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태기자] 28일 잠실 마운드에서 선 정대현(24, kt 위즈)에게선 묘하게 연상되는 선수가 하나 있었다. 좌완의 피네스(기교파) 피처. 주로 130㎞ 중후반대 포심패스트볼과 정교한 제구를 앞세워 상대 타자들을 농락한다. 직구 구속은 빠르지 않지만 정교한 제구와 날카로운 체인지업으로 아웃카운트를 늘려간다. 흔들림 없는 평상심으로 야수들에게 안정감을 준다. 경기 후반까지 큰 위기 없이 책임지며 팀에 승리를 위한 두둑한 밑바탕을 깔아준다.
이날 모습만 놓고 보면 정대현은 영락없는 장원삼(32, 삼성)이었다. 뱃심, 제구. 확실한 브레이킹볼 구사력 등 모든 면에서 흠잡을 데 없는 피칭내용은 현 KBO리그 최고 좌완 중 하나인 장원삼과 '감히' 견줄 만했다. 물론 7이닝 2피안타 1볼넷 9탈삼진 무실점한 LG전 한 경기만 놓고 하는 평가다.
오랫동안 미완의 대기였던 정대현이 드디어 '알'을 깨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마치 꼬리표처럼 그를 따라다닌 수식어 '뱃심 없음'이란 말은 전혀 통하지 않는 투구였다. 평소 "체인지업이란 확실한 장점이 있지만 수동적인 자세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공이 아주 빠른 것도, 제구가 정교하지도 않지만 본인 노력에 따라서는 얼마든지 한두 단계 뛰어 오를 선수"라고 하는 정명원 투수 코치의 기대에 부합하는 모습이었다.
정대현처럼 9년전 수원을 연고로 한 야구팀(현대 유니콘스)에서 혜성처럼 등장한 장원삼은 '피네스 피칭의 진수'를 선보이며 일약 프로야구의 특급 좌완으로 발돋움했다. 당시 23세였던 그는 29경기(183.1이닝)를 소화하며 12승10패 평균자책점 2.85를 기록, 주목받는 신인으로 부상했다.
비록 같은 해에 데뷔한 또 다른 괴물 좌완 류현진(28, LA 다저스)에 밀려 신인왕 타이틀은 놓쳤지만 그 해 겨울 도하 아시안게임 대표로 뽑힐 만큼 실력을 인정받았다. 이후 그는 히어로즈를 거쳐 2010년부터 삼성에 둥지를 틀며 전날까지 통산 103승을 기록, 프로야구의 대표적인 왼손투수로 입지를 굳혔다.
벌써부터 정대현을 장원삼과 동급으로 놓기에는 분명히 무리가 있다. 하지만 높은 성장 잠재력, 지금까지 해온 것보다 앞으로 할 일이 더 많다는 점에서 얼마든지 점진적인 도약을 점칠 수 있다.
조범현 kt 감독은 이날 LG전서 4-0으로 이기고 시즌 10승 고지를 밟은 뒤 "정대현의 피칭은 베스트였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긴 이닝을 책임져줄 선발투수가 부족한 상황에서 가장 어려울 때 7이닝 동안 최상급 투구를 선보인 것에 고마움마저 느낀 듯한 뉘앙스였다.
정대현으로선 시즌 5연패 뒤 13경기째만에 거둔 1승이지만 그 어떤 승리보다 값졌다. 팀의 연패를 끊고 재도약의 계기를 마련했다는 점에서 적잖은 의미가 있었다. 그는 "1회이든 7회이든 똑같은 1이닝이라는 생각이었다"며 호투의 원동력을 설명했다.
9년 전 장원삼은 팀 전체 승수의 17%를 홀로 책임졌다. 승수보다 중요한 투구이닝(173.1이닝) 역시 팀 전체이닝(1114.2이닝)의 16%를 기록했다. 마수걸이 승리로 올 시즌 kt 승수의 10%를 기록하게 된 정대현은 팀 투구이닝(434.1이닝)의 10%인 44.1이닝을 소화했다. 이 두 가지 부문에서 9년 전 장원삼을 얼마나 추격할지 지켜보는 것도 또 하나의 흥미거리다.
--comment--
첫 번째 댓글을 작성해 보세요.
댓글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