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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잔디, 열 아이돌 안 부러운 '트로트계 이효리'(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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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속도로퀸에서 임창정, 트로트 한류까지…금잔디의 트로트

[이미영기자] 고속도로 위에서 300만장의 앨범을 팔아치웠고, 1년에 지구 네바퀴 반에 해당하는 거리를 돌며 전국 곳곳에서 노래했다. 팬카페 회원수는 1만여 명에 육박하며, 매 무대마다 찾아오는 열성팬들도 많다. 일본과 인도네시아에서 꾸준히 공연도 했다.

여느 인기 아이돌 못지 않은 숫자와 놀라운 기록들, '고속도로퀸' '트로트계의 아이돌'이라 불리는 트로트 가수 금잔디 이야기다. 데뷔 16년차 이제는 탄탄하게 자리를 잡은 금잔디지만, 정규 3집 앨범 '설렘'으로 새로운 도전을 앞두고 있다. '경상도의 이효리'에서 한류 트로트퀸을 꿈꾸는 금잔디의 얼굴에, 기분 좋은 설렘이 가득했다.

◆"메들리 앨범으로 100만장", 어떻게 '고속도로 퀸'이 됐나

가수 금잔디의 스케줄 표는 빼곡하다. 자신의 집에 머무는 시간보다 도로 위에 있는 시간이 많다. 주말엔 하루 평균 4~5개의 행사를 소화한다. 그만큼 트로트계에선 알아주는 인기 스타다. 금잔디는 "얼마 전 행사를 마치고 경상도 성주의 한 식당에 밥을 먹기 위해 들렀는데, 즉석 사인회가 열렸다"는 에피소드를 들려줬다. '경상도 이효리'라는 금잔디의 별명이 새삼 실감나는 대목이다.

금잔디는 2000년 트로트를 시작했다. 강원도 홍천에서 자란 그는 어릴 적부터 유독 트로트를 좋아했다. 학창시절엔 부모님의 뜻대로 성악을 배우기도 했지만, 트로트 가수에 대한 꿈을 접지는 못 했다. 금잔디는 "성악 콩쿠르에서는 꼴찌를 했는데, 가요제에선 트로트로 일등을 했다. 무대에 올라 트로트를 부르면 같이 즐기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연스럽게 트로트 가수를 꿈꾸게 됐다"고 떠올렸다.

처음부터 탄탄대로였던 건 아니었다. 첫 앨범을 내고 금잔디라는 이름이 알려지기까지 3년이 걸렸다. 그러나 앞만 보고 달렸고, 목표를 하나 하나 이뤄냈다. 그는 "성공의 목표가 뚜렷했고 그 계획을 실천했다. 월세집 모면하기, 전세 대출 갚기, 식당 10군데 중에서 8군데서 알아봐주기 등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며 달려왔다. 뒤를 돌아볼 시간도 아까웠다. 결혼도, 연애도 사치였다"고 웃었다.

가수 금잔디에게 있어서 전환점은 2010년 초, 흔히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주로 판매되는 트로트 메들리 앨범을 발표하면서였다. 공연 실황이 담긴 뮤직비디오 DVD도 발매했다. 서서히 반응이 왔고, 2년 만에 밀리언셀러가 됐다. 300만장이라는 기록적인 판매량을 보인 이 앨범은 거의 죽어가던 메들리 시장을 살려놨다. 그렇게 금잔디는 '고속도로퀸'이 됐다.

"선배님들의 노래를 금잔디식으로 재해석해서 메들리 앨범을 만들었죠. 어르신들 입장에서는 매일 똑같은 메들리 앨범을 듣다가 젊은 친구가 옛날 노래를 부르는게 신선했던 것 같아요. 그 뒤로 찾는 사람들도 많아지고, 일이 너무 좋아서 열심히 다녔어요. 그 때 자동차 주행거리가 1년에 18만 킬로, 즉 지구 네 바퀴 반을 달린 셈이죠. 꽃축제 가서 꽃을 본적이 없고, 바닷가 행사를 가서 모래사장을 밟아본 적이 없어요. 일하고 싶은 욕심에, 인생을 즐기는 것도 모르고 앞만 보고 달렸죠."

◆발라드 가수 임창정이 곡을 준 사연은

가수 임창정과 트로트 가수 금잔디. 도무지 연관이 없어보이는 두 사람이다. 금잔디의 이번 앨범의 타이틀곡 '서울가 살자'는 가수 임창정이 작사, 작곡한 노래다. 임창정의 발라드 감성과 금잔디 특유의 애절한 보이스와 감성이 잘 어우러졌다.

두 사람의 인연은 한참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금잔디는 지금은 없어진 '도전 1000곡'에 출연하며 임창정을 처음으로 만났다. 임창정이 팬이라고 먼저 다가왔다.

"임창정 씨는 학창시절부터 팬이었고 제 이상형이었요. 그런데 '도전 1000곡' 촬영장에서 먼저 팬이라고 사진을 찍자고 하는 거예요. 관광버스에서 제가 나오는 노래 화면을 보고 인상에 남았다고 하더라고요. 그 때 '기회가 되면 노래하나 선물해주겠다. 좋은 인연으로 보자'고 했어요. 당연히 흘려들었는데, 얼마 전 진짜 노래를 주더라고요."

"발라드곡이었는데 제 스타일로 부르다보니 약간의 트로트가 겸비됐어요. 임창정 씨가 부르면 또 한번의 이슈를 불러일으킬 만한 노래였어요. 아주 성심성의껏 가이드도 해주셨어요. 곡비 대신 소주 한 잔을 선물했죠. 평생 술을 사도 아깝지 않을 만큼, 정말 고맙고 노래도 마음에 들어요."

'서울가 살자'는 단순히 임창정이 선물해준 노래라 특별한 것만은 아니다. 금잔디는 이전까지 정통 트로트만을 고집해왔다. 세미 트로트 가수들을 배타적으로 바라보던 시기도 있었다. 그러나 지난해 공황장애를 겪으며 일을 잠시 쉬는 동안, 트로트를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보게 됐다.

"아프고 난 뒤 성숙해진 거죠. 사실 그 전엔 세미 트로트 하는 친구들을 보면서 전 다를 거라고 단호하게 이야기 해왔어요. 그런데 트로트라는 음악 장르가 두루두루 표현을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고, 도전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죠. 아마 재작년 같았으면 임창정 씨가 수백곡을 줬다고 해도 안 받았을 것 같아요. 그런데 작년을 기점으로 변화가 없으면 트로트는 매도될 수 밖에 없겠다, 이제는 트로트계 허리라는 책임감을 갖고 후배들에도 귀감이 되는 모습을 보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금잔디가 노래하는 이유

팬클럽 회원들이 가수 금잔디를 부르는 애칭은 '잔디공주님'이다. 금잔디의 노래는 흥을 돋우고, 마음을 어루만져준다. 무대 위에선 에너지와 애교가 넘친다. 금잔디의 노래에 즐거워하고 힐링하는 팬들이 많다. 무대에 서는 이유다. 금잔디는 "제 노래로 누군가의 일상이 바뀌고 아팠던 마음이 치유가 된다고 할 때 음악의 힘을 느낀다"고 말했다.

"실제로 제 음악을 듣고 마음의 병을 고쳤다고 하는 분들이 있어요. 친정 어머니가 돌아가신 직후 간암 4기 판정을 받은 어머님이 계셨어요. 친정 어머니가 제 팬이었대요. 어느날 제가 그 병원에 공연을 하러 온다는 이야기를 듣고 저를 찾아와 친정 어머니 이야기를 하며 '사진 한 장만 찍자'고 하더군요. 죽을 날만 기다리던 그 분이 제 노래로 즐거움을 찾고 행복해졌다고. 어머님이 완치 판정을 받으셨는데, 저 역시도 너무 행복했고 노래의 기적을 느꼈죠." 금잔디는 요즘 새로운 꿈을 품었다. 앞만 보고 달리는게 아니라 즐기면서 노래를 하고 싶다는 것. 더불어 트로트가수로서는 큰 그림을 그리고 있다. 한류 트로트 바람을 일으키고 싶다.

"일본과 중국 진출을 앞두고 프로모션을 진행 중이예요. 인도도 4년 연속으로 다녀왔는데, 해마다 공연을 찾는 현지인들 수가 늘어가는게 보여요. 언어로 소통은 힘들지 몰라도 음악은 다르다는 것을 몸소 느끼고 왔어요. '우리의 한 어린 트로트 음악이 한류에 한 몫 할 수 있겠구나' 생각했죠. 한국의 좋은 음악이 있다는 걸 알려주고 싶어요."

조이뉴스24 이미영기자 mycuzmy@joy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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