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마더'는 배우 김혜자로부터 출발한 이야기다. 하지만 '마더'의 어머니는 수십년간 우리가 봐왔던 자애로운 어머니가 아니다.
21일 인터뷰를 통해 만난 김혜자는 자신이 연기한 '마더'의 어머니를 '어미'라고 표현했다.
"짐승 같지 않았나요? 피해자 장례식장에 찾아가 유족들에게 우리 아들은 범인이 아니라고 말하는 장면에서 순간적으로 눈이 뒤집히는데 나도 모니터하며 내 표정에 깜짝 놀랐죠. 짐승이 새끼를 낳고 낯선 사람이 들여다보면 으르렁대듯 '마더'의 엄마는 어미에 가까워요."
'마더'의 엄마는 살인범으로 몰린 아들을 구해내기 위해 혼자 사건을 추적해간다. 약간 모자란 아들은 사건 당시를 정확히 기억해내지 못해 엄마를 더욱 애타게한다. 엄마는 직접 증거를 모으고 정황을 조사하며 아들의 누명을 벗기기 위해 백방으로 뛰어다닌다.
"시나리오를 볼 때부터 시작해 아직까지도 도준(원빈 분)이를 보면 가슴이 너무 아파요. 도준이는 엄마에게 너무 가슴 아픈 자식이니까. 난 모든 엄마들이 자식이 위험한 상황에 놓이면 그렇게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자식을 위해 죽을 수 있는 건 엄마밖에 없다고들 하잖아."
그동안 TV드라마를 보며 이 나라 모든 엄마들의 모습을 대변해 온 배우 김혜자에게 '자신을 동일시해온 우리네 엄마들이 '마더'의 엄마를 본다면?'이라는 질문을 던졌다.
"많이 놀라겠지. 하지만 놀라면서도 엄마들이라면 '자식이니까 저럴 수 있다'고 하실 것 같아. 어딘가 부족해서 더 측은하고 내 목숨과 바꿨으면 좋겠을…. 자식이니까…"
작품이 끝날 때마다 한 차례씩 앓고 일어난다는 김혜자는 '마더'를 "어느 작품보다도 에너지를 필요로 하는 연기였기 때문에 홍보활동까지 모두 끝나면 크게 병이 날 것 같다"면서도 "육체는 피로할 지 모르지만 그래도 정신은 더 맑아질 것 같다"고 말하며 개운한 표정을 지었다.
"'마더'를 찍으면서 그동안 딱딱히 굳어있던 것들, 고착돼 있던 생각들이나 매너리즘에 빠져있던 것들이 새로워진 것 같은 느낌을 받았어요. 땅을 일군다고 하잖아요, 비료도 주고 땅을 다시 일군 것 같아요. 로케이션 촬영으로 전국을 돌아다니며 좋은 공기 마시니 두통도 없어지고 내게 일에 대한 열정이 다 죽었다고 생각했는데 새로운 일에 대한 열정이 남아있다는 게 신기했어요. 불씨만 남아있던 열정을 다시 타게 해준 봉준호 감독에게 정말 고마워요."
하지만 40년 경력의 연기자 김혜자에게도 '연기가 안 돼' 괴로웠던 순간이 있다고 한다. 구르고 달려야 하는 육체적인 고통보다 표현이 안 될 때가 촬영 중 가장 힘든 순간이었다고.
"감독은 '형언할 수 없는 표정'이라고 하는데 너무 답답해서 대기용 캠핑카 안에 들어가 울기도 했죠. 봉준호 감독에게 자기가 한 번 해보라고 말하고 싶었어요. 봉 감독이 나를 달래주러 차 앞에 왔기에 할 말 있으면 문자메시지로 하라고 했죠. '아무리 부인해도 세상이 환호할 때는 인정하세요'라고 보냈더라고요. 그렇게 배우를 배려해주는데 연기에 있어서 자기 마음에 안 들면 추호도 봐주는게 없어요. 그 점이 저와 같았죠."
다른듯 닮은 김혜자와 봉준호 감독은 '마더'를 위해 서로 꼭 필요한 존재였다. 봉준호 감독은 김혜자가 아니면 '마더'도 없다고 말했지만 김혜자에게서 '국민엄마'의 이미지 밖의 모습을 발견하고 뽑아낸 것은 봉준호 감독이다.
"'살인의 추억'을 보고 정말 멋있는 영화라고 생각했는데 그때쯤 봉준호 감독에게서 제의를 받았어요. 촉망받는 젊은 감독이, 그것도 내가 좋아하는 영화감독이 나를 갖고 영화를 기획한다는 게 배우로서 정말 행복한 일이었죠."
자의든 타의든 수십년을 '국민엄마'로 살아온 김혜자는 스스로 "내가 대표적 엄마상이라는 건 어폐가 있다. 자식들에게 나는 오히려 폐가 되는 엄마일 것"이라며 "내가 엄마들을 대표하는 것으로 보였다면 배우로서 연기를 잘 해서였을 거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배우가 곧 나의 삶이자 내 존재의 의미지, 내 직업이라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어요. 배우로서 '국민엄마' 보다는 다른 역도 잘 하고 엄마 역할도 잘 하는 배우라고 불리고 싶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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