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인상을 타지 못한다면 산으로 들어가서 운동에 전념해야죠."(김영후)
"저야 대학에서 왔으니까 못 타면 그만이지만, 타면 좋을 거에요."(유병수)
생애 단 한 번밖에 받을 수 없는 프로축구 신인왕을 놓고 후보자를 배출한 강원FC-인천 유나이티드 양 구단의 관계자들은 22일 서울 그랜드힐튼호텔 컨벤션센터에서 열린 '2009 쏘나타 K리그 대상' 시상식 전까지 치열한 홍보전을 펼쳤다.
인천은 유병수(21)가 결승골 등에서 김영후(26)에 우위를 보여(6골-1골) 영양가에서 앞선다는 보도자료를 돌렸다. 강원은 김원동 사장이 직접 언론사를 상대로 김영후의 장점을 부각시키는 등 백방으로 뛰어다녔다. 유병수는 34경기 출장 14득점 4도움, 김영후는 30경기에서 13득점 8도움으로 우열을 가리기 힘든 박빙의 대결을 벌였다.
시상식장에서 두 선수는 멀리 떨어져 있었다. 김영후는 팀 관계자와 떨리는 마음을 부여잡고 있었고, 유병수는 경남FC 김병지의 500경기 출전 기념 유니폼 앞에서 사인을 남긴 뒤 홀로 시선을 어디로 향할 줄 모른 채 있었다.
둘은 올 8월 한일 올스타전을 통해 소통한 사이다. 공격수라는 포지션에 신인이라는 공통분모로 묶여 서로에 대해 호감도 살짝 가졌다고 한다. 그러나 이후 서로 연락을 취하지는 못했다고 한다.
이미 K리그의 2부리그격인 내셔널리그에서 최우수선수(MVP)와 신인왕을 수상한 경험이 있는 김영후지만 떨림은 어찌할 수 없었다. 괜찮으냐는 취재진의 물음에 김영후는 "뭐라고 말을 해야 할 지 모르겠다. (신인상) 타면 좋은 거지만 못 타도 어쩔 수 없는 것 아니냐"라며 담담한 표정을 보였다.
강원FC 홍보팀 권민정 사원은 "김영후가 신인상을 타지 못하면 산으로 들어가서 운동에만 전념하겠다고 하더라"라며 속내를 우회적으로 설명해줬다.
유병수는 좀 더 가벼운 마음으로 시상식을 기다렸다. 이틀 전 직접 동네에서 구매한 검은색 줄무늬 정장에 셔츠와 흰색 넥타이를 매고 나름대로 멋을 내고 온 그 역시 "마음을 비웠다. 타면 좋은 거지만 안 돼도 어쩔 수 없는 일 아니냐"라고 말하며 웃었다.
오히려 그는 "저보다는 (김)영후 형이 나이도 있고 신인상도 타봐서 더 초조할 것 같아요"라고 마음을 비운 듯하면서도 은근히 상대를 압박하는 말을 내뱉었다. 이어 "팀 선,후배들은 당연히 제가 타야 한다고 그러더라고요. 꼴찌 팀에서 신인상을 받을 수 있느냐고도 하던데요"라며 동료의 응원 힘을 빌렸다.
떨림을 뒤로하고 두 선수는 시상식장에 앉아 발표를 기다렸다. 결과는 110표의 기자단 투표에서 71표를 획득한 김영후의 신인왕 등극이었다. 유병수는 말없이 손뼉을 치며 직접 단상에 올라가 김영후를 축하해줬다. 이 순간 김영후와 내셔널리그 울산 현대미포조선부터 동고동락했던 최순호 강원FC 감독은 손수건으로 눈물을 닦았다.
김영후는 "K리그 드래프트에 실패하고 내셔널리그로 가게 됐지만 언젠가 K리그로 갈 수 있다는 꿈을 저버리지 않았다. 힘겨운 시간을 이겨냈다"라고 벅찬 소감을 밝혔다. 이어 "이 나이에 신인상을 타는 게 부끄럽고 창피하지만 신인왕으로 뽑아줘 감사하다"라고 소감을 전했다.
김영후의 손에는 트로피와 함께 상금 500만 원이 들려 있었다. 다행히 산으로 가지 않게 됐고, 1988년 고정운(일화 천마), 1996년 박건하(수원 삼성), 1997년 신진원(대전 시티즌)의 뒤를 이어 팀 창단 첫 해 신인왕 수상자가 되는 기쁨을 함께 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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