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상숙기자] 한국시리즈 미디어데이가 열리는 10월 23일은 LG 투수 류택현의 생일이다. "생일에 승리투수가 되면 참 좋을 텐데… 그 날 경기가 없네."
한국시리즈 승리는 포스트시즌 투수 최고령 출장 기록을 세운 뒤에도 "승리투수도 아닌데…"라며 멋쩍어하던 류택현이 유일하게 욕심낸 기록이다.
결국 류택현의 그 바람은 내년을 기약하게 됐다. LG는 플레이오프에서 두산에 1승 3패로 밀려 한국시리즈 진출에 실패했다.
2013년은 LG와 류택현에게 특별한 한 해였다. LG는 11년 만에 가을야구 무대에 올랐다. 정규시즌을 2위로 마치고 플레이오프에서 두산과 만났다. 비록 고비를 넘지 못하고 플레이오프에서 탈락했지만, LG의 가을은 충분히 뜨거웠다.
류택현도 의미 있는 기록을 세웠다. 그는 지난 19일 플레이오프 3차전에서 LG의 세 번째 투수로 등판했다. 41세 11개월 26일의 나이로 마운드에 오른 그는 종전 포스트시즌 투수 최고령 등판 기록을 새로 쓴 것이다. 팀이 3-4로 뒤진 6회말 1사 1루에서 마운드를 이어받은 류택현은 정수빈에게 번트 안타를 허용한 뒤 유원상으로 교체됐다.
위기 순간이었지만, 생각은 오히려 단순했다. "더블 아웃만 잡으면 우리 팀이 이길 수 있다는 생각만 했다. 최고령 등판 기록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
류택현은 4차전을 앞두고는 "나는 별 거 있겠나. 최소한의 안타만 허용하고, 승리를 지켜야 한다. 3시간 이기다가 3초 만에 질 수도 있는 게 야구다. 늘 긴장하고 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류택현은 1994년 1차 지명으로 OB에 입단한 후 1999년 LG로 이적했다. 2010년 시즌 종료 후 팔꿈치 부상으로 팀에서 방출된 뒤 자비로 인대접합 수술을 받고 힘겨운 재활을 거쳐 다시 마운드에 섰다. 그야말로 LG의 살아있는 역사다.
그는 "끝이라고 생각했는데 야구를 오래 하니 이런 날도 온다. 기대 이상을 이뤄냈다"며 웃었다.
두산과의 정규시즌 마지막 경기를 마치고 2위를 확정지은 뒤 마주한 동료들의 표정도 생생하게 기억한다. "누가 한 마디만 하면 다들 눈물을 글썽였다. 선수들끼리 건배하면서 응원가를 불렀다. 몇 시간이 지나도 흥분이 가라앉지 않더라."
베테랑이 느낀 올해 LG의 상승세는 분명 달랐다. 류택현은 "항상 6월에는 팀 성적이 떨어졌는데 올해는 올라가더라. '되겠구나' 싶었다. 내가 시즌 막판에 페이스가 떨어져 팀에 도움이 못된 게 아직도 아쉽다. 내가 좀 더 잘 했으면 1등도 했을 텐데"라며 아쉬움을 감추지 못했다.
그리고 그는 플레이오프 5차전을 준비하고 있었다. 4차전을 이이고 5차전까지 2연승을 달려 한국시리즈에 진출하겠다는 각오였다. "긴장이 풀릴 때면 수술 후 처음으로 잠실구장 마운드에 올랐던 순간을 떠올린다. 이 악물고 던졌던 때를 돌아보고 마음을 다잡는다."
그러나 끝내 류택현에게 등판 기회는 돌아오지 않았고, LG는 4차전에서 두산에 패하며 그대로 한국시리즈행 티켓을 내줬다. 류택현이 포스트시즌에서 던진 공은 단 두 개. 그렇게 올 시즌 류택현의 가을 무대도 아쉬움 속에 막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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