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이뉴스24 정지원 기자] 지켜지지 않은 원칙들이 모여 터져버린 역대 최악의 참사, 그 충격적인 뒷이야기가 3월 21일 목요일 밤 10시 20분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 '1977 사라진 도시와 맨발의 남자'에서 공개된다.
때는 1977년 11월 11일 금요일 밤 전라북도 이리(현 익산). 이 도시의 유일한 공연장인 삼남 극장에선 수백 명의 관객들이 오직 한 사람을 기다리고 있었다. 9시 정각이 되자 한 여성이 무대에 오르고, 공연장은 환호로 가득 찬다.
바로 당대 최고의 여가수 하춘화. 역대급 신드롬을 일으키며 ‘리사이틀의 여왕’으로 불리던 그녀는 히트곡 메들리로 공연의 포문을 열고 그 뒤를 이어 하춘화의 전속사회자, 개그맨 이주일이 무대에 올랐다. 특유의 예측불허 멘트와 제스처로 관객들을 빵빵 터뜨리던 그때, 귀가 찢어질 듯한 굉음과 함께 극장 천장이 무너져 내린다. 극장 안은 순식간에 아비규환이 됐고, 수백 명의 사람들이 영문도 모른 채 건물 잔해에 깔려 신음했다.
그 악몽의 밤, 가까스로 생존한 가수 하춘화에게 직접 그날의 이야기를 들어본다.
한편, 처참한 곳은 극장뿐만이 아니었다. 한순간 시내 길바닥은 유리창 파편으로 온통 하얗게 뒤덮였고, 집들도 절반 가까이 무너져 버려 깔린 가족을 구하려는 간절한 몸부림과 서로를 찾는 울음 섞인 외침이 도시에 가득했다.
그 때, 사무실에 있던 나훈 기자는 굉음과 함께 본능적으로 카메라를 들고 건물 밖으로 나온다. 그리고 300kg이 넘는 기차 바퀴가 1km 떨어진 곳까지 날아온 걸 보고 사태를 직감한다.
대혼란 속에서도 차분히 이리역 주변을 살피던 나훈 기자는 경찰보다 먼저, 수상한 한 남자를 발견한다. 맨발에 새 운동화를 신은 채 떨고 있던 한 남자는 사고와 무슨 관련이 있을까?
한순간 이리를 폐허로 만들어 버린 이 사고의 이름은 '이리역 폭발 사고'다. 무려 1,400여 명의 사상자를 낸 이 사고는 47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역대 최악의 열차 사고로 불리고 있다.
폭발 지점에는 직경 30m, 깊이 10m의 거대한 웅덩이가 파였고, 반경 8km 내 대부분의 건물 유리창이 산산조각 난 그야말로 어마어마한 규모의 사고였던 것이다.
경찰은 30톤 분량의 화약을 실은 인천발 광주행 열차가 이리역에 머물던 중 폭발했다고 사고 경위를 설명했다. 화약을 실어 나르던 열차는 왜 그날 폭발할 수밖에 없었던 것인지 장트리오가 전말을 들려준다.
‘불타는 열정 맨’ 가수 신성이 장현성의 이야기 친구로 첫걸음 했다. 등장부터 ‘잘생겼다’라는 현성의 칭찬에 몸 둘 바를 모르던 그는 가요계 대선배 하춘화의 이야기가 나오자 얼굴을 아끼지 않는 성대모사로 녹화장을 웃음 짓게 했다. 또한 신성은 녹화 중 공개된 하춘화와 이주일의 사연을 듣고 정말 대단하다며 존경을 표했다.
첫 싱글 앨범 '보더라인(Borderline)'으로 돌아온 오마이걸 유아가 장성규의 이야기 친구로 자리했다. 유아는 자신도 무대 도중 겪었던 아찔한 에피소드를 공개해 녹화장을 깜짝 놀라게 했다. 유아는 한순간의 선택으로 생과 사, 운명이 뒤바뀐 이들의 사연을 들으며 안타까워하기도 했다.
장도연의 이야기 친구는 꼬꼬무 방문이 벌써 두 번째인 김다영 아나운서. 남다른 집중력과 공감 능력으로 이야기에 몰입하던 그녀는, 열차가 폭발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듣고 분노를 참지 못하는 한편 희생자 유족 인터뷰에 ‘감히 심정이 상상이 안 된다. 너무 처참하다’라고 말하며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일어나지 말았어야 할 끔찍한 참사의 기막힌 진실, 그리고 희생자 유족들이 전하고픈 이야기는 3월 21일 목요일 밤 10시 20분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를 통해 공개된다.
--comment--
첫 번째 댓글을 작성해 보세요.
댓글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