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이뉴스24 김동현 기자] 어느 분야에서나 일본과 경쟁하면 '라이벌'이 된다. 스포츠라면 더 그렇다. 특히 '내셔널리즘'이 가장 강하게 충돌하는 축구대표팀 경기라면 더 그렇다. 그 유명한 "왜놈(일본)'한테 지면 '현해탄(대한해협)'에 투신하라"는 말도 축구에서 비롯됐다. 그만큼 축구 한일전은 모두의 관심을 받았다.
하지만, 최근 들어서는 그 의미가 점점 희미해지고 있다. 한국은 일본을 여전히 넘어야 하는 라이벌로 여기고 있지만, 아시아 축구를 벗어나 세계 무대와의 격차를 좁히기 위해 탈아(脫亞)를 지향하는 일본 입장에서는 이란, 호주, 사우디아라비아 등과 함께 경쟁자 중 하나로 인식하는 경향이 짙어지고 있다.
정말 그럴까, '조이뉴스24'는 궁금증을 풀기 위해 국내 인터넷 매체, 신문 최초로 지난 9월 27일 일본 도쿄의 일본축구협회(JFA 하우스)에서 다시마 고조 회장을 만났다. 한국 축구에 대한 인상부터 세계를 향하려는 일본 축구의 정책까지 다양한 이야기를 가감 없이 들어봤다.
한국과 일본의 관계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라이벌'일까. '친구'일까. 참으로 애매하다. 경쟁하고 서로 미워하는 사이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마냥 포용할 수 없는 사이 속에서 한일관계는 현재에 이르렀다.
세계 제2차 대전 종료 후 한국이 일본에 가지는 감정은 굉장히 격정적이었다. 식민지배라는 상처는 제법 깊게 파인 흉터로 남은 탓이다. 이 상처를 치유하고자 축구가 동원됐다. 한국이 축구에서 일본을 꺾는 것은 어떤 국가적인 '미션'으로 설정이었다. 앞서 소개한 '현해탄(대한해협) 투신' 발언도 분명 이러한 발상에서 비롯됐다.
두 팀의 결과는 확실했다. 한국이 우위에 섰다. 87번을 맞붙은 두 나라였지만 41승32무14패로 압도적으로 한국이 우세하다. 한국이 축구에서만큼은 일본에 당연히 이긴다는 정서가 깔려있다.
그러나 2000년대 이후 한일 축구 지형도에 변화가 생겼다. 한국은 일본을 상대로 5승 7무 4패를 기록 중이다. 지난해 12월 일본서 열린 동아시아 축구연맹(EAFF) E-1 챔피언십에서 4-1 승리를 거두기 전까진 4승 7무 4패, 백중세다. 지금까지의 압도적이었던 전적과는 확실한 차이가 있다.
한국의 실력이 떨어진 것은 아니다. 일본이 더 강해진 것뿐이다. 일본은 협회 차원에서 국가대표를 강하게 만들겠다는 확실한 계획이 있었다. 지역 밀착을 기반으로 한 프로 리그 설립, 이 리그를 통한 축구 저변 확대가 곧 축구 국가대표의 성장으로 이어진다고 믿었다. 뚜렷한 목표는 결국 일본 축구의 발전으로 연결됐다. 다시마 고조 회장은 "선대의 확고했던 목표가 결국 일본을 강하게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단순히 이러한 내적 발전만이 일본을 강하게 만든 것은 아니다. 다시마 회장이 꼽은 일본이 성장한 또 다른 이유는 바로 한국이다.
그는 "지금이야 라이벌 의식을 가진다고 하지만 과거의 한국이라면 우리를 라이벌로 봐주지도 않았다"고 호탕하게 웃었다. 그러면서 "한국은 더욱 강해져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라이벌이 더욱 강해져야 한다니, 쉽게 이해가 되지 않는 말이다.
다시마 회장은 "한국은 끊임없이 이기는 팀이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아시아 축구 전체가 끌어 오르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돼야만 일본도 한국을 넘고 싶다는 생각을 끊임없이 가질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한국은 동북아에서 늘 최고여야 한다. 일본은 그걸 쫓아가고 또 (다른 나라에) 쫓기는 것을 목표로 해나가면 된다"고 덧붙였다. 즉 한국을 넘고자 하는 마음이 일본의 또 다른 성장 원동력이라는 뜻이었다. 경쟁의 순기능이다.
이러한 건강한 경쟁 그리고 교류는 사실 유소년 분야에서는 꾸준히 이뤄지고 있다. 특히 최근 예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질적·양적인 성장세가 엿보인다. 한일 대학 선발전인 '덴소컵' 등 전통적인 대회부터 시작해서 제주 국제 유소년 대회나 각종 유소년 대회를 통해 한국과 일본은 유소년 카테고리서부터 친구이자 라이벌로서 꾸준히 관계를 맺어가고 있다.
대한축구협회(KFA)와 JFA의 협업은 물론 K리그와 J리그가 힘을 합쳐 유소년 대회를 적극적으로 지원하는 것도 한몫하고 있다. 이러한 교류는 어린 세대들에게 두 나라의 문화를 이해시키는 것은 물론 축구 발전까지 도모할 소중한 기회다.
다시마 회장도 한국과의 축구 교류에 대한 이야기를 빼놓지 않았다. 그는 "교류는 지금도 활발히 하고 있다. 여름엔 다양한 대회를 하기도 하고 또 많은 팀이 서로의 나라를 오가고 있다. 이런 교류는 확실히 예전보다 많아졌다"고 말했다. 국가대표 축구선수로 뛰었던 적이 있는 그이기에 할 수 있는 말이다.
덧붙여 "이러한 교류를 통해 우리도 많이 배우고 있다"면서 "대학 정기전 등은 물론 더 작은 단위의 분야의 축구 교류도 꼭 했으면 한다. 우리는 한국과의 교류를 늘 바라고 있다. 뭐 지금은 꽤 많은 한국 소년팀들이 일본에서 경기하고 있지만, 앞으로도 이보다 더 많은 교류를 했으면 좋겠다"고 웃어 보였다.
"성인대표팀도 한일 정기전 형식으로 계속 교류해야 하지 않느냐"고 하자 다시마 회장은 크게 웃으면서 "정몽규 회장과도 자주 이야기를 나누는 부분이지만 시간이 너무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보다 더 큰 이유도 있다. "결과의 후폭풍이 크다"는 것이다.
그는 "지난해 1-4로 진 경기로 인해 우리가 얼마나 큰 영향을 받았는지 모른다"고 약한 소리를 하면서 "한국과 경기는 부담스럽다. 타이밍이나 그런 정신적인 여파까지 모두 고려해야 한다. 물론 보는 사람은 엄청나게 재미있겠지만 회장들은 너무나 힘들다"고 쓴웃음을 지었다.
그러나 이러한 성인들의 뜨거운 경쟁을 피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그는 "하지만 우리는 꼭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있다. 꼭 했으면 좋겠다. 성인이 아니더라도 올림픽 대표팀 등 연령별 대표팀들 간의 경기 또한 정기전으로 해나갔으면 하는 마음이 크다. 대학 정기전도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되레 그는 다른 화두를 던졌다. "우리는 이제는 세계 무대에서 경쟁해야 한다"는 말이었다. 다시마 회장은 "이제는 아시아가 아니라 세계에서 어디까지 통하는지 경쟁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마치 더 큰 무대에서 누가 최고인지를 겨루자는 이야기 같았다. 늘 추격해오던 일본 축구가 이제는 한국을 넘을 수 있다는 묘한 자신감이 느껴지는 발언이었다.
<③부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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