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태기자] "저 같은 선수도 불러주시고, 정말 감사합니다."
유희관(30, 두산)은 90도로 허리를 숙였다. 구단을 통해 인터뷰를 요청하자 그가 나타낸 첫 반응이었다. 지금으로부터 정확히 2년 9개월 전의 일이다. 이 기간 중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는 다 아는 얘기다. 유희관은 무명 중간계투에서 단일 시즌 18승 투수로 우뚝 섰다. 리그를 대표하는 왼손 투수 중 하나로 확실히 자리 잡았다.
슬림했던 몸매는 후덕하게 변했지만 늘어난 뱃살의 두께만큼 팀내 위상도 탄탄해졌다. 유희관은 가장 빠른 시간 내에 바닥에서 정상으로 올라 선 선수로도 여겨진다. 2013년 2천600만원이었던 연봉은 이듬해 1억원, 그리고 지난해에는 2억원으로 수직상승했다. 올해에도 큰 폭의 인상이 확실시 되고 있다. 첫 인터뷰에 몸둘바를 모르던 그는 지금은 가장 능란하게 인터뷰를 잘 하는 선수로 꼽힌다.
◆초라했던 2군 시절
'깜짝스타'로 알려졌지만 사실 유희관은 꽤 오래 프로의 물을 먹었다. 지난 2009년 2차 6라운드로 두산에 입단했으니 올해 프로 8년차가 됐다. 중앙대를 졸업하고 프로에 합류한 뒤 적잖은 기간 무명 생활을 겪었다. "대학 때만 해도 꽤 잘 했어요. 신인 드래프트 때 '2차 5라운드 안에만 들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6라운드로 밀리더라고요. 자존심이 꽤 상했지요."
프로에 합류해서도 한동안은 앞이 보이지 않았다. 첫 두 시즌 동안 이렇다 할 활약을 하지 못했다. "처음엔 구단에서도 기대가 컸어요. (이)혜천이 형이 당시 일본으로 떠났을 때여서 왼손 불펜요원으로 내심 가능성을 봤었나봐요. 그런데 1군 마운드에만 올라가면 계속 맞으니까 그 후로는 눈길도 주지 않더라고요. 결국 첫 두 시즌을 "어∼어∼" 하면서 마친 뒤 입영통보를 받았지요."
◆'반전의 계기' 상무
상무는 그의 야구인생을 바꿔놓았다. 사실 상무에 합류한 것부터가 행운이었다. "웬만큼 잘 해선 갈 수 없다는 상무에서 야구를 한 게 참 운이 좋았어요. 당시 프로 2군 및 잔류군 선수들과 경기가 많았는데, 쟁쟁한 선수들과 상대하면서 기량이 몰라보게 늘었어요. '나도 하면 할 수 있구나' 하는 자신감을 얻게 된 계기였지요." 그 밑바탕에는 성공에 대한 강렬한 의지가 숨어 있었다.
비록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무명이지만 언젠가는 자신에게도 반짝이는 햇살이 내리쬘 것이라는 희망을 버리지 않았다. "남들보다 공이 느리지만 나만의 장점을 극대화하면 얼마든지 통할 거라도 봤어요. 2군 시절부터 상무를 제대할 때까지 나를 받쳐주는 원동력이었습니다. 그게 없었으면 오늘의 나는 없었을 거예요."
◆승승장구
상무에서 제대하고 팀에 복귀한 2013년. 유희관은 1군 무대에서 본격적으로 자신의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김진욱 당시 감독의 전폭적인 신임 속에 5월부터 팀의 붙박이 선발 한 자리를 차지했다. "그 때도 운이 참 좋았다"고 그는 되돌아 봤다. "니퍼트의 부상으로 선발 한 자리가 비었어요. 덕분에 선발 등판 기회가 꾸준히 생겼고, 그 때 팀의 기대에 어느 정도 부응한 게 이후 내 야구인생이 변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였던 것 같아요."
1군 데뷔시즌인 2013년 정확히 10승 투수로 자리매김한 그는 이듬해 12승에 이어 지난해에는 18승5패 평균자책점 3.94를 기록, 리그 특급투수로 발돋움했다. 짧은 시간 '반전 야구'가 무엇인지를 왼팔 하나로 보여줬다.
◆'제2의 유희관'을 꿈꾸는 이들에게
유희관은 '인생 역전'의 원동력을 '희망'이라고 표현했다. "언젠가는 기회가 올 거라는 믿음을 버리면 안돼요. 기회는 반드시 와요. '빨리 오느냐 늦게 오느냐, 몇 번 없느냐'의 차이일 뿐이에요." 그 다음은 '준비'다. "언제 올지 모르는 기회를 살리기 위해선 결국 평소 준비하고 있어야 해요. 한 번의 기회를 제대로 살리려면 준비를 게을리 해서는 될 수 없어요. 작년에 운 좋게 18승도 해봤지만 지금까지 한 번도 '안 된다'며 포기한 적은 없었어요. 지금은 비록 초라하더라도 나도 1군의 스타들처럼 언젠가는 멋지게 야구할 수 있다고 믿었거든요."
그는 성공의 결실이 무척 달콤하다며 '동기부여'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지금은 야구하는 맛이 있어요. 무엇보다 관중의 환호를 받고 뛸 수 있는 점, 어디를 가든지 알아보는 사람이 있는 게 참 남다르더라고요. 학생 선수들, 그리고 2군에서 고생하는 후배들, 여러분은 얼마든지 성공의 가능성을 갖고 있는 분들이에요. 저를 보세요. 이 느린 공을 가지고도 여기까지 온 나도 있잖아요." '시속 130㎞의 사나이' 유희관의 알토란 같은 조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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