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하얀 차를 탄 여자', 정려원의 눈부신 재발견

[조이뉴스24 박진영 기자] 그야말로 정려원의 재발견이다. 그간의 도회적인 이미지를 벗고 끔찍한 현실과 내면의 아픔을 벗어나기 위해 발버둥 치는 인물로 완벽히 변신해 가슴 아픈 서사를 완성해냈다. 자칫하면 과해 보일 수 있는 캐릭터 설정이지만, 순수함이 느껴지는 얼굴과 깊이 있는 눈빛으로 설득력을 입혔다.

영화 '하얀 차를 탄 여자'(감독 고혜진)는 피투성이 언니를 싣고 병원에 온 도경(정려원)이 경찰 현주(이정은)에게 혼란스러운 진술을 하면서 모두가 다르게 기억하는 범인과 그날의 진실에 다가가는 서스펜스 스릴러다. 정려원, 이정은, 김정민, 장진희, 강정우, 이휘종 등이 출연했다.

제22회 샌디에이고 국제영화제 BEST INTERNATIONAL FEATURE 수상, 제66회 BFI 런던영화제 스릴(Thrill) 부문 공식 초청, 제26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왓챠가 주목한 장편상, 코리안 판타스틱 배우상(정려원) 2관왕이라는 성과를 거두며 해외에서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폭설이 휘몰아친 새벽, 흉기에 찔려 피투성이가 된 은서(김정민)를 싣고 병원에 온 도경은 그녀를 언니라 부르며 살려달라 도움을 청한다. 곧이어 현장에 도착한 경찰 현주는 도경의 혼란스러운 진술 속 무언가 감춰진 진실을 직감한다. 눈 속에 증거가 사라진 그날 밤, 모두가 다르게 기억하는 범인의 정체를 추적하게 된다. 하지만 진술은 모순되고 도경의 기억은 흐릿하며 사건의 실체는 점점 더 미궁 속으로 빠져든다. 도대체 누가 피해자이고 가해자인지, 그 경계가 무너진다.

'검사내전', '눈이 부시게' 등의 조연출을 맡았던 고혜진 감독의 첫 연출작으로, 처음부터 정려원과 이정은을 염두에 두고 쓴 대본이라고 한다. 정려원과 이정은 역시 고혜진 감독에 대한 깊은 믿음과 신뢰를 바탕으로 이 작품에 함께 하게 됐다.

시작은 은서를 언니라고 하는 조현병 환자이자 작가 도경의 진술이다. 겁에 질려 횡설수설하는 도경의 말이 진실인지는 알 수 없다. 그래서 현주는 계속 의심을 하며 현장을 방문해 여러 가지 경우의 수를 생각해본다. 그러던 중 은서가 깨어나 도경과는 다른 이야기를 들려준다.

서스펜스 스릴러 장르의 특성상 반전의 배치와 긴장감을 극대화하는 편집이 굉장히 중요한데, '하얀 차를 탄 여자'는 이를 적절하게 담아내면서 마지막까지 극에 몰입하게 하는 힘이 크다. 물론 단막극으로 먼저 제작이 됐다가 영화화가 된 작품이다 보니 후반부 너무 호흡이 길고 설명이 많다는 느낌을 주기는 하지만, 그럼에도 트라우마와 상처에 맞서 악연의 고리를 끊어내는 여성 연대 서사가 깊이 있게 다뤄지면서 먹먹한 여운까지 안긴다.

배우들의 열연이 큰 몫을 한다. 불안정한 목격자 도경 역을 맡은 정려원은 지금껏 본 적 없는 새 얼굴로 불안과 혼란에 휩싸인 인물을 섬세하게 연기해냈다. 의뭉스러우면서도 눈만 보면 한없이 빨려들게 된다. 그래서 이토록 다양한 매력이 있는 배우구나 새삼 감탄하게 된다. "사랑스럽고 연약함, 보호 본능을 자극하는 눈빛이 있다"라는 고혜진 감독의 캐스팅 이유가 100% 이해되는 정려원의 열연이 극을 꽉 채운다.

경찰복을 입은 이정은은 또 한 번 묵직한 내면 연기로 존재감을 발산하며 이름값을 해낸다. 여기에 김정민, 장진희, 강정우 등 주변 인물들의 연기력도 눈부시다. 언니 역의 장진희는 툭 던지는 말 한마디, 눈빛 하나로도 심장이 툭 떨어질 정도의 살벌함이 느껴지고, 김정민 역시 마지막까지 피해자와 가해자의 경계선을 넘나들며 정려원, 이정은과 가슴 찌릿한 서사를 완성해냈다.

10월 29일 개봉. 러닝타임 108분. 15세 이상 관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