하고, 삶의 터전을 빼앗으려 하는 사람을 죽여버려야 한다고 하지만, 왜 그들이 그렇게까지 했는지를 이해해보려 하는 것도 있다. 물론 양보할 수는 없지만, '타협점을 찾아볼 수 있겠다'는 있다. 말로 했으면 안 풀렸을까 하는 논쟁거리 혹은 처음 만났을 때 위험 요소라고 생각해서 총을 쏴서 죽였으면 문제가 없을 텐데, 사람들이 살면서 그것이 문제가 될 거라고 예상하고 사는 사람들이 얼마나 있겠나. 가장 중요한 건 가족, 먹고 사는 것이라 생각하고 사는 캐릭터라 많이 이해하려고 했다."
- '뭐라도 남기리'는 참 따뜻하게 세상과 사람을 바라보는 시선이 존재했다. 김남길 배우에게도 '뭐라도 남기리'가 남긴 것이 많을 것 같다. 특히 방금 얘기한 '어른이란, '걔가 오죽하면'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라는 말이 강한 여운을 안겼는데, 배우가 생각하는 '어른'은 어떤 의미인지 궁금하다.
"저도 감동적으로 촬영했고, 남은 것이 엄청 많다. 뭐가 어른인지는 잘 모르겠다. '뭐라도 남기리'를 찍은 지 얼마 안 됐는데, 계속 그 답을 찾아가고 있다. 사전적인 의미의 어른은, 예전엔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사회적인 위치가 높은 사람이라면 어른일까 라고 생각했다. 이번에 '뭐라도 남기리'를 하면서 좋았던 건 위인전에 나온 사람이나 대기업 혹은 나라를 이끄는 사람들만이 어른인 건 아니고, 또 그들만 존중받는 건 아니라는 것을 느꼈다. '도적'에서도 독립군은 가난한 사람만 되는 건 아니다. 자기가 가진 사회적인 위치에서 최선을 다한 사람들이 모여서 큰 독립군을 지탱한다고 생각하는데, 그런 의미에서 자신의 위치와 역할에서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 어른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좋은 어른이라는 명확한 기준이 있다기보다는 시대와 흐름에 따라 바뀌고 달라지는 것 같다."
- 그렇다면 본인은 '좋은 어른'이라고 생각하나.
"저는 좋은 어른이라고 생각한다. 하하하. 좋은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이다. 문제는 누군가가 내 생각이 정당하다고 생각해서 나를 좋은 어른이라고 얘기를 해주면 좋은 어른인 것 같은데, 좋은 어른이 되기 위해서 자격적인 기준을 맞춰가면서 '나 이 정도면 좋은 어른이지'라고 생각하는 건 위험하다. 요즘 스스로를 좋은 어른이라고 칭하려 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래도 저는 주변에서 (좋은 어른이라는) 얘기를 해준다. 집에 가서 부모님에겐 '내가 최고고 좋은 어른이고 좋은 배우'라고 얘기를 한다. 그러면 부모님이 저를 한심하게 바라본다."
- 부모님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시는 건가.
"제가 부모님께 감사한 건 '내 자식이 제일 예쁘고, 잘났어'로 안 키워주셔서 감사하다. 내가 낳은 새끼라서 제일 예쁘고, 뭘 해도 좋고 내 새끼가 맞다고 생각하지 않나. 그런데 저희 부모님은 아니다. 내 새끼가 제일 못났고 항상 사람들에게 민폐 끼쳐서 죄송하고 '밖에서도 그러는 거 아니지?'라며 걱정하신다."
- 겸손하게 키우셨다는 의미인 건가?
"뒷골목 깡통 차듯이 빵빵 차고 데굴데굴 구르면서(웃음) 방목하셨다."
- 그렇지만 지금 누가 봐도 뭐든 잘하고 있는 '우주 최강 배우'인데, 자랑스럽다는 얘기나 칭찬 같은 건 안 해주시나.
"부모님은 '네가 하고 있는 직업에서 최선을 다하고 잘하는 건 당연한 일'이고 사람으로서 본인들이 생각하시기엔 부족하다고 느끼시니까 그런 것 같다. 어릴 때는 인정을 받기 위해서 작품을 하거나 사람을 대할 때, 비즈니스를 할 때 '엄마 봤어? 좋지?' 이러기도 했다. 그러면 어머니는 그냥 '그래' 그러신다. '유퀴즈'를 볼 때도 단 한 번의 웃음도 없이 보셨다. 어머니는 그런 높낮이가 없다. 좋아도 '그래', 실망해도 '그래' 하신다. 저도 그런 영향을 받아서 좋아도 '어', 안 좋아도 '어' 한다. 그래도 어머니에게 막 '좋지? 잘하고 있지? 다른 아들보다 더 낫잖아', '어릴 때 공부 못하고 말썽 피운다고 했지만 내가 제일 잘살고 있잖아',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라고 하면 그냥 또 '그래'라고 하신다. 얘기가 잘 안 된다. 혼자 막 떠들면 '이제 자'라고 하신다.(웃음)"
- 좋은 어른에 대한 방향성에 대해 생각하는 것이 있나. 스스로 지키는 것이 있다면?
"내가 무조건 맞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번에 이호정, 서현도 그렇고 요즘 현장에서 젊은 친구들과 촬영을 하는 경우가 많은데, 제가 사람을 대할 때 그들이 생각하는 것이나 경험이 틀렸다며 편협하게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런 준비는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요즘은 그렇게 소통을 할 수 있어야 한다. 가끔 호정이가 '선배는 팬들과 그런 자리를 가지고 하는 것이 좋아서 그렇지?'라고 물어본다. '당연히 좋기도 하지만, 힘든데 노력하는 거야'라고 한다. '젊은 친구들과 이 시대의 흐름에 맞춰 발 빠르게 움직이려 하는 거다. 도태되지 않으려고'라고 얘기를 한 적이 있다. 또 '우리는 그들(기성세대)을 이해하려고 하는데 왜 그들은 우리를 이해하지 않느냐는 얘기를 하기도 한다. 그럼 농담처럼 '나는 안 그랬는데 왜 나에게 화를 내'라고 하기도 했지만(웃음). 제 주변의 어느 정도 경력이 있고 삶의 선배라는 사람을 봤을 때 본인이 틀렸다는 얘기를 한다는 것이 자신의 경력이나 살아왔던 모든 것이 무너질 것 같다는 불안함이 있을 거라는 얘기를 한다. '내가 미안해', '내가 잘 몰랐다', '네가 생각한 것이 더 좋은 것 같다'라고 말하는 것도 용기가 필요하다. 뒤에서는 '내가 틀렸구나', '저 친구 말이 맞네'라고 할 수 있지만, 그렇게 인정하는 것이 부끄러울 수 있으니 조금만 기다려 봐도 좋을 것 같다는 얘기를 한 적이 있다."
- 이윤도 그렇고 짠하고 쓸쓸한 캐릭터를 많이 맡아온 것 같은데 힘들지는 않나. 그럼에도 그런 캐릭터에 끌리는 것인가.
"성격이 정반대라 너무 힘들다. 제가 끌리는 건 성장할 수 있는 캐릭터와 그 아픔을 주변 사람에게 치유를 받고 완성형이 되어가는 캐릭터다. 들뜨고 하이텐션으로 날아다니는 캐릭터 안에서도 도움을 받지만, 아픔이 있는 사람들은 주변 사람들이 있어도 어두운 기운에 힘들고, 주변 사람들도 힘들어한다. 그런 성향이 있다고 해도 의지적으로 치유하고 성장하는 걸 보여주는 캐릭터에 끌린다. 사람뿐만 아니라 모든 것이 성장할 수 있는 여지가 있을 때 연기하는 것이 좋다."
- '뭐라도 남기리'에서 만난 시골 아이들이 티빙 '아일랜드'를 봤음에도 불구하고 못 알아봤지 않나. 그때 어땠는지 궁금하다.
"저는 그런 경험이 많다. 밖에 나가서도 그 캐릭터를 그대로 하지 않으면 모른다. 그런데 그게 배우로서는 장점이다. 예전에 사람들에게 알려지기 전에는 뭘 해도 각인이 안 되는 것 같아서 단점이라고 생각한 적도 있다. 하지만 각인이 되고 나면 거지 역할이면 거지 옷을 입었을 때 완전히 거지가 될 수 있고, 왕 역할을 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왕처럼도 보일 수 있다. 도화지 같은 색깔을 가졌다는 의미다. 그래서 선배들은 '괜찮아. 특징이 없다고 생각하지 마. 그게 좋은 거야'라고 해주셨다. 그리고 원래 제가 초통령이었다. 그런데 '아일랜드'는 좀 실망스러웠다. '선덕여왕', '열혈사제' 등은 초등학생들이 지지층이었는데, 제 지지층이 무너진 것 같았다.(웃음) 분발해야겠다. 그래도 좋았던 건 시골에는 아이들이 없다. 애들이 있다는 건 큰 자산이다. 사람들을 만나 보니 그렇더라. 그래서 좋았고 고마웠다. 내가 나라를 운영하는 사람은 아니지만, 그렇게 애들이 뛰어놀고 하는 것이 정말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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