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이뉴스24 박진영 기자] 분명 인터뷰가 쑥스럽고 어렵다고 했지만, 한번 시작하니 이야기가 술술 나온다. 연기를 좋아하기 때문에 연기 이야기하는 것도 재미있다는 그는 배우를 그만두려 할 정도로 힘들었던 과거, 마음의 안정을 찾게 된 이유와 과정을 솔직하게 고백했다. 명상, 108배 등을 통해 스스로를 위로하고 다독이는 시간이 꼭 필요하다고 하는 그의 얼굴에 평온함이 가득했다. 이는 연기로도 이어졌다. 스스로가 즐거운 마음으로 임하니, 그가 연기한 캐릭터가 오롯이 빛날 수밖에 없다.
지난달 공개된 '살인자ㅇ난감'(감독 이창희)은 우연히 살인을 시작하게 된 평범한 남자 이탕(최우식 분)와 그를 지독하게 쫓는 형사 난감(손석구 분)의 이야기를 그린 넷플릭스 시리즈로, 동명의 웹툰을 원작으로 한다. '죄와 벌'에 대한 화두를 던지는 파격적인 스토리텔링과 스타일리시한 연출, 캐릭터를 몰입감 있게 풀어낸 최우식, 손석구, 이희준의 열연에 호평이 쏟아졌다.
이희준은 형사였지만 하루 아침에 살인을 저지른 뒤 자신의 신념을 바탕으로 살인을 이어간 송촌을 연기했다. 그는 송촌의 무자비한 면모와 히스토리를 표현하기 위해 특수 분장까지 감행하며 비주얼, 목소리 모두 바꾸는 파격 변신을 감행해 강렬한 존재감을 뽐냈다. 이에 앞서 공개된 넷플릭스 영화 '황야'에서도 광기에 사로잡힌 빌런 양기수 역을 맡아 신선한 재미를 선사했다.
현재 넷플릭스 시리즈 '악연' 촬영까지 하고 있어 새로운 '넷플릭스 아들' 타이틀을 거머쥐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까지 얻고 있다. 아직 공개되지 않은 작품도 많다. 디즈니+ '지배종', 영화 '핸섬 가이즈', '보고타'가 공개를 앞두고 있으며, 3월 15일 개막되는 연극 '그때도 오늘' 무대에 오른다. 3월 말에는 단편 영화 연출자로도 나서 의미 있는 행보를 이어갈 예정이다. 다음은 이희준과 나눈 일문일답이다.
- 작품 성적도 좋고 반응도 좋은 편인데 소감이 어떤가?
"반응은 실감 못 하겠는데 동료 배우들, 감독님이 잘 봤다고 전화를 주셔서 감사하게도 실감하고 있다. 제일 먼저 김성수 감독님이 연락을 주셨다. '한국에서 본 적 없는 연기 스타일'이라고 해주셨다. 의미가 있는 것이 감독님이 한예종 때 교수님이셨다. 몇 년 수업했는데 제가 반장이었고 그때도 저를 예뻐하셨다. 2학년 때 김성수, 박찬욱, 봉준호 감독님이 생각하는 스타가 될 것 같은 신인 배우를 추천하는 코너가 있었다. 김성수 감독님이 저를 추천해주셔서 인터뷰가 실린 적이 있다. 저를 예뻐해 주셨고, 졸업하고 '감기'를 바로 하게 됐다. 제 은사님이다. '황야'도 시사회를 보러 와주시고, 이번에도 문자를 주셔서 감동이었다. 또 다른 감독님도 연락을 주셨다."
- '황야'와 거의 동시에 나온 작품이다. '황야' 때 인터뷰를 안해서 아쉽다는 생각도 했었다.
"사실 이번에도 안 할 생각이었다. 수줍음을 잘 탄 성격이라 이런 라운드 인터뷰 자리가 어렵고 어색하다. 말도 조심해야 할 것 같고, 잘못 말해서 사고를 칠 것 같더라. 저뿐만 아니라 최우식도 어려워한다. 그런데 손석구가 '살인자ㅇ난감' 홍보를 열심히 하자고 하더라. 어색하고 어렵지만 후배가 하자고 하니 해야겠다는 마음을 크게 먹었다. 그래서 오늘도 새벽 3시까지 넷플릭스 시리즈 '악연' 촬영을 세종시에서 하고 (인터뷰 장소) 근처의 모텔에서 자고 왔다. 그런데 오늘 와서 보니 석구가 인터뷰를 안 한다고 하더라. 석구 말에 '나도 하겠다'라고 하고 있었는데 충격이었다.(웃음) 물론 석구가 지금 드라마 '나인퍼즐' 촬영을 제주도에서 해 여건이 안 된다. 그래서 '너는 안 하냐. 밥 사라'라고 메시지를 보냈다. '미안하다'고 하더라.(웃음)"
- 송촌 캐릭터에 캐스팅된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나?
"저도 저에게 왜 왔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 대본이 너무 재미있는데 '할아버지 역할이라고?'라는 생각에 황당했다. 그다음부턴 신났던 것 같다. '뭘 준비하지?'라는 생각에 신나고 재미있어했다. '남산의 부장들'도 그랬다. 제가 상상해보지 못한 것을 감독님이 저를 통해 상상하고 제안을 했다는 것이 감사하다."
- 제안을 준 지 10일 정도 만에 답이 왔다고 하더라. 그렇게 빠르게 결정한 이유는 대본이 재미있었기 때문인가?
"제가 '최악의 하루'라는 독립영화를 찍기도 하고, '남산의 부장들'도 하고 여러 가지를 왔다갔다 하니까 작품 선택 기준이 뭐냐고 물어보시곤 하는데, 저는 재미있고 심장이 뛰고 흥분이 되는 작품이면 다 하는 것 같다. 기준이 딱히 없다. 이번 작품도 드라마가 재미있는데 내가 할 역할이 할아버지라 매력적이라 바로 결정할 수밖에 없는 것 같다. 대부분 제가 할 거면 빨리 결정을 하는 편이다. 저는 기억이 안 나는데 '오!문희'도 대본을 받고 일주일 뒤에 충청도 사투리 연습을 하고 와서는 '빨리 찍자'라고 했다고 하더라. 그렇게 꽂히면 바로 하는 편이다."
- 노인 연기가 잘못 표현하면 우스꽝스럽게 보일 수도 있는데, 표현하는 데 있어서 신경 쓴 부분은?
"많은 것을 서치하고 준비를 한 후 첫 촬영을 할 때 감독님께 첫 테이크에서 인위적으로 할아버지인 척한다거나 하는 부분이 있으면 꼭 얘기해달라고 했다. 감독님이 잘 보시고 찍어달라고 하면서 주의하며 촬영했다. 저도 인위적인 척하고 싶지 않아 경계를 많이 했다."
- 실제로 노인 관찰도 많이 했다고 했다. 어떤 점을 포착하면서 표현하려고 했나?
"사람 관찰하는 걸 취미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좋아한다. 연극하고 (경제적으로) 여유롭지 않을 때도 버스, 지하철 종점까지 가서 드로잉할 정도로 좋아하고 재미있다. 관찰하고 자료 찾고 하는 것이 쌓여서 버무려진 것 같다. '저 할아버지의 저런 것이 좋다', '술 취한 말투 좋다' 하는 것들을 가져오고, 나중엔 어디서 봤는지 모를 정도로 녹아든 것 같다. 어르신들 보는 TV 프로그램도 봤다. 다른 걸 보다가도 노인분들에 관심이 가고 적극적으로 시간을 내서 찾아다녔다. 연기하는 순간도 행복하지만, 그렇게 서치하는 과정이 재미있었다. 송촌을 대본으로 보고 하기로 한 순간부터 재미있는 놀이의 시작이다."
- 따로 그 분들과 대화를 나누거나 하지는 않았나?
"관찰하면서 그림도 그리곤 했지만, 이번엔 대화를 하지 않았다. 예전에 '해무' 찍을 때는 실제 어부들과 대화를 하고 술도 마셨다. 그땐 결혼 전이라 더 자유로웠다 보니 바로 짐을 싸서 서치 여행을 다녔다. 그 과정이 행복했다. 쫓아가서 그림도 그리고, 어부를 만나 치킨에 맥주 마시면서 대화도 했다. 저보다 나이도 어렸다. 손을 봤는데 마디가 없더라. 또 그물에 손가락이 잘리기도 한다고 하더라. 바다에 나가 일을 하다 보니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몰라 (벌어 둔) 돈을 빨리 써야 한다고 하는데, 저는 얘기 듣기 전에는 상상도 못 한 일이다. 그래서 서치가 재미있고 중요하다는 생각을 했다."
- 송촌은 노인치고는 힘이 세기도 하고, 우리가 생각하는 노인과는 다른 모습이 있다. 어떻게 접목하려 했나?
"50%는 상상이다. '왜 이탕을 만나고 싶어할까', '왜 이탕을 만나야 하지?', '왜 이렇게 삐뚤어졌나' 라는 생각을 하면서 만들어나갔다. 거울을 보면서 그런 모습을 찾아가는 과정이 저에겐 즐거운 여행이다. 제가 극단 간다의 민준호 연출과 제일 친하다. 형과 운전해서 가다가 제가 항상 연기를 재미있어하니까 '20년 옆에서 봤지만 너처럼 연기를 재미있어하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 왜 재미있냐?'라고 묻더라. 그래서 생각하게 됐는데, 그 인물을 이해하고 공감하고 '왜'를 찾아가는 과정이 힘들 때도 많지만 재미있다. 그래서 남들이 하지 말라고 해도 준비를 하고 관심을 가진다. 그런 제가 신기하다."
- 그렇다면 송촌은 왜 이탕을 만나려 한 것 같나?
"30대 초반 공연을 할 때 배우들 사이 '연우 무대에 송새벽이 있는데 잘한다', '김재범이 있는데 진짜 잘한다'는 얘기가 나오면 몰래 가서 그 공연을 보곤 했다. 그런 마음일 것 같다. 나와는 다르게 악인을 구별할 수 있다는 얘기를 들었고, 노빈이 숨기려고 할 때 질투가 나지 않았을까. 날 두고 바람을 피운 것 같다는 생각이 들 것 같다."
- 최우식 배우가 촬영 당시 질문을 엄청 했다고 했고, 인터뷰에서도 이희준 배우에게 많은 것을 배웠다고 하더라. 후배들이 굉장히 의지하는 선배라는 생각이 드는데, 어떤 선배였는지 궁금하다.
"저는 김윤석 선배, 이선균 형도 그렇고 좋은 선배들에게 좋은 영향을 받았다. 제가 무명일 때 많은 작품에 저를 추천해 줬고 그 덕에 제가 자리를 잡을 수 있었다. 그래서 저도 똑같이 하려고 흉내를 내려고 한다. 연기 잘하는 후배가 있으면 오디션을 볼 수 있게 애쓴다. 제작진에게 '무례가 안 되고, 캐스팅이 아직 안 됐다면 추천을 해도 될까요?' 물어본다. 좋은 선배들께 받은 영향을 받은 그대로 다시 주는 것뿐이다. 연기가 제일 재미있어서 연기 질문하는 것도 즐거워한다. 그래서 우식이가 물어보면 숨김없이, 생각하는 대로 얘기를 해주려 한다. 그러다 보니 계속 반복이 되더라. 한 번은 이어폰 끼고 저리 가 앉아 있는데 우식이가 의자를 옆으로 끌고 와서 '뭐 들어요?'라고 하더라.(웃음) 그러면 손석구도 온다. 귀찮기도 하지만(웃음) 동생들이 나를 좋아해 주는 거니까 그만큼 좋고 행복하고 고맙다. 인터뷰 시작하기 전에도 '너무 재미있다. 촬영 또 같이하고 싶다'라는 문자를 주고받았다."
- 그런 점에서 김혜수 배우와도 드라마 '직장의 신' 이후 지금까지 인연을 이어오고 있다. 최근엔 '템플' 공연장에서 사진도 함께 찍었더라.
"극단 간다의 20주년 기념 공연을 다섯 개 연달아서 하는데, 제가 두 번째와 세 번째 공연에 출연한다. '템플'은 첫 번째 작품인데 김혜수 선배님이 보러오셨다. 저도 안 본 캐스트가 있어서 보러 갔다가 우연히 만났다. 혜수 선배님이 그런 걸 잘하신다. '직장의 신'을 할 때 다들 신인 배우라 '너희 결혼할 때 내가 사회 다 볼게'라고 했던 약속을 다 지키셨다. 제 결혼식 사회도 봐주셨다. 공연한다고 문자를 보내면 꼭 보러 오시는데, 10년 동안 제 공연을 다 보러 오셨다. 정말 배울 점이라고 생각하다. 운 좋게 좋은 선배들을 많이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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