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필기자] "중국이 이번 대회 우승 후보다."
동아시아축구연맹(EAFF) 동아시안컵 참가를 위해 지난달 31일 중국 우한에 입성한 한국 축구대표팀의 울리 슈틸리케 감독은 예상 밖의 발언을 쏟아냈다. 한국에서와 달리 중국의 전력을 높이 평가한 것이다.
슈틸리케 감독은 국내에서는 "오래 연습해 조직력이 좋은 중국, 북한 등을 조심해야 한다"라며 신중론을 펼쳤지만 우한 입성 후 "중국이 우승 후보다"라고 콕 찝여 얘기했다.
공식 기자회견에서는 "중국이 우승 후보로 꼽히지만, 우리도 도전하러 왔다"라는 말까지 했다. 발언 자체는 우승 도전이었지만 속뜻은 '우승 후보'인 중국에 도전한다는 이야기였다. 중국에 역대전적에서 단 1패만 안고 있었던 한국 입장에서는 "중국에 도전을 한다"는 슈틸리케 감독의 발언을 정서적으로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하지만, 슈틸리케 감독의 이런 일련의 중국 관련 발언은 경험이 부족한 선수들을 심리적으로 자극하기 위함이었다. 한 수 아래로 여긴 중국을 미리 띄워 놓고 선수들에게 "한 번 마음대로 뛰어봐라"라고 간접 독려하는 의도였다.
중국과 경기 전 슈틸리케 감독은 선수들에게 부담을 내려놓을 것을 강조했다. 권창훈(수원 삼성)은 "감독님이 경기 전 미팅에서 무거운 짐을 가지고 경기장에 가지 말고 가벼운 마음으로 자기 기량을 펼치라고 말씀하셨다"라고 전했다. A매치 데뷔를 하는 3명(권창훈, 김승대, 이종호)이 선발 멤버로 나서 힘든 부분을 정확하게 찌른 것이다.
이런 슈틸리케 감독의 의도는 완벽하게 통했다. 평균 연령 24.2세의 젊은 한국 대표선수들은 자세부터 달라졌다. 지칠 줄 모르고 그라운드를 뛰며 김승대, 이종호의 골로 중국을 2-0으로 완파하고 가뿐하게 대회 첫 승을 올렸다.
중국전에서 데뷔골을 넣은 이종호(전남 드래곤즈)는 "감독님께서 대회 전 경험이 없는 선수들의 부담을 줄여주기 위해 중국을 우승후보로 꼽았다고 한 이야기를 들었다"라며 "하지만 이번 대회를 통해 한국이 강호라는 사실을 증명하겠다"라고 말했다.
몇몇 선수들은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를 통해 중국 축구를 경험해 두려움이 없었다. 김승대(포항 스틸러스)는 "중국 대표팀 경기를 많이 보지 않았지만, 포항에서 챔피언스리그를 통해 중국팀과 많이 싸워봤다. 좋은 결과도 있었다"라며 충분히 대적 가능한 상대였음을 강조했다.
슈틸리케 감독은 지난 1월 호주 아시안컵에서도 호주와의 결승전을 앞두고 교민들의 생활과 격려가 담긴 비디오를 선수들에게 상영하면서 심리 무장을 시키는 등 상황에 맞게 선수들을 자극하는데 능했다. 결승전에서 호주에 아쉽게 1-2로 패했지만, 후반 종료 직전 손흥민(레버쿠젠)의 골로 연장전으로 끌고가는 저력으로 발휘됐다.
이날 슈틸리케 감독은 중국전에 앞서 경기장에 일찍 도착해 북한-일본전을 관전한 것을 강조하며 "우리 선수들은 충분히 잘 했다. 이번 대회 우승을 할 수 있을 것 같다"라고 새로운 목표를 제시했다. 중국 격파로 자신감을 얻은 선수들이 슈틸리케 감독의 장단에 맞춰 얼마나 멋지게 춤을 추느냐가 새로운 볼거리가 됐다. 아직 그라운드에 나서지 못한 대표선수가 9명이나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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