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혜림기자] 아이돌 가수로 데뷔 8년 차를 맞은 이준호에게, 연기는 새로운 영역이자 자신만의 무엇을 보여줄 수 있는 시험대였다. '감시자들'(2013)의 다람쥐로 스크린의 벽을 가뿐히 뛰어넘었던 그는 개봉 예정인 영화 '협녀'와 신작 '스물'을 통해 어느덧 세 편의 영화 필모그라피를 지닌 배우가 됐다.
그의 연기 행보에는 뭇 아이돌 출신 배우들이 밟아야 했던 떠들썩한 특혜 논란도, 연기력 비판도 없었다. 선도 악도 기꺼이 담아낼 법한 깨끗한 마스크, 과하지 않게 캐릭터를 끌고 가는 묵묵함이 어쩌면 이준호를 가수보단 배우의 옷이 더 잘 어울리는 청년으로 여기게 만들었는지도 모른다.
이준호는 지난 25일 개봉한 영화 '스물'(감독 이병헌/제작 영화나무)로 관객을 만나고 있다. '인기만 많은 놈' 치호(김우빈 분), '생활력만 강한 놈' 동우(이준호 분), '공부만 잘하는 놈' 경재(강하늘 분), 세 청년을 주인공으로 한 영화에서 이준호는 웹툰 작가를 꿈꾸지만 갑작스레 기운 집안 형편으로 생계를 걱정해야 하는 재수생 동우로 분했다.

'감시자들'에서 경찰 비밀 조직의 요원으로 분해 짧지만 강렬한 인상을 남겼던 이준호는 '스물'을 통해 어엿한 주연 배우로 올라섰다. 처음으로 극의 중심에 위치한 배역을 연기해야 했던 그는 스크린으로 확인한 자신의 연기를 "아쉬웠다"고 평했다. "내 연기 중에선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만 보여 편하지 않더라"며 겸손한 자평으로 입을 열었다. 극 중 동우와 이준호의 스무 살이 어떻게 다르고 같았는지 대해선 "스무 살 때 내 모습 역시 동우와 같지 않았나 싶다"고 답했다.
"비슷했던 것 같아요. 스무 살은 제게 데뷔 직전과 데뷔 후 시기거든요. 데뷔 후에는 '드디어 데뷔했구나. 아싸, 열심히 해야지!'하는 마음이었다면 그 전엔 불안했죠. 꿈이 굉장히 컸기 때문에 참았던 것 같아요. 날고 기는 친구들이 많으니 그 사이에서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을지 고민이 많았죠. 뜻대로 되지 않을 땐 '포기해야 하나' 생각도 많이 했어요. 극 중 동우는 포기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계속 웹툰을 연재하게 되니 현실적으로는 가장 잘 풀린 것일 수 있어요."
'스물' 속 동우는 학원비를 내기에도 빠듯한 가정 형편 속에서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꾸리며 꿈을 키워가는 청년이다. 팍팍한 현실 탓에 마음 가는 이성 친구의 묘한 고백도 못 알아챈 양 지나쳐야만 하는 인물이기도 하다. 이준호가 동우와 자신의 스무 살을 비슷하다 여기는 데에는 "마음에 있는 사람에게도 적극적으로 표현하지 못했던" 과거가 있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 관계가 어떻게 끝날지 왠지 알 것 같더라고요. 그런 이별이 싫거든요. 가볍게 서로를 알아가는 과정도, 진짜 서로를 좋아하게 되는 감정도 연애라고 부르곤 하는데 저의 경우 상대에게 완전히 빠져들어가곤 해요. 가볍게 이성 친구를 만나듯 연애를 할 수는 없겠다고 생각했어요. 어떻게 끝날지 알 것 같아 관심이 있어도 관계가 깊이 진전되지 않았죠. 동우와 그런 면이 비슷한 것 같아요."

인기 아이돌 그룹 2PM의 멤버로 무대를 누빈 지도 어언 8년, 이준호는 세 편의 굵직한 영화들을 통해 연기의 재미를 제대로 알아가는 중이다. "배우로서 한 번에 '빵' 뜨는 것은 애시당초 포기했었다"고 웃으며 말한 이준호는 "연기를 하고 싶었지만 이전엔 기회가 없었다"며 "기회란 원한다고 주어지는 것이 아닌, 준비가 됐을 때 주어지는 것이라 생각한다"고 답했다.
"누군가는 '나도 모르게 기회가 왔다'고 말하는데, 저의 경우는 꾸준히 오래 봐야 하는 유형인 것 같아요. 데뷔 후 5년 간 개인적인 스케줄이 아무 것도 없을 때, 혼자 기다렸어요. '언젠가 오겠지' 하면서요. 항상 자신감은 있었어요. '한번 시켜만 줘 봐라. 보여줄게' 하는 마음이었죠. 정말 막연하죠?(웃음) 그런 이상한 자신감이 있었어요. 언젠가 나를 보여줄 수 있는 기회가 올 것이라는 생각이요."
자신감의 태동은 막연했지만 결과는 막연하지 않았다. 또래 '연기돌'들과 비교해 뒤지지 않는 평가를 얻었고, '감시자들'에 이어 '스물'에도 흥행의 기운이 넘실대고 있다. 영화계가 '배우 이준호'를 끌어안은 이유가 무엇이라 생각하는지 묻자 그는 멋쩍은 표정으로 고민하다 이내 특유의 눈웃음을 활짝 지어보였다.
"뭘까요? 정말 모르겠는데… 사실은 그 이유를 더 모르겠을 만큼 더 찾아줬으면 좋겠어요.(웃음) 편안함일 수도 있겠네요. 신인 배우들 중에도 잘 생기고 개성 많은 분들이 굉장히 많은데, 그 중 선택됐다는 것은 큰 행운이죠. 감사한 일이기도 하고요."
이준호는 가수로서도 배우로서도 스스로에게 엄격한 기준을 들이대는 편이다. "만족하면 그 순간 끝이라고 생각한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이준호는 "남들이 옆에서 '좋았다'고 해도 '그랬나요? 그럼 다행이죠'라고 답할 뿐, 사실 그 결과물이 내 마음에 든 적은 없었다"고 말했다.
"늘 아쉬움은 있지만 후회는 없어요. 지난 8년을 정말 열심히 달렸거든요. 많은 일들이 있었지만 후회 없이 달렸어요. 어쩔 수없이 겪어야 했던 일들도 있었지만, 그 계기로 제 멘탈이 단단해졌다고 생각해요. 웬만한 일로는 쓰러지지 않는 정신력이요.(웃음)"
한편 '스물'은 '과속스캔들' '써니' '타짜-신의 손' 등의 각색가로 활동한 이병헌 감독의 첫 상업영화 데뷔작이다. 지난 25일 개봉해 100만 관객을 돌파하며 흥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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