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혜림기자] 오래 기다린 영화였다. 독립영화계에서 보여줬던 조성희 감독의 가능성이 장편 상업영화 데뷔작 '늑대소년'으로 폭발한 뒤였다. 날것의 거친 이미지를 아주 섬세하고 또 적절한 시각에서 가공해내는 능력이, 그에게는 있는듯 보였다. 다음 영화가 탐정물이고, 또 유명한 고전소설 속 주인공인 홍길동에게서 모티프를 얻은 이야기라는 사실은 감독이 풀어놓을 또 다른 세계에 기대를 품게 하기 충분했다.
'탐정 홍길동:사라진 마을'(감독 조성희, 제작 영화사 비단길, 이하 탐정 홍길동)은 사건 해결 99%의 성공률을 자랑하는 탐정 홍길동이 20년간 해결하지 못한 단 하나의 사건을 추적하던 중 베일에 싸인 거대 조직 광은회의 충격적 실체를 마주하게 되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 영화다.
엄청난 CG 신의 분량 덕에 '탐정 홍길동'의 후반 작업은 길고 길었다. 그새 주연 배우 이제훈은 tvN 드라마 '시그널'로 브라운관에서 뜨거운 인기를 얻었다. 영화 흥행엔 플러스 요인이었다. 하지만 개봉일인 지난 일은 '캡틴 아메리카3'의 열풍이 한창 뜨거웠던 때다.

현재 '탐정 홍길동'은 120만 명 이상의 누적 관객을 기록 중이다. 기대만큼 폭발적인 흥행 기록을 세우진 못했다. 하지만 영화를 둘러싼 평가는 대개 호의적이다. 이제껏 없었던 무드의 한국형 히어로(혹은 안티히어로)물의 탄생이라는 반응이다.
영화에 녹아있는 필름누아르의 습하고 어두운 기운에 누군가는 '씬 시티'를, 1980대 한국사회를 동화적으로 은유한 이 영화의 배경에 집중한 다른 누군가는 '살인의 추억'을 떠올린다. 시리즈로 구상하기 적합한 얼개인 만큼 2편의 탄생을 기다리는 이들도 적지 않다. 얼만큼의 흥행 성적을 내놓든, 중요한 것은 이 영화의 유의미한 도전에 대한 당위적 격려다.
이하 조성희 감독과 일문일답
-후반 작업이 무척 오래 걸렸는데, 어떤 과정이 특히 긴 시간을 필요로 했나.
"CG 작업도 있지만, 그보다 시나리오도 길게 쓰고 막판에 편집도 여유있게 했다. 천천히 작업해서 개봉이 정해진지 얼마 안됐다. 개봉 전까지는 이런 저런 작업을 계속 했다. 스스로 작업을 빨리 해야겠다는 생각은 크게 하지 않았다. 주변에서도 빨리 하라고는 안 하더라. 잘 돼서 결과가 좋아야 하니까."
-첫 작품이 큰 성공을 거둬 부담이 있었을법도 하다. '소포모어 징크스'라는 말도 있지 않나.
"매 작품 어떤 결과가 나오든 그건 항상 있는 일이다. 직업으로 삼은 이상 익숙해지려 하고 있다."
-영화의 예고가 공개된 뒤부터 '씬 시티'(감독 프랭크 밀러, 로버트 로드리게즈, 쿠엔틴 타란티노)를 떠올리는 이들이 많았다.
"레퍼런스가 많이 있었는데 '씬 시티'도 그 중 하나였다. '씬 시티' 같은 영화를 만들고자 하진 않았다. 가장 중요했던 것은 옛날 영화, 흑백 영화에서 볼 수 있는 요소들, 옛날 1950~1960년대 탐정물에서 볼 수 있는 요소들이었다. 우리영화에서처럼 페도라, 트렌치코트, 그림자 젖은 거리, 안개, 팜므파탈 이미지의 여자 등 옛 영화 향취를 불러일으키려 하는데서 출발했다. 그래서 필름누아르의 하드보일드 탐정물 느낌을 우리나라로 가져오고 가공시키는 작업에 주력했다."

-배우 이제훈과의 작업이 어땠는지도 이야기해달라.
"이제훈은 워낙에 집중력도 좋고 배우로서 가진게 너무 많은 사람이다. 장점이 많더라. 감정적으로 굉장히 좋은 것을 가진 배우다. 같이 작업하면서 이제훈에게 이렇게 저렇게 부탁을 했다기 보다, 그가 오늘은 어떤 모습을 보여 줄지를 기대하게 됐다. 도움을 많이 받았다. 윤성현 감독의 '파수꾼' 때부터 좋아했다. 윤 감독과 한국영화아카데미 동기인 덕에 '파수꾼'을 수십 번 봤다. 이제훈이 했던 모든 작품이 하나같이 좋았고 평소에도 같이 해보고 싶다는 바람이 있었다."
-영화의 결말 즈음 모델처럼 출중한 외모의 활빈당원들이 우르르 등장하는 장면이 인상적이었다.
"실제로 모델 일을 하고 쇼에 섰던 분들이었다. 좋지 않나.(웃음) 모델 분들이 재밌어 했었다. 영화나 드라마 현장 처음 온 분들이 대부분이라 호기심어린 모습이기도 했다. 우리는 오히려 그 분들을 호기심어린 눈으로 봤다. 패션쇼를 하시는 분들이 오셨으니까. 재밌는 경험이었다. 모델 분들 중 수줍음을 타는 분들이 많더라. 그러니까 더 멋있었다. '간지'가 나는 분들이 그렇게 수줍어하고 착하니까 섹시하더라."
-군사와 정치, 종교가 결탁한 광은회의 정체, 학살이라는 모티프가 한국의 근대사나 현실 사회에 대한 풍자라는 시각도 있다.
"레퍼런스들이 있었다. (학살이라는 전개에 대해선) 미국의 쿠바 침공 등 외국의 이야기나 음모론들도 있었다. 그런 것들을 풍자하려는 생각을 했다기보다는, 광은회가 학살까지 계획할만큼 사악한 집단이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그 사람들을 구해내는 길동의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서이기도 했다. 한 두 명을 죽인 살인범을 찾는 이야기보다는 더 뿌리깊고, 생각보다 높은 곳까지 연결돼있는, 더 거대하고 견고한 사악함을 그리려는 것이었다.
물론 자칫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고도 생각한다. 영화에서 '선거에서 이기기 위해' '전쟁 공포를 불러일으키기 위해' 등의 대사가 나오는데 우리가 그런 의도를 원하고 한 건 아니었다. 그런 일들을 정면으로 다루려 한 것은 아니다. 자칫 위악으로 볼수 있지 않나. 심각한 문제임에도 장식처럼 쓰였다는 오해가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군사정권, 군부에 (광은회가) 침투해있다는 데에서도 그렇다. 영화에선 광은회가 정상적이지 않은 이들이니, 허구라고 말하고 싶다. 실제 있던 인물이나 사건들, 예전 간첩 조작 사건들 등과는 전혀 관계가 없다고 말하고 싶다."
-길동이 펼칠 본격적인 활약이 아직 시작도 되지 않은 느낌이다. 2편을 염두에 둔 탓인가.
"일단 우리 영화의 특징 중 하나인데 악당 끝판왕이 영화에 안나온다는 것이다. 한 컷 혹은 두 컷, 얼굴이 안 보이는 식이다. 영화 끝에 악당을 뿌리채 뽑지 못하는, 이야기가 다 끝난게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 것이다. 뒤에 더 이야기가 있을 것 같다는, 어쩌면 화장실에 갔다 뒤를 안 닦고 나온 느낌일 수 있다.(웃음)
그게 단점이기도 하지만, 우리 영화의 개성이라 생각한다. 지금도 그 선택을 후회하지 않는다. 이야기 자체가 두 시간에 담기엔 바쁜 내용이 많다. 광은회의 정체를 몰랐는데 근원을 알게 되고, 악에서 태어났다는 것을 알게 되고, 선을 위해 일해야 함을 깨닫고, 악을 뿌리 뽑는 이야기까지 한다면 두 시간이 부족하다. 사실 두 시간 안에 뿌리 뽑힐 악이면 그렇게 큰 악도 아닌 거다. 길동이 대적하는, 혹은 하게 될 악이 얼마나 거대하고 강한 악당들인가. 그것들을 가늠할 수 있게 하는게 목표였던 것 같다.
-속편이 제작된다면 어떤 이야기를 담을 예정인가.
"콩가루 부자지간의 이야기다. 서로 못죽여서 안달인 악마와, 그 악마의 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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