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혜림기자] 봉만대 감독에게 영화 '덫'은 "인큐베이터에, 혹은 중환자실에 오래 있다 부활한" 작품이다. 지난 2009년 제작에 돌입해 지난 17일에야 개봉해 관객을 만나고 있으니, 이 영화가 생명력을 얻기까진 무려 6년의 시간이 소요됐다.
'덫:치명적인 유혹'(이하 덫, 감독 봉만대, 제작 지오엔터테인먼트)은 시나리오 집필을 위해 허름한 산골 민박을 찾은 작가 정민(유하준 분)이 앳된 얼굴에 관능적 매력을 지닌 소녀 유미(한제인 분)을 만나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 에로틱 스릴러 영화다.
6년 전 제작한 작품이지만, '덫'에서 그 시간적 격차를 느끼긴 어렵다. 시대상의 변화에 비교적 둔감한 산골 마을을 배경으로 했다는 사실, '에로 거장'답게 농익은 연출력으로 장르적 완결성을 놓지 않았다는 점이 그 이유로 해석될 법하다.
영화의 개봉을 맞아 조이뉴스24와 만난 봉만대 감독은 "'덫'이 유행을 타는 영화는 아니지만, 상업적으로 홍보하기 열악한 환경이라는 내부적 고민이 있었다"며 "시간을 흘려보내다 올해 전주국제영화제에 초청되면서 영화가 내용의 측면에서 뒤떨어지지 않는다는 자부심을 얻었다"고 말했다.
"'덫'은 '아티스트 봉만대' 이전에 작업한 작품인데, 개봉 시기는 그 이후가 됐죠. 오랫동안 인큐베이터, 혹은 중환자실에 있다 부활한 영화인 것 같아 더 반가운 마음이에요. 지난 2009년에 제작을 시작해 2010년에 마무리했는데, '섹스 거짓말 그리고 비디오테이프'와 'TV방자전' '아티스트 봉만대'가 먼저 나왔으니, 지난 2005년 '신데렐라' 이후부터 2009년까지 제 필모그라피의 공백을 설명할 작품이기도 하죠."
영화는 장르적 가치를 인정받아 예술영화관에서도 개봉했다. 감독은 "'덫'을 보며 '내가 연출을 잘하는구나'라고 스스로 감탄을 했다"며 웃어보였다. 이어 "전주에서 '봉만대의 진가를 보여주는 작품'이라는 평을 얻었다"며 "'영화는 대체로 이런 것 아냐?'라는 감상에서 살짝 빠져나온 느낌, 진액이 다 빠진 뒤 마지막 한 방울이 더 나오는 것 같은 느낌이 있다"고 설명했다. "일반적인 영화 문법을 벗어나, 몸이 달궈져 극적 긴장감이 계속되는 재미가 있다"고도 덧붙였다.
에로는 한국 영화계에서 여전히 비주류로 여겨지지만, 결코 적지 않은 사람들이 긴 세월에 걸쳐 소비해 온 장르이기도 하다. 봉 감독은 자전적 영화 '아티스트 봉만대'를 통해 에로 영화 감독으로서의 치열한 고민을 관객과 나눈 바 있다. 그는 "이제 남녀가 서로 손 잡고 에로 영화를 볼 수 있는 시대가 오지 않았나 싶다"며 "단조로운 이야기일 수 있지만 요즘 남자들의 심리를 그대로 보여주기 때문에 남자들이 보면 덜컥 겁이 날 수도 있는 영화"라고 설명했다.
"'덫'은 남자들이 꼭 봐야 하는, 그리고 여자들이 좋아할 영화예요. '들이댐은 알지만 빠져나올 줄 모르는' 남자들의 속성에 대한 이야기거든요. 영화 속 모든 인물들은 하나의 낯선 공간에서 모두 덫에 걸려 있어요. 관계의 모호함 속에서 각자의 시선을 들여다보는 구조죠. 남자들이 대체로 우유부단하잖아요. 사랑의 감정 없이 그저 음탕한 시선을 가지고 상황에 함몰되고 마는 남자의 이야기, 그 속에서 어떤 책임을 지게 되는가에 대한 이야기니, 여자들이 공감할 수 있겠죠. 남자들은 이 영화를 보고 생각을 좀 해야 하고요.(웃음)"
영화의 언론 배급 시사는 VIP 시사를 겸해 진행됐다. 봉 감독을 응원하는 동료 감독들도 대거 참석했다. 봉만대 감독은 "최근 연을 쌓게 된 이장호 감독님도 초대했는데, 영화를 보시고는 '유럽의 천재가 만든 영화같다. 왜 '봉만대, 봉만대' 하는지 알겠더라'며 칭찬을 많이 해주고 가셨다"고 말하며 웃었다.
호평에도 봉 감독은 흥행에 대한 큰 욕심은 내려놓은 상태다. 그는 전작 '아티스트 봉만대'가 영화계와 관객의 극찬에도 불구하고 배급에 큰 어려움을 겪었던 것을 기억하고 있었다. 그에 더해 부가판권시장이 날로 커지는 상황에 극장 관객수로만 흥행치를 가늠하는 것이 큰 의미가 없다는 사실도 직시하고 있다.
"모든 영화가 '만 원 사례'를 누린다면 좋겠지만 요즘 만 원은 젊은이들에게 큰 돈이에요. 스케일이 큰 영화, 나에게 긴장감을 주는 영화라면 극장에서 볼 수도 있고, 그렇지 않다면 조금 더 지나서 (IPTV 등을 통해) 봐도 괜찮겠죠. 다행인 건 예술영화로 인정받아 전용관에서 관객을 만날 수 있다는 거예요. 사람들이 얼마나 좋아해줄까 기대는 되지만, 관객수의 개념은 제 머릿 속에서 떠났죠. '맛있는 섹스 그리고 사랑'을 지금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보는데요.(웃음)"
한편 '덫'은 지난 17일 상영해 상영 중이다.
--comment--
첫 번째 댓글을 작성해 보세요.
댓글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