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연도 보통 인연이 아니다.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에서 활약 중인 라파엘 베니테즈 리버풀 감독과 조세 무리뉴 첼시 감독을 보면 '운명의 라이벌'이라는 표현이 절로 떠오른다.
스페인 출신 베니테즈 감독과 포르투갈서 건너온 첼시 무리뉴 감독은 지난 2004년 나란히 프리미어리그에서 지휘봉을 잡은 '이베리아 반도의 명장'들이다.
그러나 리그 '전통의 명가' 리버풀과 '신흥 강호' 첼시의 상반된 이미지만큼이나 두 감독의 관계도 미묘하다. 베니테즈 감독과 무리뉴 감독이 부임한 이후 양팀은 묘하게도 '외나무 다리'에서 만나는 일이 부쩍 잦아졌다.
첼시와 리버풀은 26일 새벽 첼시의 홈구장 스탬포드 브릿지에서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 준결승 1차전을 벌인다. 이번에도 결코 양보할 수 없는 일전이다.
사실 지난 04-05시즌, 05-06시즌 리버풀과 첼시의 상대 전적을 놓고 보면 리버풀을 첼시의 천적이라 부를 근거는 별로 없어 보인다. 10번의 맞대결 중 리버풀이 첼시를 제압한 것은 단 2차례 뿐이다. 게다가 리버풀은 프리미어리그서 첼시의 독주체제를 막아내지도 못했다.
하지만 리버풀을 첼시의 라이벌로 평가할 수 있는 이유는 중요한 순간에 항상 첼시의 발목을 잡은 팀이 리버풀이라는 점이다.
리버풀이 첼시를 제압한 것은 단 2번 뿐이지만 그 두차례는 지난 04-05시즌 UEFA 챔피언스리그 준결승전과 지난 05-06시즌 FA컵 준결승 단판승부였다.
리버풀은 '트리플 크라운'이나 사상초유의 '쿼드러플(4관왕)'을 노리던 첼시의 야심을 매번 물거품으로 만들었다.
양팀의 이런 역사는 올시즌 초반부터 재현됐다. 지난 8월 웨일스 카디프의 밀레니엄스타디움에서 벌어진 06-07시즌 커뮤니티실드(지난시즌 정규리그 우승팀과 FA컵 우승팀간의 대결)에서 리버풀은 2-1로 첼시를 제압했다.
안드리 셉첸코, 미하엘 발락 등을 영입하며 '약점이 사라졌다'는 평가를 듣던 첼시의 상승세에 찬물을 끼얹은 것이다.
지난 05-06 시즌 FA컵 4강전이 끝난 뒤 양팀 사령탑은 경쟁의식을 드러내듯 서로 악수도 나누지 않아 눈길을 끌었다.
이에 대해 베니테즈 감독은 "나는 내 팀과 서포터들에 집중하고 있었고 무리뉴 감독 또한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악수 교환은 내게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나는 오직 내 팀과 팀의 발전 방향만을 생각할 뿐이다"고 말했다.
무리뉴 감독 역시 "축구는 90분이다. 그 시간 이후 감독끼리 악수를 하든, 뽀뽀를 하든 그런 문제가 뭐가 중요한가?"라고 오히려 반문했지만 경기후 악수를 나누지 않았다는 것은 양팀 감독간의 치열한 '승부욕'과 라이벌 의식이 엿보인다.
이번에도 이런 경쟁심은 어김없이 재현되고 있다.
무리뉴 감독은 최근 "첼시와 리버풀의 컨디션은 차이가 나기 때문에 공평한 대결이 될 수 없다. 리버풀은 바르셀로나와의 16강전을 앞두고 일주일간 포르투갈 전지훈련을 가는 등 여유로운 입장이지만 우리는 당시에 칼링컵 결승을 포함해서 일주일에 세 경기를 치렀다"고 투덜댔다.
2007년 1월 이후 첼시가 총 24경기를 치른 반면 리버풀은 18경기만을 소화한 상황에 대한 아쉬움이었다.
물론 가만 있을 베니테즈 감독이 아니다.
"최근 무리뉴 감독의 기자회견을 보면서 깜짝 놀랐다. 무리뉴 감독은 계속 첼시의 문제점에 대한 불만 만을 토로한다. 모든 이들에게 '우리는 이런 문제도 있고, 저런 문제도 있다'는 말만 늘어 놓는다. 부상 선수가 있는 것은 우리도 마찬가지다. 리버풀이 이번 경기에 이점을 가지고 있다고는 생각치 않는다" 무리뉴 감독에 곧바로 일침을 가했다.
중요한 길목마다 만나면서 서로간의 라이벌 의식을 키우고 있는 베니테즈 감독과 무리뉴 감독. 이번엔 누가 웃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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