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필기자] '꽁지 머리' 김병지(46)의 축구 인생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이미지는 대표적인 '골 넣는 골키퍼'라는 것과 '2인자 국가대표'다.
김병지는 2001년 홍콩에서 열린 칼스버그컵 파라과이전에 국가대표로 선발 출전했다가 중앙선 부근까지 드리블을 해 나오는 기행을 벌였다. 당시 거스 히딩크 대표팀 감독과 핌 베어벡 코치는 김병지의 이런 행동에 벤치에서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 사건을 계기로 김병지는 국가대표 수문장 경쟁에서 이운재에게 밀렸다. 김병지의 축구 인생을 회상할 때 단골처럼 등장하는 장면이다.
김병지가 골문을 뒤로하고 튀어 나왔던 데는 K리그에서의 플레이가 한 몫 했다. 1998년 포항 스틸러스와의 플레이오프 막판 공격에 가담해 헤딩슛으로 골을 넣으며 CNN 등 외신을 통해 전세계적으로 화제가 됐다. 이후 2000년 2골을 넣는 등 '골 넣는 골키퍼'의 대명사가 됐다. 이런 기질이 국가대표 경기에서도 이어졌다가 개인적으로 큰 화를 부른 것이다.
18일 울산 문수축구경기장에서 현대오일뱅크 K리그 클래식 2016 30라운드 울산 현대-포항 스틸러스전을 앞두고 은퇴 기자회견을 연 김병지는 히딩크의 분노를 유발한 당시 드리블에 대해 "최근에는 필드플레이어형 골키퍼도 나온다"라면서 "(당시로 돌아가면) 빌드업은 괜찮지만 드리블을 하면 안되지 않을까. 그 때는 제가 봐도 과도했다. 히딩크 감독이 (그 장면을 보고) 쓰러졌는데 나도 쓰러질 것 같다"라고 농담을 섞어 회상했다.
이어 "2002 한일월드컵에서 한 경기라도 뛰었다면 회자되지 않았을텐데 그렇지 못했다"라며 "그 때로 돌아가면 그런 플레이를 할 수 있어도 드리블을 그렇게 하지 않았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당시에는 지혜와 경험이 부족했다는 김병지는 "지혜롭게 했다면 (히딩크 감독의) 신뢰를 얻었을 것이다. 지금 되돌아보면 자만심을 가졌던 것이 컸다. 불찰이었고 지혜롭게 해결 못했다"라고 솔직하게 젊은 시절의 객기를 고백했다.
그렇지만 김병지라는 걸출한 골키퍼를 통해 한국 골키퍼 계보는 순발력이 좋은 '김병지형'과 안정감을 앞세운 '이운재형'으로 갈렸다. 김병지의 계보를 김영광(서울 이랜드FC)-권순태(전북 현대)-김승규(빗셀 고베) 등이 잇고 이운재의 뒤를 김용대(울산 현대)-정성룡(가와사키 프론탈레)-김진현(세레소 오사카) 등이 따라가는 식이다.
김병지는 "나보다 잘하는 선수가 많다. (과거보다) 신체가 좋아졌다. 현 대표팀 김승규, 김진현, 정성룡 모두 그렇다. 근래 대표팀을 보면 권순태 등이 각자가 가진 기술 표현에 능하다. 굳이 내게 근접했다는 선수를 꼽으라면 권순태가 나랑 비슷한 유형이다. 신체적인 조건도 중요하다. 박준혁(제주 유나이티드(성남FC), 신화용(포항 스틸러스) 등도 있다"라고 좋은 기량의 후배 골키퍼들을 언급했다.
현역 은퇴를 하고 새로운 인생을 출발하는 김병지는 "또 다른 인생을 시작하는데 질책과 격려를 부탁한다. 지도자 선, 후배의 도움으로 성장했고 꿈을 이뤄왔다"라며 두루 감사 인사를 잊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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