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태기자] "허허. 거..뭐라고 해야..허허."
무척 쑥스러웠나보다. 그는 제대로 말을 잇지 못했다. "리빌딩 전문 아니시냐"는 말에 김기태 KIA 타이거즈 감독은 벌게진 얼굴로 헛웃음만 내뱉었다.
11일 광주기아챔피언스필드. 두산 베어스와의 홈경기를 앞둔 김 감독은 "요즘이 제일 힘들다"고 했다. 피를 말리는 순위싸움. 5위 고지가 보일듯 말듯한 상황에서 막판으로 치달았다. 남은 44경기에서 승부를 봐야 할 상황이다.
전날까지 승률 4할9푼(49승51패)으로 7위인 KIA는 5위 한화(0.505)를 1.5경기로 쫓고 있다. 쫓아가면 도망가고, 다가서면 뿌리치는 상황이 몇달째 이어지고 있다. 덕아웃의 수장은 속이 바짝바짝 타들어간다.
정확히 100경기를 마친 현재 KIA의 변신은 놀라울 정도다. 개막 전만 해도 포스트시즌은 남의 일로만 여겨졌다. "9위만 면하면 다행"이라는 전망이 많았다. 그럴 만도 했다. 지난 겨울 일본 오키나와 스프링캠프에서는 10연패의 수모를 당했다. 내야의 키스톤 콤비는 나란히 입대했고, 부상자는 속출했다. 쓸 선수가 없어. 함평의 2군에서 대거 선수들을 불러올려야 했다. 그러나 세자릿수 경기를 채운 상황에서 KIA는 '가을 야구'를 향해 전력으로 달려가고 있다.
'안 될 것'이라는 선수단을 바꿔놓은 경험의 힘일 수 있다. 김 감독은 감독 경력 2년차인 지난 2013년 LG를 무려 11년만에 포스트시즌에 진출시킨 경험이 있다. 선수들의 기를 살려주면서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들도록 유도한 전략이 먹혀들었다.
KIA에서도 김 감독 특유의 리더십이 효과를 발휘하고 있는 분위기다. 특히 고참급 선수들은 "감독님이 오시면서 달라진 부분이 참 많다. 경기장에 나가는 게 즐겁고 신난다"고 시즌 초반부터 입을 모았다.
망가진 팀을 고치는 능력, 그래서 '리빌딩 전문 감독'이라는 말이 솔솔 나오는 이유다. 김 감독은 그러나 벌게진 얼굴로 말을 제대로 잇지 못했다. "거..참..허허..내 입으로 뭐라고 하기가..허허"라며 쑥스러운 표정을 숨기지 않았다.
KIA는 시즌 중 가장 중요할 수도 있는 한 주를 맞았다. 우승후보인 두산과 삼성을 상대로 광주 홈 4연전이 내리 예정돼 있다. 이들과의 경기에서 최소 반타작은 해야 잔여 시즌 운영이 수월해진다.
그래서인지 김 감독은 "요즘이 제일 힘들다.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게 사실"이라고 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나도 힘들지만 제일 힘든 건 역시 선수들일 것"이라며 "어차피 경기는 선수들이 하는 것 아닌가. 여기까지 온 것도 다 선수들 덕분"이라고 했다. 그는 손가락으로 하늘을 가르키며 "위에 계신 분이 다 결과를 정해놓지 않았겠나. 우리는 그저 주어진 상황에서 하루하루 최선을 다할 뿐"이라고 덧붙였다.
그의 얼굴은 여전히 붉게 상기돼 있었다. 김 감독의 부담감을 알았는지 이날 경기는 하늘에서 쏟아진 폭우로 취소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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