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혜림기자] 송일국은 국민적 관심을 받고 있는 '삼둥이 아빠'인 동시에, 보는 이에게 신뢰감을 주는 배우이기도 하다. 1998년 MBC 공채 27기로 데뷔, 차근 차근 연기 경력을 쌓아나갔다. 주로 드라마에서 활발한 활약을 펼쳤지만 영화 '작업의 정석'(2005)으로는 스크린에서도 변함 없는 존재감을 자랑하기도 했다. MBC 드라마 '주몽'(2006)을 통해선 절정의 인기를 얻었다.
그로부터 약 10년이 흘렀고, 송일국은 영화계로 돌아왔다. 신인 이돈구 감독의 영화 '현기증'(감독 이돈구/제작 한이야기 엔터테인먼트)으로 다시 관객을 만난다. '현기증'은 대작 상업 영화도, 그의 원톱 주연작도 아니다. 하지만 송일국이 제 본연의 모습을 살려 매끄럽게 녹아들 수 있었던 작품인 것만은 분명하다. 감독의 전작 '가시꽃'에 마음을 빼앗겼던 송일국은 이 영화에 흔쾌히 출연을 결정했다.
최근 서울 대학로 동숭동에서 영화 '현기증'의 개봉을 앞두고 있던 배우 송일국을 만났다. 안중근 의사의 삶을 그린 연극 '나는 너다' 연습에 한창이던 그는 오랜만에 출연한 영화의 개봉을 앞두고 한껏 설레하는 모습이었다. 바쁜 일정 중에도 짬을 내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놓길 원했다.
'현기증'은 어머니와 두 딸, 사위가 함께 살던 집에 어느날 불어닥친 사건으로 시작한다. 배우 김영애가 어머니 순임으로, 도지원이 첫째 딸 영희로 분했다. 김소은이 막내 꽃잎 역을, 송일국이 첫 딸의 남편이자 김영애의 사위인 상호 역을 연기했다. 지난 10월 제19회 부산국제영화제에 초청돼 첫 선을 보였고 6일 개봉해 관객을 만나고 있다.
노개런티로 출연한 이번 영화를 통해 송일국은 뜻밖의 수확을 여럿 얻었다. 연기 인생 처음으로 부산국제영화제에 초청돼 레드카펫을 밟았고, 관객과의 대화(GV)와 무대인사 등 영화제 공식 일정을 통해 부산 관객과 가까이서 호흡했다.
그는 "이돈구 감독의 전작 '가시꽃'에 반해 출연을 빠르게 결정했었다"며 "감독의 미래를 보고 투자한 셈인데, 이렇게 빨리 결과가 나올 줄은 몰랐다. 이번 영화를 통해 쌓은 인연으로 다음 영화들에도 캐스팅됐으니 제겐 더 의미있는 작품"이라고 말했다.
"부산에 산 적도 있는데 그 땐 영화제에 초청받은 적이 없어요. 이번엔 개막식에도 초청돼 레드카펫을 밟았는데, 행사 중 혼선이 있어 중앙의 메인 레드카펫을 걷지 못했죠. 너무 아쉬웠어요.(웃음) 영화는 부산국제영화제 초청 이전에 기술 시사로 봤어요. 내용이 무겁고 불편해 걱정을 많이 했는데, 기자·관계자 분들이 좋은 이야길 많이 해주셔서 다행이라고 생각했어요."
현재 KBS 2TV 예능 프로그램 '해피선데이-슈퍼맨이 돌아왔다'로 최고의 인기를 누리고 있는데다 그 이전에도 스타성과 연기력을 고루 갖춘 배우로 평가받아왔던 송일국은 지난 10년 간 영화 작업에 대한 남모를 갈증을 품고 있었다. 그새 결혼을 하고 세 아이를 얻은 그는 "영화 작업이 아이를 키우기에도 더 좋다"며 소탈하게 웃어보인다.
"그동안 영화를 굉장히 하고 싶었는데 제의가 안 와서 못했었어요. 제가 영화를 하지 않는다고들 생각하셨던 것 같아요. 아마 저 뿐 아니라 모든 배우들이 영화 작업을 하고 싶어할거예요. '현기증'은 저에게 굉장히 중요한 계기가 된 작품이죠. 다른 배우 분들도 거의 교통비만 받고 출연하셨어요. 배우들의 열정이 모인 작품인데 영화제에도 초청됐으니 기분이 좋죠."
'현기증'은 세 모녀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상호 역의 송일국은 상대적으로 작은 비중의 배역임에도 선뜻 출연을 결정했다. 사석에서 송일국을 만난 이돈구 감독은 그간 작품 속에서 봐 왔던 남성적인 이미지와 전혀 다른, 소탈하고 인간적인 송일국의 모습에 '이 사람이다' 싶어 출연을 제의했다.
"'현기증'은 정말 편하게 연기했어요. 사실 분장도 전혀 하지 않으려 했고 감독도 그러길 원했어요. 하지만 다른 분들은 분장을 해야 했으니 화면 상 튀지 않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했죠. 머리며 옷이며, 그냥 일상 생활을 할 때처럼 준비하고 갔어요. 굉장히 편한 상태에서 연기했다는 것이 더 자연스러웠던 것 같아요."
송일국은 '현기증'의 관람 포인트를 묻는 질문에 망설임 없이 "김영애와 도지원, 두 분의 신들린듯한 연기"라고 답했다. 그의 표현대로 두 배우는 극한에 몰린 캐릭터를 각자의 위치에서 완벽하게 소화해냈다. 치매를 앓는 어머니로 분한 김영애는 혼돈과 불안, 광기를 오가는 눈빛과 표정을 소름돋게 연기했다. 도지원은 어머니의 실수로 아이를 잃은 여인의 분노와 처절함을 날선 눈으로 표현해냈다.
김영애와 도지원, 김소은은 물론 송일국 역시 이번 영화의 캐스팅을 쟁쟁하게 완성한 배우다. 브라운관에서 최고의 인기를 이어 온 연기자가 신인 감독의 저예산 영화에 출연하는 것은 결코 흔치 않은 행보다. 송일국은 다음 영화인 '플라이 하이'와 '타투이스트'에서도 색다른 변신을 선보일 예정이다. 살인마로도, 건달로도 분한다. '삼둥이 아빠'의 새로운 얼굴들을 기대해볼만하다.
"드라마로 대상까지 받았던 배우가 저예산 영화에서 작은 비중의 역할을 하는 경우가 특이한 케이스라고 하시더라고요. 사실 그런 것은 의식하지 않았어요. '현기증'은 연기에 대한 갈망과 갈증 때문에 선택한 영화죠. 앞으로 더 많은 영화에 출연하고 싶어요. 영화로 하는 이런 인터뷰도 1년에 한 번씩은 하고 싶네요.(웃음)"
한편 '현기증'은 6일 개봉해 상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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