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한준기자] OK저축은행은 지난 시즌 거침없는 배구를 선보였다. 이민규, 송명근, 송희채 등 젊은 선수들은 코트에서 신나게 플레이를 했다. 여기에 시몬(쿠바)의 가세는 화룡점정이나 마찬가지였다.
OK저축은행은 팀 창단 2년 만에 '봄배구'에 나섰고 여세를 몰아 챔피언결정전 우승까지 차지하는 기염을 토했다. 삼성화재의 연속 우승에 제동을 건 주인공이 된 것이다. OK저축은행이 V리그에 이렇게 새로운 바람을 일으켰다면 올 시즌은 현대캐피탈이 돌풍의 주역이 되고 있다.
현대캐피탈은 지난 시즌 OK저축은행의 질주를 지켜만 봤다. 삼성화재를 견제할 수 있는 팀으로 꼽히던 강팀 이미지는 지나간 일이 됐다. V리그 출범 후 가장 좋지않은 5위라는 초라한 성적표를 손에 쥐었다.
팀 분위기를 일신한 현대캐피탈은 올 시즌 V리그에서 새로운 흐름의 선봉에 섰다. 올스타 휴식기 이후 재개된 리그에서 거침없는 연승 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설마했던 일도 현실이 됐다. 19일 현재 무려 14연승을 기록하며 순위표 맨 앞자리에 위치하고 있다.
현대캐피탈이 주목을 받는 건 좋은 성적 때문만은 아니다. 김호철 전 감독에 이어 팀 지휘봉을 새로 잡은 초보 사령탑 최태웅 감독이 추구하는 '토털배구'가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자리를 잡아가면서 위력을 떨치고 있기 때문이다.
토털배구를 잘 보여주는 사례가 포지션 파괴다. 세터 노재욱, 이승원의 부상 때문이기도 했지만 레프트 임동규가 세터로 나서기도 했다. 이게 끝이 아니다.
날개 공격수인 문성민이 가운데서 속공을 시도하기도 한다. 속공이 주 공격 옵션인 센터 최민호가 윙 스파이커 역할을 맡는 경우도 있다. 경기 도중 이런 장면이 자주 연출되다 보니 상대팀은 여간 골치 아픈 게 아니다.
지난 17일 구미 박정희체육관에서 열린 KB손해보험과 경기에서는 현대캐피탈의 또 한 명의 레프트가 세터로 뛰었다. 한정훈이 주인공이다.
한정훈은 2세트 후반 세터 노재욱과 교체돼 코트에 나왔다. 그가 세터로서의 역할을 할 수 있는 기회는 3세트에 찾아왔다. 21-13으로 크게 앞서고 있던 상황, 웜업존에 있던 한정훈이 다시 한 번 노재욱과 교체 투입됐다. 그는 박주형이 디그한 공을 토스해 문성민에게 연결했다.
문성민은 이 볼을 받아 후위 공격을 시도했다. 스파이크를 때린 공이 라인을 벗어나 득점이 되지 않았지만 한정훈의 토스 시도는 계속됐다. 바로 다음 상황, 박주형은 리시브를 세터 한정훈에게 올렸다. 한정훈은 신영석과 깔끔한 속공을 합작했다.
한정훈은 22-14 상황에서 서브 순서가 되자 이를 에이스로 연결하는 등 짧지만 인상적인 활약을 보여줬다. 현대캐피탈의 신바람나는 배구의 한 면을 보여준 것이다.
한정훈은 세터로 코트에 나섰던 것에 대해 "아직도 (토스한) 손이 떨린다"고 웃었다. 그는 "감독님이 경기 상황을 떠나 나를 믿고 맡겨줘 정말 감사하고 고맙다"고 소감을 전했다.
현대캐피탈은 21일 안방인 천안 유관순체육관에서 한국전력을 상대로 15연승 도전에 나선다. 경기 상황이 KB손해보험전과 달리 여유있게 흘러가지 않는다면 세터 한정훈을 볼 수 있는 기회는 찾아오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분위기와 흐름을 바꾸기 위해서 '한정훈 세터 카드'를 다시 꺼낼 가능성도 있다.
현대캐피탈에게 한국전력은 껄끄러운 상대다. 한국전력이 최근 3연승으로 상승세를 타고 있는 부분도 잘 나가는 현대캐피탈에게 부담이다. 연승 행진과 1위 수성을 떠나서라도 여러모로 흥미로운 두 팀의 맞대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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