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이뉴스24 박진영 기자] 이번엔 연극 무대까지 접수했다. 엄청난 대사량과 1인 2역의 감정 변화를 탁월하게 소화해냈다. '기대'를 '확신'으로 바꾼 손우현의 연기 변신엔 한계가 없음을 제대로 확인한 '테베랜드'다.
지난 6월 28일 개막된 '테베랜드'는 아버지를 살해한 죄로 무기징역을 선고받아 감옥에 수감 중인 마르틴, 그의 이야기를 담은 연극을 준비하는 극작가 S, 그리고 마르틴 역으로 무대에 오르는 페데리코에 관한 이야기를 다룬 작품이다. 2013년 우루과이 초연 이후 영국, 미국, 이탈리아 등 16개국에서 공연되며 전 세계적으로 작품성과 대중성을 인정받았다.
이번 한국 초연엔 이석준, 정희태, 길은성이 극작가 S 역을, 이주승과 손우현, 정택운이 마르틴과 페데리코 역을 맡았다. '그을린 사랑'으로 제56회 백상예술대상 연극상을 수상한 신유청이 연출자로 나섰다.
원형 무대 위 감옥 안에는 농구 골대와 책상으로 두 개의 공간이 마련됐다. 공연 시작 전 마르틴 역 배우들은 농구를 하면서 관객들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농구는 마르틴이 감옥 안에서 유일하게 자율적으로 행하는 취미로, S와의 대화 소재가 된다. 그리고 마르틴이 쓴 농구 리스트는 S가 마르틴의 재능을 처음으로 확인하게 되는 요소다.
극은 별다른 장면 전환 없이 S가 전하는 이야기, 그리고 S와 마르틴, S와 페데리코의 대화를 통해 흘러간다. S와 마르틴은 철창을 사이에 두고 멀어졌다 가까워지기를 반복한다. 또 CCTV를 통해 관객들이 실제 감옥을 지켜보는 듯한 느낌을 주기도 한다. 오이디푸스 신화를 비롯해 다소 어려울 수 있는 대화가 이어지기도 하지만, 170분 동안 전혀 지루함이 느껴지지 않는 건 이 같은 공간이 주는 긴장감과 농구공, 묵주, 사진 등 탁월한 소품의 활용, 시간이 흐를수록 미세하게 달라지는 인물들의 감정선 등이 유연하게 잘 조합이 됐기 때문이다.
특히 S가 1막 마지막에 마르틴의 농구 리스트를 한 글자도 빠짐없이 줄줄 읽은 후 마지막 '휴식시간'을 외치자마자 인터미션이 되는 순간은 짜릿함을 느끼게 한다. 이에 객석에선 감탄과 박수가 자연스레 터져 나온다. 그 정도로 '테베랜드'는 "이걸 다 외운다고?"라고 놀랄 정도로 엄청난 대사량을 자랑한다. 등퇴장이 없는 2인극에 1인 2역으로 전혀 다른 두 인물의 감정선까지 담아내야 하는 만큼 배우의 역량이 굉장히 중요하다.
2018년 '달걀의 모든 얼굴'에 이어 '테베랜드'로 두 번째 연극 도전에 나선 손우현은 그간 다양한 작품을 통해 갈고 닦은 연기 내공을 마르틴과 페데리코에 쏟아낸다. 별다른 소품이나 외형 변화 없이 두 인물의 차이를 표현해야 하기에 더욱 섬세한 연기력이 필요한데, 손우현은 말투와 표정, 눈빛만으로도 전혀 다른 인물을 완성하며 관객들의 마음을 꽉 움켜쥔다. S를 마주 보고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는 과정에서 혼란스럽고 복잡한 심경으로 인해 격앙된 감정을 폭발하거나 사건 당시를 재연하는 장면은 숨 쉴 수 없는 몰입감을 선사한다.
정확한 발음과 부드럽지만 강단이 느껴지는 말투, 상대를 집중시키는 목소리 등 손우현의 배우로서의 강점은 이번 '테베랜드'에서도 빛이 난다. 그렇기에 긴 시간 엄청난 대사를 쏟아내도 어렵지 않게 마르틴과 페데리코의 이야기를 따라갈 수 있다.
상대 배우와의 호흡 역시 일품이다. 쫄깃한 텐션 속 서서히 서로에게 마음의 문을 열어가는 과정이 설득력 있게 그려지다 보니 마지막 그들의 변화된 모습이 더욱 뭉클한 여운으로 다가온다. 여기에 평소 운동신경이 좋기로 유명한 손우현의 수준급 농구 실력을 보는 재미 또한 쏠쏠하다. 170분이 전혀 아깝지 않은 '테베랜드' 그리고 손우현의 기분 좋은 재발견이다.
'테베랜드'는 9월 24일까지 충무아트센터 중극장 블랙에서 공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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