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이뉴스24 이성필 기자] 신태용호의 유럽 원정 2연전이 끝났습니다. 북아일랜드에 1-2, 폴란드에 2-3 패배입니다. 북아일랜드전은 선제골을 지키지 못하고 역전패, 폴란드전은 2-2 동점까지 만들었지만, 남은 1분을 버티지 못하고 무너졌습니다.
원정은 어렵게 마련이지만, 이번 2연전은 지난해 11월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열린 러시아, 스위스 빌/비엔느에서 만난 모로코전과는 분위기나 수준이 확실히 달랐습니다. 일방적인 응원 공세는 대단했습니다.
북아일랜드전에는 1만8천여 관중이 찾았고 폴란드전에는 5만5천211석의 관중석이 완전히 매진됐습니다. 워낙 축구에 빠져 사는 유럽이라 응원전이야 그러려니 했는데 막상 와서 보니 매우 달랐습니다.
아시아에서 나름대로 열정적이고 응원 잘한다고 소문난 한국이라지만 유럽과 비교하면 정말 정적이고 얌전하게 응원을 하더군요. 다수의 원정 경기 취재와 유럽 프로리그 관전을 해봤지만, 폴란드는 축구 하나에 모든 것을 걸고 나선 것처럼 보였습니다.
선수들은 매우 힘들고 당황했습니다. 이번 23명 중 2014 브라질월드컵 경험자는 9명에 불과합니다. 김승규(빗셀 고베)와 김신욱, 이용, 홍정호(이상 전북 현대), 기성용(스완지시티), 이근호(강원FC), 박주호(울산 현대), 손흥민(토트넘 홋스퍼), 구자철(아우크스부르크) 등입니다.
월드컵은 경험이 큰 자산입니다. 경기력, 관중 응원 등 모든 것이 뒤섞여 결과에 영향을 줍니다. 특히 이번 월드컵은 러시아입니다. 유럽 대륙이니 스웨덴, 독일과 싸우면 우리 관중은 20% 정도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유럽에 많이 거주하는 멕시코인들까지 고려하면 절대 불리합니다.
그래서 유럽 원정 평가전은 소중합니다. 내용과 결과 모두를 잡으면 좋겠지만, 하나만 얻어도 큰 소득입니다. 러시아, 모로코전에서 신태용호가 얻은 것이 무엇인가라는 물음에 쉽게 대답하기 어렵다면, 이번에는 그나마 좀 나은 것 같습니다. 수비에 대한 아쉬움이 분명하게 있지만, 공격 조합에 대한 확인과 어떤 경기 운영이 필요한지를 알게 됐습니다.
지난 24일 '가상의 스웨덴' 북아일랜드전에서는 영국 특유의 축구 응원 문화가 녹아 있어서 그러지 어색하지 않았습니다. 아마 프리미어리그 중계를 통해 많이 가까워져서 그런 모양입니다. 선수들도 크게 불편함을 느끼거나 어려워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러나 28일 폴란드 호주프의 실레시안 스타디움에서 열린 '가상의 독일' 폴란드전은 정말 달랐습니다. 전날(27일) 소개해드린 대로 폴란드는 2009년 이후 9년 만에 실레시안 스타디움에서 경기를 치렀습니다. 대대적인 리모델링으로 이날이 재개장 경기였습니다.
경기 시작 4시간 전부터 인근 카토비체 시내에는 폴란드 대표팀 머풀러, 유니폼을 착용한 사람들이 보였습니다. 일찌감치 경기장을 향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축구의 일상화가 제대로 되어 있구나를 알 수 있더군요.
경기장에 들어서니 대단했습니다. 종합 경기장이지만 지붕이 덮여 있어 응원 함성이 그라운드 안으로 퍼져 되돌아오더군요. 기자가 관중석 사이를 돌아다니자 폴란드 관중은 "코레아"라며 악수를 청하거나 손가락을 들어 "2-1로 이긴다"고 하더군요. 머플러를 목에 걸어주며 가져가라고도 합니다.
선수 입장 전 데시벨 특정으로 응원을 유도합니다. 이미 달아오른 상황에서 입장과 동시에 폴란드 국기를 형상화 한 카드섹션이 관중석을 수놓습니다. 경기가 시작하고 옆 사람의 말이 제대로 들리지 않을 정도로 응원은 대단했습니다. 신태용호가 전반에 플랫3를 기반으로 사실상 5-4-1 포메이션을 가동, 수비적으로 나서면서 많이 힘들었습니다. 수비진끼리 대화보다 미리 정한 동작이나 눈빛으로 대화하는 모습들이 보이더군요.
사실 응원은 경기 내용을 어떻게 가져가느냐에 따라 보이지 않게 제어할 수 있습니다. K리그 등에서 경기가 답답하면 "골을 보여달라"는 등의 응원이 나오죠. 상대는 이를 역이용하는데 폴란드 관중들은 전반 31분 로베르트 레반도프스키(바이에른 뮌헨)의 선제골이 나오기 전까지 많이 답답하다는 반응을 보였습니다. 레반도프스키가 한 번에 해결사 역할을 해주며 분위기를 달궜습니다.
월드컵 경험은 없지만, 유럽축구연맹(UEFA) 유로파리그(UEL)를 경험하며 원정 분위기를 체험하고 있는 황희찬(잘츠부르크)에게는 익숙하면서도 색달랐습니다. 그는 "어제 경기장에서 훈련하면서 형들과 '인제야 월드컵 느낌이 난다'고 말했어요. 이번 경기가 정말 월드컵으로 가는 데 있어 귀중한 경험이 될 것 같아요"고 하더군요.
팀의 막내급도 원정 국가대항전을 크게 느끼는데 큰 경기 경험이 부족한 일부 선수들에게도 분명 보약일 겁니다. 7경기째 뛴 막내 김민재(전북 현대)가 대표적입니다. 김민재는 레반도프스키와 헤딩 경합에서 두 번 이겼지만, 무릎 염좌로 추정되는 부상을 당해 전반 37분 황희찬과 임무를 교대했습니다.
김민재는 지난해 9월 아시아 최종예선 우즈베키스탄 원정 이후 이번에 제대로 원정 지옥의 맛을 봤습니다. 아시아 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ACL) 원정 경험도 올해가 처음입니다. 기량이 있어도 경험 부족 우려가 충분히 나오고도 남을 조건과 환경입니다. 6개월 된 대표 선수에게 비난해서 무엇이 남을까 싶습니다.
물론 월드컵을 3개월여 앞둔 시점에서 이런 나열들은 의미가 없을지도 모릅니다. 그래도 정말 가치 있는 경험이라는 것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신태용 감독은 "원정이라 전반에는 지키는 축구를 하고 싶었지만, 김민재가 일찍 부상을 당해 전체 대형이 깨졌다"며 "폴란드에 두 골을 내주고도 따라갔던 것은 긍정적이다"며 소득이 있었음을 전했습니다.
경험이 많지 않은 선수들이 월드컵 분위기가 조금씩 익어가는 시점에서 치른 두 번의 원정을 바탕으로 많은 것을 얻었기를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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