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이뉴스24 이성필 기자] 2018 러시아월드컵이 본격 개막을 알렸습니다. 경기마다 예측을 뛰어 넘는 승부가 펼쳐지고 있습니다. 현재까지 본 경기 중에서는 16일 오후(한국시간) 아르헨티나-아이슬란드전이었습니다.
한 가지 더, 조이뉴스24는 지난 15일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상트페테르부르크 스타디움에서 열린 모로코-이란전을 찾았습니다. 경기장 밖에서는 모로코 팬들과 이란 팬들이 치열한 응원전을 펼치더군요. 이래서 월드컵이구나 싶더군요.
경기는 보셨겠지만, 종료 직전에 모로코의 자책골로 이란이 1-0 승리를 거둡니다. '행운의 승리'라고 표현하기에는 수비로 일관하면서 버틴 이란이 값진 승리를 가져갔다고 해도 어색함이 없을 것 같습니다. 1998 프랑스월드컵 이후 20년 만의 출전인 모로코는 열정을 쏟아냈지만, 여우 카를로스 케이로스 감독의 심리전과 수비 전술을 극복하지는 못했습니다.
이란의 극적인 승리에 경기장에는 흰색 물결만 남았습니다. 응원을 주도하던 빨간색 모로코팬들은 어느새 관중석에서 사라졌더군요, 같은 이슬람권이지만 종파가 서로 살라고 국가가 울리는데 박수를 치며 은근히 방해하는 등 나름 흥미로운 요소들도 보였으니 말이죠.
기자석에 있던 이란 기자들은 감격해 서로 부둥켜안거나 손뼉을 마주치더군요. 정말 기뻤을 겁니다. 프랑스월드컵 미국전 이후 20년 만의 승리니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의 기쁨일 겁니다. 2011년 1월 아시안컵에서 한국에 연장 승부를 벌여 윤빛가람에게 한 방 얻어맞으며 8강에서 탈락한 뒤 포르투갈 출신 카를로스 케이로스 감독을 선임해 7년 만에 본 결실입니다. 조이뉴스24 말고도 이 경기를 취재했던 다른 국내 취재진 역시 비슷한 감정을 느끼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사실 이란이 모로코전에서 보여준 경기는 국내 팬들에게는 아주 많이 익숙할 겁니다. 아시아 최종예선에서 다른 팀도 아닌 한국만 만나면 더욱 수비적이고 상대 벤치에 도발도 서슴지 않고 후반 막판이 되면 작은 몸싸움에도 데굴데굴 구르는 것이 일상다반사였으니까요.
선수들은 케이로스 감독을 헹가래 쳤습니다. 계약 연장을 하느니 마니부터 월드컵이 끝나면 이란을 떠난다는 등 이란축구협회와 지겹도록 밀당을 해왔고 정치적인 문제까지 개입, 여러모로 어려운 과정이었지만 일단 결과는 좋았으니 다 잊힌 거죠. 스페인, 포르투갈전이 남아 있지만. 넘기 어려운 산은 아닐지도 모릅니다. 2014 브라질월드컵에서도 아르헨티나에 거의 비기려던 상황에서 종료 직전 리오넬 메시(FC바르셀로나)에게 실점해 0-1로 졌으니 말이죠.
어쨌든 이란 팬들의 기쁨은 경기장 밖에서도 대단했습니다. 2010 남아공월드컵의 히트상품 부부젤라를 불어대며 환호하는 것부터 그저 소리를 지르며 기뻐하는 원초적인 모습들이 보였거든요.
이런 장면들을 보는 조이뉴스24, 확대해서 한국인 입장에서는 참 묘한 느낌이었습니다. 사우디아라비아가 러시아에 0-5로 대패해 아시아 축구는 역시 부족하다는 인상을 남기는 것 아닌가 싶었는데 이란이 나름대로 해결을 해줘서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더군요.
한편으로는 씁쓸함도 남았습니다. 이란의 축구 스타일은 상대 입장에서는 정말 얄밉거든요. 2012년 10월 이란 테헤란 아자디 스타디움에서 열린 2014 브라질월드컵 최종예선 원정 취재를 갔었는데 당시 이란 관중들은 경기장 밖에서는 정말 착하고 한국이라면 호감을 보였지만, 축구장에서는 180도 돌변했으니 말이죠. 1996 아시안컵 8강전 6-2 승리의 기억을 되짚으며 손가락으로 "식스 투(SIX TWO)"라고 귀여운 도발도 잊고 있으면 상기시켜주니 말입니다.
경기장 안에서는 케이로스 감독이 당시 대표팀을 맡고 있던 최강희 감독을 향해 삿대질하고 곽태휘(FC서울)에게 욕을 하다가 퇴장당합니다. 그래도 결과는 1-0 이란의 승리, 이긴자가 다 가져가는 게임에 성공한거죠. 어차피 월드컵도 내용보다는 승리라는 결과가 더 강하게 남으니 말입니다.
이번에는 좀 관대(?)하더군요. 조이뉴스24가 숙소로 사용하고 있는 호텔에는 이란인들이 상당수였는데 로비를 점령하며 응원가를 부르거나 국기를 펼쳐 들고 뛰어다니는 모습도 보여주더랍니다. 그러다 기자를 보고는 "한국인이냐" 묻더니 또 "식스 투"를 외칩니다. '월드컵 승리'라는 자부심이 대단해 보였습니다.
그러면서도 "오늘은 이란이 이겼으니 한국도 스웨덴을 이겨줬으면 한다. 식스 투보다는 아시아로 뭉치자"고 격려(?)를 하더군요. 그저 "그래. 승리 축하해" 외에는 해줄 말이 없었습니다.
이란을 지켜보면서 자연스럽게 신태용호가 생각납니다. 이란은 월드컵 직전 평가전도 제대로 치르지 못하고 러시아에 입성했지만 몸을 던지는 플레이로 극복했습니다. 신태용호도 국민적인 성원 대신 비난만 받고 왔습니다. 평가전 결과도 순탄치 못했고요.
그러나 선수들은 영혼을 앞세운 플레이로 국민적 신뢰 회복을 약속했습니다. 자신 있다고도 합니다. 분위기도 오스트리아 사전캠프와 비교해 180도 달라졌습니다. 정말 자신 있는 걸까요. 일단 결전지 니즈니노브고로드에 입성해 휴식을 취하며 스웨덴전을 겨냥하고 있습니다.
한국과 이란은 '숙적' 일본을 넘는 신(新)라이벌입니다. 이란의 성과를 보면서 선수들도 많은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요. 상대의 이름값에 눌리지 말고 우리의 플레이를 보여만 줘도 절반 이상의 성공은 아닐까 싶습니다. 어차피 해야 하는 경기입니다. 뻔한 결과는 없다는 것을 스스로 증명할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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