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이뉴스24 이성필기자] "(조)진호는 정말 순수했어요. 남들과는 달랐어요. 너무 축구를 사랑했죠."
이틀째 친구 고(故) 조진호 부산 아이파크 감독의 빈소를 지킨 절친 최용수(44) 감독의 얼굴에서는 금방이라도 눈물이 쏟아질 것 같았습니다. 축구 입문 후 영혼의 파트너였고 친구의 지도력을 보면서 그 스스로도 많이 배워가는 과정이었는데 갑작스러운 비보에 그 누구보다 충격을 받은 듯했습니다.
조 감독은 지난 10일 부산 화명동 자택 인근에서 급성 심장마비로 쓰러져 세상과 이별했습니다. 축구계가 모두 놀랐고 추모의 물결로 가득 찼습니다. 축구대표팀은 모로코와의 평가전에서 묵념으로 고인을 기렸고 오는 14~15일 K리그 현장에서도 같은 추모 행사가 열립니다. 지아니 인판티노 국제축구연맹(FIFA) 회장, 셰이크 살만 아시아 축구연맹(AFC) 회장도 애도 전문을 보내는 등 모두가 슬픔을 함께 나눴습니다.
고인의 유해는 12일 오전 양산 부산대병원에서 영결식을 끝낸 뒤 화장을 거쳐 경기도 광주시 인근의 한 추모공원에 안치됩니다. 축구에 대한 열정이 그 누구보다 가득했던 지도자였기에 한국 축구계에는 그야말로 안타까운 손실입니다.
조 감독의 빈소에는 수많은 동료 지도자와 축구계 인사가 찾았습니다. 조성환 제주 유나이티드 감독은 사망 당일 K리그 클래식 스플릿 그룹A(1~6위) 미디어데이 현장에서 소식을 들은 뒤 빈소가 마련되기 전 내려와서 최만희 대표이사와 유족들을 만나 슬픔을 함께했다고 합니다. 부산 임직원들은 2교대로 고인의 빈소에서 문상객을 맞았고요. 구단주인 정몽규 대한축구협회 회장은 대표팀의 스위스 원정 경기 출장 및 FIFA 일정으로 인해 원격에서 모든 지원을 아끼지 말라고 지시했다고 합니다.
또, 최용수 감독부터 1994 미국월드컵을 함께 누볐던 홍명보 전 축구대표팀 감독, 황선홍 FC서울 감독, 서정원 수원 삼성 감독을 비롯해 김도훈 울산 현대 감독, 남기일 전 광주FC 감독, 그리고 고인의 현역 시절 사제의 연이 있었던 최순호 포항 스틸러스 감독이나 현재 K리그 챌린지(2부리그)에서 살벌한 순위 경쟁을 벌이고 있는 박경훈 성남FC 감독, 정갑석 부천FC 1995 감독 등 모두가 추모의 마음으로 조 감독을 보냈습니다. 수많은 축구인의 조화도 빈소를 뒤덮었습니다.
축구인들은 정말 능력과 욕심과 열정이 넘쳤던 고인을 보내는 것이 아까웠던 모양입니다. 최용수 감독은 "살벌하게 순위 경쟁을 하는 와중에도 모바일 메신저로 풍경 사진 등을 보내더라. 아마 스트레스를 자연을 보면서 풀지 않았나 싶더라. 안 봐도 얼마나 힘든지 느껴지더라"고 했습니다.
최 감독은 "아깝다. 진호가 정말 아깝다. 같이 P코스 교육을 받으면서 재능이 욕심이 나서 어떤 방법으로라도 활용하고 싶었는데 어느 순간 부산 감독이 되어 있더라. 그래서 잘하리라 기대했는데 이렇게 가서 마음이 아프다"고 하더군요.
다른 이야기를 하는 지도자도 있었습니다. 17세 이하(U-17) 대표팀과 제주 유나이티드를 거쳐 성남을 지휘하고 있는 박경훈 감독은 "감독에게 적어도 팀을 만들려면 3년 정도의 시간이 주어져야 하는데 2년 안에 해결이 되지 않으면 옷을 벗을 각오를 해야 한다. 시간이 없다. 감독은 선수의 마음을 헤아려야 하고 코치 눈치도 봐야 하고 구단 사무국 및 경영진과도 소통해야 한다. 팬들은 물론 구단과 관계된 사람들까지 다 보듬어야 한다. 경기 승패에 따라 밀려오는 여론까지 감내해야 한다. 술 한 잔의 여유도 없다"며 슈퍼맨에 버금가는 책임감, 감독의 무게를 토로했습니다.
최만희 부산 대표이사는 "경남전을 앞두고 눈병이 나버렸다. 하도 스트레스를 받아 대상포진 직전까지 갔다가 겨우 나아졌는데 조 감독이 이렇게 될 줄은 몰랐다. 사망 당일 오후에 만나서 플레이오프 계획 등을 세우려고 했는데 이렇게 됐다. 정말 아까운 지도자다"고 말하더군요.
조 감독은 겉으로는 드러내지 않았지만, 축구 중독자였습니다. 기자와도 꽤 오랜 시간 연락을 주고받으면서도 그는 항상 자신보다 선수를 높였습니다. "우리 OOO이가 요즘 잘하죠. 기사 잘 봤습니다. 이 기사 읽고 아마 힘 좀 받을 거에요"라든지 "OOO이는 참 열심히 하는 친구예요. 시간만 주면 서서히 올라올 건데 저는 그것을 믿고 있어요"라고 했지요.
'실패'라고 낙인 찍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던 조 감독입니다. 그는 늘 선수를 아꼈습니다. 기자와의 대화 중 가장 기억에 남는 말이 있습니다. "실패했다고, 못했다고 지적하면 선수가 있는 재능도 나오지 않아요. 실패라는 말처럼 무서운 게 없어요. '잘했다', '잘하고 있다', '괜찮네'라고 말해주면 더 신나서 할거에요. 뭐 다른 방식도 있겠지만 이게 제 스타일입니다. 하하하"라고 하더군요.
지난해 상주 상무를 스플릿 그룹A에 올려놓고 챌린지에 있던 부산을 선택한 것에 의아하다는 반응을 보였더니 "이 기자, 나랑 내기할까요. 부산이 올해 승격을 하는지, 이 기자가 먼저 장가를 가는지. 이 구단에는 정말 좋은 선수가 많아요. 이들이랑 할 수 있을 때까지 해보고 싶어요. 육성하는 맛이 있다는거 아닙니까. 하하하" 말이죠.
그는 늘 밤늦도록 축구 연구에만 몰두했습니다. 지도자 입문 후 가족들과 떨어져 생활하는 게 습관이 되어서 밤잠을 줄여가며 공부에 열중했던 지도자입니다. 도전과 성취감을 느끼려 노력했고요. 절대 자신이 가진 부담감은 밖으로 꺼내지 않더군요. 지난 추석 연휴 무렵 "건강 좀 챙기시라"고 했더니 남 걱정을 더 많이 하더군요. 그 이후 그렇게 그는 떠나버렸습니다.
조 감독에게는 건강한 긍정과 실패를 모르는 도전 의식이 늘 곁에 있었습니다. 그가 한국 축구에 남긴 유산인지도 모릅니다. 불신과 부정이 팽배한 한국 축구에 조 감독의 과감한 도전 정신이 필요하다고 느끼는 것은 기자 혼자만은 아닐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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