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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희준의 이런 야구]'야구판 조선통신사' 한·일 슈퍼게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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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야구 감각 익힌 교류전…또 다른 한·일 정기전 고민할 때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과 프리미어12, 그리고 올림픽에서 한국 야구는 세계 각국과 맞붙으며 국제야구의 흐름을 직접 경험했다. 프로가 주축이 된 한국대표팀은 각종 국제대회에서 괄목상대한 성적을 거두며 세계 야구의 강호 중 하나로 당당히 자리매김했다. 대표팀이 약진하게 된 계기는 지난 2006년 제1회 WBC 4강 진입으로 볼 수 있지만 그보다 15년 앞선 시점에서 한국은 이미 '야구판 조선통신사'를 파견해 국제 야구에 대한 감각을 익혔다. 한국과 일본 양국 올스타들이 처음으로 맞붙은 한·일 슈퍼게임이 그것이다.

◆대회의 창설 배경

엄밀하게 말하면 한·일 슈퍼게임은 일본의 한 신문사가 주최한 일종의 이벤트성 대회다. 일본 나고야시를 거점으로 하고 있는 '주니치(中日)신문'의 제안으로 성사됐기 때문이다. 목적은 '한·일 교류의 증진·발전'에 있었지만 실제 배경은 따로 있었다. 이를 위해서는 주니치신문에 대해 알 필요가 있다. 일본 센트럴리그의 명문구단 주니치 드래곤스의 모기업인 주니치신문은 '중부일본(中部日本 : 나고야를 중심으로 한 일본 중부지역)'이란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주니치신문은 일본 제3∼4의 도시인 나고야 지역에서 250만부라는 압도적인 발행부수를 자랑한다. 1942년 '신아이치신문'과 '나고야신문'이 통합해 탄생한 매체로 현재도 사주가 두 명인 독특한 형태의 언론재벌이다. 일본 전 지역을 통틀어 335만부로 일본 주요 일간지 중 발행부수 4위에 해당한다. 도쿄를 중심으로 한 간토 지역에서는 '도쿄신문'이라는 이름으로 발행하고 있다. 논조는 진보도 보수도 아닌 중립적이며 독창적인 기사와 보도로 유명하다.

◆주니치(中日)신문이 나선 이유

일본의 3대 신문사는 모두 도쿄에 거점을 둔 요미우리, 아사히, 그리고 마이니치 신문이다. 이 매체들은 저마다 대형 야구 대회를 개최해 사세를 과시하고 있다. 요미우리는 '미·일 올스타전'을 1931년부터 열고 있고, 아사히신문과 마이니치신문은 전국고등학교야구대회(고시엔대회)를 1915년과 1924년부터 주최하고 있다. 주니치신문도 '의미 있는' 야구 대회를 주관할 필요가 있었다. 이들의 눈길이 닿은 곳은 이웃나라 한국이었다.

1982년 출범한 뒤 나날이 발전하고 있는 한국프로야구와 일본 프로 선수들간 올스타전을 개최할 경우 효과가 꽤 클 것으로 봤다. 한국과 일본의 관계 증진은 물론 일본 국내에서 자사의 위상도 높일 수 있는 기회였다. 다시 말해 도쿄의 '메이저 3사'와 어깨를 나란히 하기 위한 목적이었다. 이런 이유로 일본야구기구(NPB)는 이 대회에 관여하지 않았다. 양국 야구기구간 정식 국제협정을 통하지 않고 한국야구위원회(KBO) 사무총장과 주니치신문 회장이 뜻을 모아 연 친선대회가 한·일 슈퍼게임이었다.

◆日 팬들 주황색 빙그레 유니폼에 환호

슈퍼게임은 1991·1995·1999년 3차례에 걸쳐 진행됐다. 1회 대회에서 2승4패를 기록한 한국은 2회 대회에선 2승2무2패로 대등하게 맞섰다. 1999년에는 1승1무2패로 대회를 마감했다. 해프닝도 많았다. 1991년 첫 대회 1차전은 도쿄돔에서 열렸는데, 한국 선수들과 관계자들은 태어나서 처음으로 '지붕 있는' 야구장을 구경했다. 공식연습을 마친 우리 선수들은 구장 적응에 여러모로 애를 먹었다.

당시 해태 타이거즈(현 KIA) 1루수였던 김성한은 "뜬공의 위치 파악이 어렵고, 주루 플레이시 루 간격이 훨씬 멀게 느껴졌다. 수비 때는 공의 바운드를 맞추기가 까다로웠다"고 털어놓았다. 보이지 않는 어려움과 익숙하지 않은 구장 탓에 고생이 만만치 않았다. 한국 프로선수들을 처음 접하는 일본 팬들에게는 한국 구단들의 화려한 유니폼이 인상적이었다. 대표팀 경기가 아닌 '올스타 대회'였던 관계로 선수들은 소속팀 유니폼을 입고 경기에 나섰다. 당시 가장 큰 화제를 모은 건 빙그레 이글스(현 한화)의 주황색 유니폼이었다. 일본에서는 볼 수 없었던 색상과 디자인이었다. 현지 팬들에게 화려하면서 신기한 유니폼으로 크게 어필했고, 깊은 인상을 남겼다.

◆해프닝도 만발

웃지 못할 해프닝도 있었다. 가장 기억에 남는 건 한 관중의 부상 사건이다. 1999년 제3회 대회 4차전이 열린 11월10일 도쿄돔. 1승2패를 기록한 한국 선발팀은 마지막 경기에 임했다. 팽팽하게 진행되던 경기 도중 한국의 한 선수가 3루측 우리 응원석으로 파울볼을 쳤다. 이후 돌발 상황이 벌어졌다. 당시 한국팀 대회진행 책임자였던 필자는 본부석에서 대회 진행상황 점검과 시상식 등을 준비하고 있었다. 갑자기 도쿄돔 경비원이 달려오더니 다급히 한국 관계자를 찾는 게 아닌가.

3루 스탠드로 날아간 파울볼에 관중이 맞아 쓰러졌는데, 일본어를 못하는 한국인이라는 것이다. 설명을 듣자마자 주니치 측 관계자와 함께 부리나케 뛰어갔다. 40대 나이로 보이는 한 남성이 얼굴에 피를 철철 흘리고 있었다. 의료진의 응급조치를 받은 그는 구급차에 실려 인근 병원으로 후송됐다. 놀란 필자도 함께 동행했다. 상황이 안정되자 환자는 정신이 돌아온 듯 말을 꺼냈다. 그는 구두 수선을 하는 사람으로 도쿄에 온 지 6개월 정도 됐다.

◆파울볼에 다친 불체자

외롭고 힘든 일본 생활 도중 우리 프로야구 올스타팀이 경기를 한다고 해서 구경을 갔다가 잠깐 한눈을 판 사이(그는 도쿄돔이 신기해서 이곳저곳을 경기와 관계없이 구경하고 있었다고 했다) 파울볼에 얼굴을 맞은 것이다. 코뼈가 부러졌다는 진단이었다. 모든 치료는 주니치 측이 책임을 지는 것으로 일을 마치려고 했는데, 문제는 그가 불법 체류자였던 것이다. 신분이 확인되지 않은 탓에 보험처리가 어려우며 출입국 관리국에 알려지면 불이익을 받는다는 얘기가 나왔다.

그래도 가만히 있을 수는 없었다. 어쨌든 우리 팀을 응원하러 왔다가 사고를 당한 우리나라 사람이었다. 주니치 측과 상의 끝에 법적인 구속력이 없는 범위에서 일을 해결하자고 결론을 내렸다. 주니치는 약속대로 환자가 완치될 때까지 모든 일을 감당했다. 약 3개월 뒤 사고 당사자로부터 연락이 왔다. 그는 무사히 한국으로 돌아왔고, 감사의 뜻을 전하기 위해 필자를 찾았다. "당시 들뜬 마음에 방심해서 사고를 당했다"는 그와 마주 앉아 서로 크게 웃었다.

◆'제2의 슈퍼게임' 필요하다

프로야구 올드팬들에게 남다른 추억으로 남아 있는 슈퍼게임은 2000년대 들어 중단된 상태다. 대회 유치비용을 대는 스폰서를 구하기가 어려워진 게 가장 큰 이유였다. 이토 오사무 당시 주치니 신문 사장이 박용오 당시 KBO 총재를 찾아 정중하게 사정을 설명했다. '야구광' 박 총재는 무척 낙담했지만 일본 국내사정 탓에 대회를 유지하기 어렵다는 설명에는 어쩔 도리가 없었다.

마지막 슈퍼게임이 열린 지 어느덧 17년이 됐다. 이후 한국은 각종 국제대회서 일본과 만나면 드라마같은 경기내용으로 양국 국민에게 뜨거운 감동을 선사했다.

이제는 한국과 일본이 아시아 야구의 주도국으로서 또 한 번 손을 맞잡을 때가 됐다고 본다. 또 다른 '한·일 정기전'을 고려해볼 시기가 됐다는 판단이다. 국제 야구계를 좌지우지하는 '야구 종주국' 미국을 좋은 의미에서 견제할 필요가 있다. 중국의 야구 발전에 힘을 보태줄 수 있으며 야구에 죽고 못사는 대만에도 좋은 자극제가 될 것으로 본다. 스폰서 유치 문제도 있고, 각종 국제대회가 몇 년 주기로 열리는 관계로 일정 잡기가 빠듯할 수도 있다. 하지만 중지를 모아보면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생각이다. 제2의 한·일 슈퍼게임이 언젠가는 다시 열리기를 기대해본다.

조희준

조희준은 20년 이상 한국야구위원회(KBO)에서 야구행정을 다루며 프로야구의 성장과정을 직접 지켜봤다. 국제관계 전문가로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출범 당시 한국 측 협상단 대표로 산파 역할을 맡았다. ▲일본 호세이(法政)대학 문학부 출신으로 일본 야구에 조예가 깊은 그는 ▲KBO 운영부장 및 국제부장을 역임했으며 ▲현재 한국프로스포츠협회 전문위원으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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