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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배우 김명민이 한국을 떠났다면?(인터뷰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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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연가시'에서 가족 위해 고군분투하는 재혁 역

[권혜림기자] 배우 김명민의 연기는 언제나 완결적이다. 제 몸을 던져 메소드 연기를 펼치는 배우들을 논할 때 그의 이름이 빠지지 않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헛점 없는 연기력처럼 빈틈 없는 삶을 살았을 것 같지만, 사실 김명민은 '아는 사람은 다 아는' 위기를 거쳐 지금의 자리에 섰다. 영화 '연가시'에서 그가 연기한 소시민 재혁처럼, 배우 김명민에게도 생의 허기가, 빈틈이 있었다.

◆"'불멸의 이순신', 나를 원점으로 돌려놨다"

지난 2008년 MBC 드라마 '베토벤 바이러스'로 브라운관을 장악한 뒤, 그는 자신의 연기 인생과 일상을 다룬 MBC 스페셜 '김명민은 거기에 없었다'에 출연해 과거 뉴질랜드 이민을 계획했었다고 털어놓은 적이 있다. 오랜 기간 준비한 영화의 개봉이 무산되는 등 슬럼프에 빠졌던 시기였다. 당시 KBS 1TV '불멸의 이순신'의 주인공으로 낙점되지 않았다면 그는 모든 것을 정리하고 훌훌 떠났을 터다.

김명민이라는 출중한 내공의 배우는 기적같은 타이밍 덕에 세상의 빛을 제대로 봤다. 영화 '연가시' 개봉을 앞두고 지난 4일 서울 삼청동에서 만난 그는 "'불멸의 이순신'은 연기를 꿈꿨던 원점으로 나를 돌려놓은 작품"이라고 말했다.

"가끔 그런 생각을 해요. '불멸의 이순신'이 없었다면 어땠을까. 사랑하는 가족을 힘들게 하지 않으려고, 마음이라도 편하게 살려고 한국을 떠나려 했는데, 그랬다면 정말 풍족한 마음으로 살 수 있었을까. 그간 한 번도 다른 길을 생각치 않고, 부모님의 반대까지 무릅쓰고 연기만을 꿈꿨는데 그 길을 내 발로 돌아 나왔다면 어땠을까. 무당이 굿을 안 하면 몸이 아프다고, 배우에게도 신기와 비슷한 그런 기운이 분명히 있어요. 떠났다면, 저도 많이 힘들었을 거에요."

◆"배우의 길, 내 업보이자 운명"

그는 배우의 길을 "내가 타고난 업보"라고 표현했다. "운명같은 이 길을 거스르고 다른 길로 갔더라면 얼만큼의 만족과 풍족함을 얻었을지, 가 보지 않은 길이지만 궁금할 때가 있다"고도 말했다.

그래서 지난 2005년 KBS '연기대상'에서 "모든 것을 내려놓으려고 했었다. 나 자신을 위해 연기하지 않겠다"고 말한 그의 대상 수상소감은 많은 시청자들의 눈길을 붙잡았다. 김명민은 드라마 단역 연기자들과 스태프들, 선배 배우들과 가족에게 모든 공을 돌리며 참아온 눈물을 쏟았다. 배우가 아닌 삶을 택하려 했던 그는 떠나기 전 그야말로 영화처럼 이순신 역에 캐스팅됐고, 그 운명적인 타이밍은 2012년 현재 배우 김명민을 있게 했다.

관객이자 시청자로서, 기자는 넌지시 "그 때 떠나지 않아 참 다행"이라고 말했다. 그가 '불멸의 이순신'을 만나지 못하고 한국을 떠났다면 우리는 김명민이 연기한 장준혁을, 강마에를, '연가시'의 재혁을 만날 수 없었다. 돌아온 답은 의연하고 무덤덤했다.

"내가 떠났다면, 그리고 다른 배우들이 그 역할을 맡았다면 그 땐 아쉬움조차 들지 않았겠죠. 김명민이라는 배우가 세상에 태어나지 않은 것과 마찬가지니까요. 존재 자체가 없었으니 제 부재로 인해 안타까울 이유가 없어요. 사실 그게 더 무섭죠. 오히려 다른 분들이 해서 더 잘 됐을 수도 있고요.(웃음)"

◆"트라우마 없는 캐릭터는 없다"

유독 강렬한 역할들을 연기했던 배경을 묻자 김명민은 "어떤 대본이든 강렬하지 않은 캐릭터는 없다"는 현답을 내놨다. 모든 주인공들은 트라우마를 가지고 있고, 배우가 이를 어떻게 만들어내는지가 관건이라는 이야기였다.

'연가시'의 재혁 역시 김명민 나름의 호흡으로 만들어졌다. 변종 연가시에 의한 재난 상황을 그린 영화 '연가시'에서 그는 촉망받는 교수였지만 주식 투자 실패로 제약회사 영업 사원이 된 재혁으로 분했다. 김명민은 특유의 능청스러운 연기로 초라해진 가장의 뒷모습을 가슴 아리게 재현했다.

가족을 살리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재혁의 처절함은 도시의 적에 맞선 스파이더맨의 호투조차 넘어섰다. '연가시'는 개봉 후 연일 박스오피스 1위를 수성해 온 '어메이징 스파이더맨'을 제치고 개봉일인 지난 5일 박스오피스 정상에 등극했다.

"'연가시'의 재혁이 히어로가 아니라는 사실은 아쉬우면서도 매력적으로 다가왔어요. 자칫 평범해 보이는 그에게도 사연이 있고 트라우마가 있어요. 어떤 역할이든, 그 내면을 자기만의 색으로 표현해 내는 것이 배우의 몫이죠."

'연가시'에서 호연을 펼친 그를 보며 새삼 '불멸의 이순신'에, 한국에 남기로 했던 김명민의 결정에 고마운 마음이 드는 이는 비단 기자만이 아닐 것이다. 스크린과 브라운관에서 김명민이 재현해낼 수많은 삶과 상처는 또다시 보는 이들의 마음을 일렁이게 만들 것이기 때문이다.

조이뉴스24 권혜림기자 lima@joynews24.com 사진 박영태기자 ds3fan@joy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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