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이뉴스24 이성필기자] "여기가 그 자리라니까요. 300만 달러를 제시하는데 안 보내겠느냐고요."
최강희 전북 현대 감독은 2015년 1월 아랍에리미트연합(UAE) 두바이 전지훈련 중 알 아흘리 팀 관계자가 아무도 예상하지 않았던 한 선수를 지목하며 영입하겠다는 말에 소스라치게 놀랐다.
그는 수비형 미드필더 권경원(25, 톈진 취안젠)이었다. 당시 권경원은 프로 3년 차에 불과했다. 2013년 프로 데뷔 해에 20경기에 나서며 나름 가능성을 보여줬지만 2014년 워낙 탄탄한 선수층으로 인해 5경기 출전에 그쳤다. 최 감독은 그를 배려하려 애를 썼지만 쉽지 않았다.
시즌이 끝나고 새 시즌 준비를 위해 떠난 두바이 전지훈련의 메이단 호텔 로비에서 최 감독은 알 아흘리 관계자가 권경원을 영입하겠다는 말에 고민을 거듭했다. 연습경기에서 권경원의 진가를 확인한 코스민 올라로이우 감독이 이끄는 알 아흘리가 무조건 데려가겠다는 것, 한국명 올리로 수원 삼성에서 뛰었던 올라로이우 감독과 코치로 사제의 연을 맺은 최 감독의 묘한 인연도 크게 작용했다. 이적료는 300만 달러(당시 환율 기준 36억원)였다.
지난해 1월 조이뉴스24가 전북의 전지훈련 취재를 위해 메이단 호텔에 도착하자 최 감독은 로비 한 구석의 의자를 가리키며 "알 아흘리가 권경원 달라고 조르고 조르던 자리다. 이적료 300만 달러를 그냥 생각 없이 꺼내는데 난 초조한데 저들은 가볍더라"며 당시를 회상했다. 6개월 단기 계약도 전북의 거부에 4년 6개월 로 늘어났다.
그렇게 권경원은 알 아흘리의 빨간 유니폼을 입었다. 놀랍게도 권경원은 그해 알 아흘리를 아시아 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ACL) 결승으로 이끌었다. 광저우 에버그란데(중국)에 밀려 준우승에 그쳤지만, 중앙 수비와 수비형 미드필더를 오가는 멀티 능력을 과시했다. 대회 베스트11은 당연했다.
권경원의 진가를 확인한 톈진 취안젠(중국)은 올해 과감한 지출을 단행했다. 국가대표 경력 없는 그에게 이적료로 1천100만 달러(132억원)를 책정했다. 전북에서 알 아흘리로 이적 당시 이적료의 4배나 폭등했다. 한국 선수로는 손흥민(25)이 레버쿠젠(독일)에서 토트넘 홋스퍼(잉글랜드)로 옮길 당시 기록한 2천200만 파운드(324억원) 다음으로 많은 금액이다.
연봉은 300만 달러(34억원), 전북 입단 당시 3천만원에 불과했던 액수가 100배가 넘는다. 이탈리아 국가대표 수비수 출신 파비오 칸나바로 감독이 권경원의 재능을 제대로 확인한 셈이다. 권경원은 출전 선수 제한 규정을 도입해 3명만 나갈 수 있는 상황에서도 14경기를 풀타임 소화하는 능력을 보여줬다. 신태용 감독이 선발한 5명의 중국파 중 가장 출전 시간이 많다. 톈진도 5위로 ACL 출전 가시권에 진입했다.
21일 파주 축구대표팀트레이닝센터(파주 NFC)에서 열린 첫 국가대표 소집 훈련에서도 권경원은 맏형 이동국(전북 현대) 옆에 붙어 있었다. 무명의 국가대표 꿈이 현실이 됐고 표정도 상기됐지만, 최대한 누르고 훈련에만 매진했다. 미드필더로 자신을 선발한 신 감독에게 보답하기 위한 움직임이었다.
하루가 지난 22일, 권경원은 조금은 나아진 모습이었다. 전북 시절 알고 지낸 이동국, 최철순 등과 대화를 나누는 등 여유를 찾았다. 패스 훈련에서도 여유가 넘쳤다. 그가 그리던 꿈을 하나씩 이뤄가고 있다. 대표팀 트레이닝복도 제법 어울렸다.
권경원은 수비 훈련에서 중앙 수비와 중앙 미드필더를 오갔다. 기성용(스완지시티)이 뛰기 어려운 상황에서 플랜B 역할 가능성이 커졌다. 전형적인 수비형 미드필더 정우영(충칭 리판)이 그의 파트너였다. 중앙 수비로 서면 김민재(전북 현대)와 함께 호흡을 맞췄다. 동료들은 "권경원 잘한다"며 용기를 줬다.
훈련이 끝난 뒤에는 전경준 수석코치, 김남일, 차두리 코치가 모두 권경원을 앞에 두고 페널티지역 안에서의 움직임을 5분 가까이 특별 지도했다. 그는 "비싼 과외를 받았다"며 즐거운 표정을 숨기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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