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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FF결산③]남동철, 한국 신진영화인의 미래를 내다보다(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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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제를 지키는 방법은 영화제를 여는 것 "

[권혜림기자] 난관, 또 난관이었다. 정관개정이라는 험난한 산을 넘었지만 영화인 비상대책위원회(이하 영화인 비대위)의 영화제 보이콧 철회는 불발됐다. 이용관 전 집행위원장의 해촉 후 그에 대한 대응에 집중하다보니 정작 영화제 준비는 개최 두어달여를 앞두고야 시작할 수 있었다. 올해 제21회 부산국제영화제가 개최되고, 어느덧 폐막을 앞두고 있다는 사실은 어쩌면 그 자체로 기적 같은 일이었다.

2년 전 영화제의 '다이빙벨' 상영 후 촉발됐던 외압 논란은 의도치 않게 영화인들 내부의 의견차를 낳았다. 영화제의 독립성과 자율성을 수호해야 한다는 같은 뜻을 둘러싸고 서로 다른 방법을 제안했다. 이 전 집행위원장의 명예 회복, 부산시장의 사과는 정관개정 이후에도 남겨진 영화인 비대위의 요구 사항이었다. 더없이 합당하고 이상적인 요구지만, 그 당위성과는 별개의 문제들이 남아있었다.

부산국제영화제가 겪은 일련의 사태에서 가장 큰 고민에 당면한 사람이 남동철 한국영화 프로그래머라는 사실엔 동의할 수밖에 없다. 내부의 이해관계와는 한 발짝 떨어진 아시아 영화인들은 오랜 고초를 겪은 올해 영화제를 적극 지지하는 길을 택했다. 일본의 고레에다 히로카즈, 대만의 허우샤오시엔 등 부산과 깊은 인연을 맺어 온 아시아 거장들이 초청작도 없이 영화제를 찾았다. 하지만 한국영화계의 사정은 조금 복잡했다. 매년 영화제를 빛냈던 한국의 유명 감독들을 올해 가을 부산에선 볼 수 없었다.

참여를 통해 영화제를 지지할 것인지, 불참을 통해 권력을 압박할 것인지를 두고 많은 영화인들이 갈등에 빠졌지만, 출품 기한을 얼마 남기지 않고 기적처럼 출중한 작품들이 영화제의 문을 두드렸다. 그 덕에 올해 부산국제영화제의 한국영화 프로그램은 탁월했다. 영화제가 최다관객수를 연이어 경신했던 최근 몇 년 간의 기록과 비교해봐도 그랬다.

보이콧이 철회되지 않은 가운데 이미 개봉한 상업 영화들이 주인 '한국영화의 오늘-파노라마' 부문에서 화려한 게스트들을 기대할 순 없었다. 그 빈 자리를 채워낸 것은 '한국영화의 오늘-비전' '뉴커런츠' 부문 등의 국내 신진 영화인들이었다.

영화제 폐막을 앞둔 지난 14일 남동철 한국영화 프로그래머를 만나 올해 영화제의 고단했던 여정을 함께 돌이켰다. 올해 출품작의 경향과 영화 초청 과정의 이야기는 물론, 영화제를 지키는 더 나은 방법에 대한 굳은 생각도 확인할 수 있었다.

이하 부산국제영화제 남동철 프로그래머와 일문일답

-논란과 고난 속에 준비한 영화제인데, 준비 과정을 듣고 싶다.

"작년부터 올해까지 부산시와 싸워야 하는 상황이 이어졌다. 작년 12월 감사 결과가 나오고 고발 결정이 난 뒤 그에 대한 대책회의가 매일 있었다. 서울에서 반응하는 영화인들과도 계속 대화했고, (이용관 전 집행위원장의 피소와 관련해 변호사 선임비 마련을 위한) 일일호프도 열었다. 2월 이 전 위원장이 해촉됐고 당시 서병수 부산시장이 조직위원장직을 그만둔다는 발표도 있었다. 상황이 계속 바뀌어 대응을 준비하는 일들을 했다.

이후엔 정관개정을 했으나 여전히 보이콧을 철회할 수 없다고 해서 영화인들을 설득하기 위해 계속 사람들을 만나는 작업을 했다. 7월 말까지 계속 그런 일들만 했다. 영화를 틈틈이 보긴 했지만 올해 영화제가 열릴 수 있을지 계속 걱정을 하며 사람들을 설득했다. 두 발을 뻗고 잔 적이 없었다. 이 작업들이 신경을 날카롭게 하는 일이라서, 자다가 화가 나기도 하고 자꾸만 잠에서 깰 정도였다."

-보이콧을 선언한 단체들, 혹은 참석을 망설이는 영화인들을 어떻게 설득하려 했나.

"8월 중순까지 영화 선정을 끝내야 했는데, 영화인 비대위가 보이콧을 했으니 많은 영화인들이 고민 중인 상황이었다. 영화 선정, 참석과 관련해 수락을 안해주는 영화인들이 많아 한 명 한 명 설득했다. '영화제를 하지 않고 영화제를 지킬 수 있는 방법은 없다'고, '영화제를 한 해 하지 않고 내년에 할 수 있다는 건 순진한 생각'이라고 설득했다. '그렇게 되면 결국 한국영화인들의 소중한 자산을 빼앗긴다 해도 할 말이 없어질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암담한 상황이었지만 조금씩 설득에 응해주는 이들이 있었다. 여전히 보이콧 중인 단체도, 사람도 있지만 영화제를 정상적으로 할 수 있는 모양새를 만들어 개최 기자회견을 할 수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준비됐지만 올해 한국영화 프로그램에 대한 호평이 잇따랐다.

"그래도 좋은 영화들이 만들어져 들어왔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어쨌든 걱정은 있다. 부산국제영화제는 그나마 독립영화와 주류 상업영화가 다 같이 모여, 전체가 힘을 내 한국영화를 붐업시키는 효과를 가지고 있는 곳이다. 독립영화는 독립영화대로 상업영화와 교류하고, 상업영화는 독립영화를 통해 자극을 받을 수 있는 장이다. 올해와 같은 상황이 계속되면 독립영화만의 잔치가 될 텐데, 그건 문제다.

독립영화전용관을 예로 들면, 독립영화가 그 카테고리 안에만 머물게 됐을 때 거꾸로 이 영화들이 상업영화의 질서 안에 절대 못 들어가게 되는 부작용이 있을 수 있지 않나. 둘의 구분이 너무 분명해지고 경계가 너무 높아지면 서로에게 안 좋은 효과를 받을 수 있다는 이야기다. 그마나 부산영화제는 그 벽을 허물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곳이었다. 계속 그 역할을 하고 싶으나 교류가 줄어들까봐 걱정이 됐다. 내년에는 회복될 것이라 기대한다.

독립영화 진영에서는 잘 만들어진, 재밌고 완성도 있고 새로운 영화들이 계속 만들어지고 있다. 부산국제영화제는 그런 영화들이 주목받을 수 있는 많지 않은 기회다. 그 기회를 독립영화인들끼리 지킬 순 없다. 상업영화, 주류영화 쪽에서 독립영화들이 빛을 볼 수 있게 잘 연결해주고 주목해주고 박수쳐주고 격려해줘야만 가능한 일이다. 그런 조화가 이뤄지면 좋겠다. 부산은 그런 기회라고 생각한다. 나 역시 그 입장에서 프로그래밍을 하고 있고, 향후에도 그런 기회들을 넓힐 수 있는 국가적, 정책적 지원이 계속되면 좋겠다."

-올해 초청작들 중에는 유독 성소수자, 가출 청소년들에 대한 이야기가 많았다.

"유독 출품작 중에 그런 이야기가 많았다. 특별한 이유가 있는지는 모르겠는데, 실제 사회 문제 같은 것이 부각돼서 그런 것 같기도 하다. 퀴어 영화도, '가출팸'에 대한 영화도 올해 갑자기 많아졌다. 그 중 재밌는 작품들을 선정했기 때문에 그런 영화들이 많다고 느끼는 것 같다."

-큰 산이었던 정관개정에는 김동호 이사장(조직위원장의 새 명칭)의 역할이 컸다.

"강단있게 나가야 할 때와 대화해야 할 때를 정말 잘 구분하시는 분이다. 승부사의 모습을 보여줄 때도 있었다. 여러 위기를 거쳐 기적적으로 우리가 원하는 방향으로 정관개정을 할 수 있었다. 사실 나는 비관적이었다. '애만 쓰고 안 되면 어쩌나' 생각했었다. 그런데 해내시더라."

-올해 처음으로 혼자 집행위원장으로 나선 강수연 집행위원장은 1년 전과 비교해 더 단단해진 느낌이었다.

"부산시와 싸우는 과정에서 강수연 위원장에게 매우 고마운 순간이 많았다. 그 분이 보여준 어떤 모습들은 사실 아주 아주 놀라웠다. '여장부'라는 것이 이런 뜻이라고 생각했다. 본인이 뱉은 말에 반드시 책임지는 성격이고, 아닌 것은 단칼에 아니라고 자르는 분이다. 아마 조직 생활을 해보지 않았다는 이유로 만만히 봤다가 큰 코를 다친 (외부의)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판단이 굉장히 빠르고 정확하다는 것도 신기하다. 말 그대로 조직생활을 해보시지 않았는데 어떻게 이럴 수 있나 싶을 때도 있다."

-규모는 축소됐지만, 올해 영화제를 무사히 치렀으니 큰 산을 넘었다고 봐도 될까.

"무사히 치렀다는 것이 너무 다행이다. 외형적으로는 배우들이 조금 덜 왔고 감독들 중에서도 안 온 사람들이 있었고 더군다나 태풍도 있었다. 김영란법이 또 하나의 이슈이기도 했다. 그 전에 지진도 있었으니, 많은 악재들이 한꺼번에 쏟아졌다. 정말 너무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행사의 경우 외형적으로 줄기는 했어도 관객들이 영화를 보는 정도는 비슷해 매진도 많이 되고 관객과의 대화(GV)도 많이 진행됐다. 반응이 좋은 영화들도 굉장히 많았다. 본연의 목적을 잘 살린 영화제가 됐다고 생각하고 있다. 한편으로 아쉬운 것들도 있지만 핵심적인 것들은 지킨 영화제가 아닌가 생각한다. 관객, 영화인, 게스트들의 전체적 반응도 비슷한 것 같다. 아시아필름마켓의 경우도 내실 있게 잘 이뤄진 것 같다."

-이두용 감독 회고전에 대해서도 들려달라.

"사실 이두용 감독 회고전에 조금 더 많은 사람들이 오길 바랐다. 영화도 보고, 널리 알려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이두용 감독은 지금 가장 활발히 활동 중인 감독들이 영향을 많이 받은, 그들이 좋아하는 감독이기 때문이다. 올해 감독조합 소속 감독들이 많이 올 수 없는 상황이지 않았나. 이두용 감독에 대한 절대적 존경을 여러 번 이야기한 박찬욱, 류승완, 오승욱 감독 등을 함께 모시고 하지 못해 안타깝다. 오셨다면 분명 축하해 주셨을 것이다.

올해 회고전의 여덟 편 중 '피막'과 '최후의 증인'을 디지털 복원 버전으로 선보였는데 해외 게스트들에게 좋은 반응을 얻었다. '최후의 증인'은 개봉 당시 한 시간 정도 잘린 버전이었고 이번에 상영된 디지털 복원 버전이 오리지널이었다. 2006년 경 프린트가 발견돼 그 무렵 상영되기도 했고 VOD 서비스로 볼 수도 있었지만 화질이 떨어진 버전이었다. 이번에 본 분들은 너무 훌륭하다며 좋아하더라. 이두용 감독도 '죽은 자식이 살아 돌아온 것 같다'고 하셨다. 해외 영화인들은 '이런 걸작이 있었다니'라는 반응이었으니, 이두용 감독님이 재조명 받는 기회가 되지 않을까 싶다."

-보이콧 여파에도 올해 영화제에 참석한 영화인들도 많았다. 특히 '올해의 배우상' 심사위원 김의성은 문구를 들고 레드카펫에 입장해 뜻을 밝혔는데.

"올해 고마운 분들이 많다. 예를 들면 '올해의 배우상' 심사위원 김의성, 조민수 배우들은 이럴 때일수록 참가해야 한다는 뜻을 보여줬다. 김의성은 팻말을 들었는데, 그렇게 와서 적극적인 의사표현을 하는 것이 더 맞다고 생각한다. 영화제에서 직접 기획해서 '아이 서포트 비프(I Support BIFF)' 기획전, 관련 포럼, 토론 프로그램을 만든 것도 비슷한 의미에서였다. 여전히 표현의 자유를 지켜야 한다는 큰 이슈가 남아 있기 때문이다. 영화제라는 장을 살리면서 외부를 향해 표현하는 데에도 적극적이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영화제에 참가하지 않는 방법으로 영화제를 지킨다는 것은 얼핏 맞는 이야기 같지만 현실적으로는 힘든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영화제를 지킨다는 것은 영화제를 하는 것이자, 잘 하는 것이다. 한 해 동안 영화제를 하지 않는다면 그 조직은 사라진다. 상황이 늘 낙관적이지는 않다는 이야기다. 나는 늘 누군가에게 이 영화제를 빼앗길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것을 막기 위해 애를 써야 한다고, 그러기 위해선 당연히 영화제를 잘 치러야 한다고 생각한다. 관객과 영화인들의 지지를 받는 모습을 보여줘야만 영화제를 지킬 수 있다고 믿는다."

조이뉴스24 /부산=권혜림기자 lima@joy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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