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필기자] "울산 현대에서 뛰었으니 당연한 은퇴식이라 생각합니다."
'꽁지머리' 김병지(46)는 지난 1992년 울산을 통해 K리그에 입문했다. 양친이 있음에도 소년의 집(현 부산 알로이시오고교)을 통해 축구에 대한 꿈을 키운 김병지는 프로에 입문해 모범적이며 성공적인 선수생활을 한 특이한 이력의 소유자였다.
김병지는 1992~2000년 울산 현대, 2001~2005 포항 스틸러스, 2006~2008 FC서울, 2009~2012 경남FC, 2013~2015 전남 드래곤즈 등 총 5팀에서 뛰었다. 소위 '저니맨(여러 팀을 옮긴 선수)'이었지만 거쳐간 모든 팀과 팬들은 그를 사랑했다.
김병지는 흡연, 음주를 멀리하는 철저한 자기 관리의 표본이었다. 45세 5개월 15일의 나이에도 현역 출장한 K리그 최고령 선수 기록을 남긴 그는 후배들의 도전에도 쉽게 밀리지 않았다. 김영광, 김용대, 신화용, 정성룡 등 이름난 수문장들이 그를 넘기 위해 애를 썼지만 김병지는 꿋꿋이 자기 자리를 지켰다.
프로 데뷔 구단인 울산은 김병지의 은퇴식을 마련해주기로 하고 올해 초부터 꾸준히 접촉하며 성대한 이별 한마당을 짜기 위해 노력했다. 울산 관계자는 "울산에서 시작했던 선수라는 점에 프런트 모두가 공감했고 김병지도 마찬가지였다"라며 김병지의 은퇴식을 울산에서 준비한 것이 당연한 일임을 강조해다.
706경기 출전으로 현역 생활을 마감한 그를 위해 울산은 캐릭터를 만들어 티셔츠에 새겨 제작했다. 울산 선수들이 이날 입고 나와 떠나는 선배를 기념했고 팬들도 마찬가지였다.
경기 시작 전 김병지는 울산 유니폼을 입고 등장해 양 구단 선수들을 격려했다. 울산 김용대, 포항 황지수에게는 따로 아는 척을 하며 힘을 불어넣어줬다. 특별한 시축도 있었다. 김병지는 골대 쪽으로 가 아들 김태백의 페널티킥을 막는 수문장으로 등장했다. 김병지가 아들의 슛을 막지는 못했지만 의미있는 이벤트에 관중의 박수가 쏟아졌다.
하프타임 때 열린 김병지 은퇴식은 성대했다. 양 구단 팬들의 축하를 받으며 그라운드에 등장한 그는 핸드프린팅을 하고 축하 인사도 받았다. 울산 시절 인연을 맺었던 이상철 전 울산대 감독, 김태영 전 울산 코치가 직접 축하 인사를 전했고 안정환 K리그 홍보대사, 유상철 울산대 감독은 영상 메시지로 은퇴를 축하(?)했다.
울산 시절 유니폼과 국가대표 유니폼을 선물로 받는 등 모든 것이 김병지를 위한 무대였다. 그라운드도 한 바퀴 돌았다. 김병지가 소속됐던 5개 구단의 깃발을 든 기수단이 뒤를 따랐다. 자신의 사인이 담긴 사인볼을 관중석으로 차주며 팬들에게 감사 인사를 전했다.
1998년 울산 공설운동장에서 열린 포항과의 플레이오프에서 골을 넣은 장면도 다시 연출했다. 김병지는 아들이 올린 프리킥을 머리로 받아 넣었다. 첫 번째는 실패했지만 두 번째는 제대로 넣으며 자신을 '골 넣는 골키퍼'로 각인시켰던 과거의 한 장면으로 돌아갔다.
김병지와 함께 2002 한일월드컵에서 뛰었던 양 팀 감독은 묘한 감정을 표현했다. 포항 최진철 감독은 "마무리를 잘해서 축하해줘야 할 것 같다. (은퇴가) 조금 늦은 감이 있는데 이 정도까지 할 줄은 몰랐다. 앞으로 어떤 인생을 설계할지는 모르겠지만 잘 했으면 한다"라고 말했다.
울산 윤정환 감독도 "일단 45m 골이 생각난다. 미안하다"라고 말하며 웃었다. 1997년 목동에서 열린 유공-울산의 개막전 당시 선수였던 윤 감독이 넘어지자 주심이 휘슬을 불었고 상대팀은 볼을 걷어냈다. 이를 스로인으로 받은 윤 감독이 다시 건네준다고 킥을 한 것이 전진해있던 김병지의 머리를 넘어가 골이 됐다.
윤 감독은 "내가 울산에 있을 때 (김병지 은퇴식을) 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손을 내밀었다. 포항에도 있었으니 기억에 남는 은퇴식이 되지 않을까"라며 김병지의 새출발을 기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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