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이뉴스24 이성필기자] "지금 보니 평양에서의 일은 정말 기적이 맞았어요."
15일 일본 지바의 소가 스포츠타운, 2017 동아시아 축구연맹(EAFF) E-1 챔피언십 여자부 최종전은 북녀(北女)들의 잔치였습니다. 북한이 숙적 일본에 김윤미(24, 4·25)의 1골 1도움 맹활약으로 2-0으로 승리하며 3전 전승으로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북한은 이번 대회 중국과 일본을 모두 2-0으로 이겼고 한국에만 1-0으로 승리했습니다. 김윤미는 5골에 4골 1도움을 해냈습니다. 괴물이라고 불러도 되는 활약이었네요. 김광민 북한 감독이 지난 11일 한국전이 끝난 뒤 "더 많은 골을 넣고 싶었다"는 소감을 남겼었는데 일본전을 지켜보니 허언은 아닌 것처럼 느껴집니다.
북한의 기막힌 반전은 지난 4월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북한이 유치한 2018 여자 아시안컵 예선 풀리그에서 한국에 다득점에서 밀려 본선 진출에 실패한 아픔 말이죠.
2011년 독일월드컵 도핑 파문으로 2015 캐나다월드컵 출전 금지 징계를 받은 뒤 연령별 월드컵 우승 등 호성적을 앞세워 본선에 가려했는데 한국에 막혔으니 얼마나 압박감이 컸을까요. 한국에 밀린 아픔이 컸는지 이번 대회에서 양팀 선수단은 서로 말도 제대로 하지 않았습니다.
행여 북한의 우승 시상식에서 무슨 일이라도 있을까 싶어 유심히 봤지만 아무런 상황도 벌어지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북한과 한국은 멀리 떨어져 있더군요. 2013년 한국 대회에서 서로 대화도 나누고 2015년 중국 우한 대회에서는 셀카와 함께 평양에서의 삶에 대해 나누기도 했지만 이번에는 전쟁에 가까운 경기만 했습니다.
시상식에서도 서로 남남처럼 대하더군요. 째려보는(?) 눈빛에서 이번 대회가 지난 4월의 연장전이지 않았나 싶을 정도였습니다. 한국 선수단은 4위 기념 촬영이 끝난 뒤 북한이 단상에서 우승 환호하는 장면을 지켜보지 않고 숙소로 출발하는 버스에 올랐습니다. 북한 선수단은 운동장을 돌며 기쁨을 만끽하더군요. 이를 보던 대표팀 한 관계자는 "정말 지난 4월 평양에서의 일은 기적이 맞는 것 같다"며 가슴을 쓸어 내립니다.
북한 입장에서 평양의 쓰라림은 이미 지나간 기억입니다. 절묘한 세대교체로 이번 대회를 기다렸다고 합니다. 한국은 2019 프랑스월드컵 진출을 위해 베테랑들을 섞어 소집한 것과는 다른 분위기였죠.
물론 서로의 상황은 다릅니다. 북한은 지난해 국제축구연맹(FIFA) 17세 이하(U-17) 월드컵 우승 주역 승향심(18, 평양체육단)을 성인 대표팀에 호출하는 등 젊은피들을 대거 중용했습니다. 큰 무대 경험을 한 선수들의 성장은 반가운 일입니다. 김광민 감독은 "북한에서는 여자 축구가 대중화되고 중요시되고 있다. 모든 선수, 어린 선수들부터 국가대표가 되는 것이 가장 큰 희망이다"고 합니다.
북한 선수들의 소속을 살펴보면 압록강, 4·25, 소백수, 평양체육단, 내 고향, 월미도, 리명수, 갈매기 체육단 등 다양합니다. 겉으로 알려진 것만 그렇습니다. 10팀이 넘는다고 하네요. 많은 팀에서 선수를 뽑으니 김광민 감독의 선택지가 넓겠죠.
반면, 한국은 WK리그 이천 대교가 공중분해 운명을 피하지 못했죠. 이번 대표팀에 대교 소속 선수들은 한 명도 없었습니다. 지난 10월 조이뉴스24 창간 13주년 인터뷰 당시 윤 감독은 "대교의 해체를 바라보는 마음은 착잡하다. 구단 하나가 사라지면 선수들을 뽑은 일은 더 어려워진다"며 답답함을 감추지 못하더군요. 윤 감독의 말마따나 WK리그와 대학 선수 200명 중에서 국가대표를 뽑아야 합니다. 유소녀 인구 감소가 지속되는 상황에서 현재 수준의 경기력을 보여주는 것 자체에 감사해야 하는 상황인거죠.
한국은 3전 전패로 이번 대회를 마감했습니다. 어차피 내년 4월 요르단에서 열리는 여자 아시안컵 본선으로 가는 과정이지만 아쉬움이 큰 것은 어쩔 수 없죠. 무기력한 모습의 여자 축구에 평소 제대로 대표팀의 경기를 보지 않았던 일부 팬들은 선수들의 신상이나 외모를 앞세워 비난합니다. 대표팀이 아니었다면 욕을 먹었을까 싶을 정도로 참 안타깝더군요.
어떻게 해야 우리 선수들은 발전할까요. 소속팀에서 개인 기량 연마는 기본이겠지만 가장 큰 것은 경험이지 싶습니다. 한국은 이번 대회를 앞두고 10월 미국과 원정 A매치 두 번이 전부입니다. 반면, 북한, 일본, 중국은 충분히 A매치를 치렀습니다. 주장 조소현은 "(A매치가 많아지면) 신예들을 발굴할 기회가 많아진다. 경쟁력이 향상되리라 본다"며 남자 대표팀까지는 아니더라도 그에 준하는 A매치를 기대했습니다. 이민아도 "A매치가 많아지면 더 많이 손발을 맞출 수 있다"고 합니다. 투자와 관심의 문제가 핵심이네요.
선수 각자의 해외 진출 도전도 좋은 예가 되겠죠. 지소연(첼시 레이디스)은 이미 잉글랜드 무대를 누빈지 오래됐고 전가을은 호주 멜버른 빅토리로 이적해서 경험을 쌓고 있습니다. 이민아도 내년 1월이면 일본 최강팀 고베 아이낙에 합류하고요. 지난해 일본물을 먹어봤던 조소현도 다시 도전에 나설 것 같습니다.
물론 실력이 있어야 해외 진출이 가능할 텐데 우리 선수들이 국내에만 머무르지 말고 더 큰 꿈을 꾸면 어떨까 싶습니다. 이를 두고 여자대표팀 한 관계자는 "대한축구협회 많이 도와줘야 하는 부분"이라며 의미있는 말을 남기더군요.
대표팀은 내년 1~2월 사이 ''소집 예정''입니다. 포르투갈 알가르베서 열리는 알가르베컵에 나설 계획이 있다고 합니다. 아시안컵 본선에서 한 조에 묶인 일본, 호주는 물론 중국도 나선다고 하니 단골로 나섰던 키프로스컵은 가지 않을 것 같답니다. 당연히 나가야 하는 대회고 주최 측에서도 한국의 초청을 적극 원하고 있다고 합니다. 최종 결정권자인 축구협회가 빠른 선택을 하면 좋지 않을까요. 아직까지 미정이라네요.
북한은 4월의 아픔을 한처럼 여기며 이번을 준비했다고 합니다. E-1 챔피언십에서 큰 경험을 한 우리 선수들이 내년에는 많이 달라져 있기를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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