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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FF★]'계절과 계절 사이', 이영진의 스펙트럼(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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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신 발언? 내 이야기보단 사회적 맥락 봐 달라"

[조이뉴스24 권혜림 기자] 배우 이영진이 영화 '계절과 계절 사이'로 제23회 부산국제영화제를 찾았다. 말하기 어려운 비밀을 감춘 성소수자 여성 해수로 분해 부산 관객을 만났다. 그와 부산에서 만나 영화를 넘나드는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이번 영화를 통해 쉽지 않은 도전에 나서며 "'인간 이영진'의 스펙트럼을 넓힐 수 있을 것 같았다"고 말하는 그의 표정에선 삶과 성장에 대한 묵직한 태도가 묻어나왔다.

지난 9일 부산 해운대에서 제23회 부산국제영화제 '한국영화의 오늘-비전' 부문 공식 초청작 '계절과 계절 사이'(감독 김준식)의 배우 이영진을 만났다.

'계절과 계절 사이'는 지방 도시에서 카페를 운영하며 새로운 삶을 시작한 여성 해수(이영진 분)와 여고생 예진(윤혜리 분)의 이야기다. 해수는 조용하고 친절한 인물이지만, 여러 종류의 약을 먹으며 무언가를 숨기고 있는듯 의문스러운 여성이기도 하다. 해수의 카페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게 된 예진은 점차 해수를 향한 감정이 커지는 것을 느낀다. 하지만 감춰온 비밀이 있는 해수는 예진의 고백에 복잡한 감정을 느낀다.

영화는 단지 동성애를 매개로 인물들의 관계를 구성할 뿐 아니라, 개인의 성정체성과 성적 지향에 얽힌 보다 복잡한 문제들에 접근한다. 이영진은 해수 역을 맡아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이야기의 중심을 단단히 지킨다. 많지 않은 대사, 크지 않은 표정 변화 속에서도 해수라는 인물이 지닌 복잡미묘한 갈등들을 덤덤하게 풀어낸다.

이영진에게 '계절과 계절 사이'는 부산국제영화제에 처음으로 공식 초청된 작품이라는 점에서 특별하다. '여고괴담 두번째 이야기'(1999)로 영화계에 데뷔해 신인상을 휩쓸었던 그는 어느덧 20년의 세월을 연예계에서 보냈다. 연출까지 경험했던 영화계 뿐 아니라 패션, 예능, 드라마까지, '전천후 예술인'이라는 표현이 꼭 어울린다.

부산국제영화제를 찾아 첫 관객을 만난 그는 성소수자들의 이야기를 다룬 이번 작품이 결코 '가볍게 접근한 영화'로 받아들여지지 않길 바랐다. 그는 "내 영화이니 애정을 가지고 있다"며 "소수자들의 이야기인 만큼 당사자들로부터 '가볍게 건성으로 접근했구나'라는 반응은 얻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다수가 긍정할 수 있는 이야기를 하는 건 쉬운데, 다수가 잘 모른다거나 혹은 공감하기 쉽지 않은 종류의 영화를 작업하게 되면 늘 불안함이 있는 것 같아요. 이런 영화는 다수의 긍정을 바라기 어려운 영화인 만큰 더 큰 용기가 필요해요. 저도, 감독도, 예진 역 배우 윤혜리 역시 마찬가지로 다들 도전을 한 셈이었어요. 성소수자들에게 위로가 되길 바란다고 한다면 그건 저의 오만일 것 같고, 그래도 진정성 있게 접근하려 했다는 것이 보였으면 좋겠어요."

'계절과 계절 사이'는 퀴어영화로 분류될 수 있지만, 더 넓은 분류에선 인물들의 성장을 그린 작품이기도 하다. 이제 막 정체성의 고민을 시작한 고교생 예진, 그리고 모든 고민을 끝냈다고 생각한 찰나 또 다른 고민에 빠지게 된 해수의 모습이 그렇다. 이영진은 "영화는 두 인물의 2막이 끝나고 3막이 시작되는 느낌"이라며 "인간의 성장이 언제 끝날지 알 수 없고, 정체성에 대해선 더욱 예민할 수 있지 않겠나"라고 답했다.

"저도 고민이 많았어요. 어디까지 제가 공감할 수 있는 것인지부터 고민이었죠. 주변에 성소수자 친구들은 많았지만 그들의 존재 자체에 대해 고민해본 적은 없었던 것 같아요. 그저 '내가 존재하듯 그들도 그렇게 존재한다'는 생각으로, 이 세상을 같이 사는 동료들로 생각했기 때문이었죠. 친구들의 정체성에 대해 고민하는 것이 친구로서 무례한 호기심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지워버렸는데, 이번 영화를 하면서는 인물에 대한 고민을 많이 했던 것 같아요."

극 중 해수가 겪는 고민들은 배우로서 이영진을 갈등에 빠지게 할 만한 것들이었지만, 그는 조금 다른 각도에서 인물을 바라보며 출연을 결정했다. '만일 해수가 성소수자가 아니라 일반 여성이었다면?'이라는 가정을 통해 오히려 자신 안의 차별과 편견을 발견했다는 것이 이영진의 고백이다. 그는 "여러 영화들에 정말 다양한 캐릭터들이 등장하지 않나"라며 "해수가 고민하는 것 역시 '나답게 사는 법'일 뿐이고 그런 고민은 그 어떤 인물도 할 수 있는 것인데, 나는 단지 해수가 성소수자라는 이유로 그것을 더 깊게 고민하고 있었더라"고 돌아봤다.

"영화는 보여져야 하는 작업이고 관객의 반응도 중요하지만, 이 작업은 '인간 이영진'으로서의 스펙트럼 역시 넓힐 수 있는 경험이 될 것 같았어요. 이 배역을 연기하며 고민이 드는 지점이 '해수가 이해되지 않아서'가 아니라 '해수가 성소수자여서'였다면, 그런 고민은 접어두고 출연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생각했죠."

이영진은 그간 사회 문제에 대한 소신 있는 발언으로 주목을 받아 온 배우이기도 하다. 특히 영화계 내 여성 문제에 대한 관심이 높다. 지난 봄에는 서울국제여성영화제의 홍보대사 '페미니스타'로도 활약했다. 충무로의 지난 20년을 직접 겪은 당사자로서 당연하고도 건강한 고민이다. 여성주의적 주제를 다뤘던 한 쇼 프로그램에서 날카롭게 주장을 펼치던 모습을 기억하는 이들이 이영진을 차가운 사람으로만 상상하기도 한다. 의외로 그는 웃음도 많고 농담에도 밝은 사람이다. 단지 웃으며 소비할 수 없는 이야기들 앞에서 무게를 지키는 것 뿐이다.

이영진은 "신념은 누구에게나 있겠지만, 그것을 드러내는 모습이 조금 낯설게 보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내 인상이 차가운데다, 가볍거나 유쾌하게 소비할 수 없는 주제에 대해 이야기하다보니 더욱 그렇게 받아들이는 것 같다"고 답했다.

"여유롭게, 유머러스하게 말할 수 없는 소재에 대해서는 가볍게 말하고 싶지 않았어요. 그러면 안된다고도 생각했고요. 다만 제 의견을 조금 더 생각하는대로 이야기하자고 생각했죠. 그 모습이 제가 생각하는 것보다 냉정해 보일 수도 있다고 봐요. 저의 워딩만이 아니라, (논의의) 맥락에 대해 함께 조금 더 생각할 필요가 있는 것 같아요. 중요한 건 그 문제들이 영화계에서만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는 거겠죠. 배우 개개인의 목소리만이 아닌, 사회적 맥락에 대해 많이 논의되면 훨씬 좋을 것 같아요. 이 역시 저 개인의 바람이지만요."

한편 '계절과 계절 사이'는 오는 11월 개막하는 서울프라이드영화제의 개막작으로 다시 관객을 만난다.

조이뉴스24 부산=권혜림기자 lima@joy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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