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명의기자] SK 와이번스의 잠수함 투수 박종훈(25)은 해외는 물론 국내에서도 비슷한 유형을 찾아보기 힘든 언더핸드 스타일이다.
보통의 언더핸드보다 더욱 낮은 쪽에서 공을 뿌리기 때문에 상대하는 타자 입장에서는 공의 궤적이 생소할 수밖에 없다. 공을 던지는 순간 지면과 손의 거리는 3㎝. 연습 때는 물론 경기 중에도 손으로 땅을 긁는 경우가 종종 나올 정도다.
박종훈은 지난 7월31일 인천 SK행복드림구장에서 열린 LG 트윈스와의 경기에서 이른바 '인생투'를 펼쳤다. 7이닝 동안 104개의 공을 던지며 5피안타 1볼넷 8탈삼진 무실점으로 막고 승리투수가 된 것. SK는 박종훈의 역투 덕에 3-1로 LG를 꺾고 4연패에서 벗어났다.
이날 박종훈이 기록한 7이닝 투구는 자신의 프로 데뷔 후 최다 이닝 타이기록이었다. 8개의 탈삼진은 한 경기 최다 신기록(종전 6개). 데뷔 후 최고의 호투였다는 것은 틀린 표현이 아니었다.
다음날인 1일 SK행복드림구장 덕아웃. 박종훈은 전날 피칭을 떠올리며 "계속 경기에 나가다 보니 볼넷이 점점 줄어드는 것 같다"며 "항상 경기에서는 볼넷을 내주지 않는 걸 최우선으로 생각한다"고 볼넷을 1개밖에 허용하지 않았던 것을 승인으로 꼽았다.
박종훈이 볼넷에 신경쓰는 것은 자신에 대한 상대 타자들의 인식 때문. 볼넷이 많아지면 컨트롤이 부족한 투수라는 인식이 자리잡히게 되고, 이는 곧 타자들과의 승부에서 불리한 점으로 작용한다는 게 박종훈의 생각이다.
박종훈은 "요즘은 타자들이 완전히 볼인 공에도 방망이를 휘둘러준다"며 "한참 제구가 안 될 때는 스트라이크와 비슷한 볼에도 스윙을 안했다. 볼을 많이 던지는 투수라는 인식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LG전 호투는 박종훈에게 중요한 것을 가르쳐줬다. 마운드 위에서 즐기는 법과 자신감이다. 무실점 피칭을 이어가던 7회초 1사 2,3루의 위기에 몰렸던 상황을 떠올리며 박종훈은 "재밌다는 생각밖에 안했다. '내가 여기까지 던지고 있구나'라는 생각에 그냥 재밌다고만 생각했다"고 말했다.
결국 박종훈은 오지환과 문선재를 연속해서 삼진으로 돌려세우며 실점 없이 이닝을 마쳤고, 8회초에는 불펜진에게 마운드를 넘겼다. 긴장하지 않고 경기를 즐겼던 것이 좋은 결과로 이어진 셈이다.
박종훈은 "볼넷이 줄어들어 자신감이 생겼다"며 "시즌 초에는 어떻게든 스트라이크를 던지는 것에만 집중했다면 이제는 타자와의 승부에 집중하고 있다"고 달라진 자신감도 내비쳤다. "어제 개인 기록보다는 연패를 끊어 팀에 도움이 됐다는 것에 만족한다"며 의젓한 모습도 보였다.
최근 박종훈에게는 제구에 대한 깊은 생각을 하게 만드는 계기가 하나 있었다. 우연히 삼성의 윤성환과 함께 기차를 타고 이동을 하면서 제구에 대해 물어본 것. 윤성환은 국내에서 손꼽히는 제구의 달인이다.
박종훈이 '제구를 잘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 질문을 던지자 윤성환은 "스트라이크보다 볼의 제구를 잘해야 한다"고 대답했다고 한다. 박종훈은 "그 말을 듣고 느끼는 바도 있었고, 많은 생각을 하게 됐다"며 당시 에피소드를 전했다.
올 시즌 박종훈의 성적은 22경기 등판 3승4패 평균자책점 4.00(69.2이닝 31자책). 당초 목표는 100이닝을 채우는 것이었지만 이제는 규정이닝 진입으로 상향 조정됐다. 높아지는 목표와 함께 박종훈의 기량도 조금씩 성장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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