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혜림기자] JTBC '히든싱어'가 특집 방송으로 첫 선을 보인 것은 지난 2012년 12월이었다. 연말 분위기에 들어맞는 특별한 파일럿 프로그램으로 시선을 모았지만 그 반향이 이렇게나 오래도록 이어질 줄은, 정규 시즌을 세 차례나 선보일 수 있을 것이라고는 누구도 쉽게 예상할 수 없었다.
가창력이 뛰어난 보컬리스트들, 혹은 숱한 히트곡을 낸 명가수를 중심으로 기획된 가창 프로그램은 오디션 프로그램들과 함께 이미 포화를 이루고 있었다. MBC '나는 가수다'가 한 해 앞서 열풍을 일으켰고 KBS 2TV '불후의 명곡-전설을 노래하다'도 호평 속에 방영 중이었다. 하지만 '히든싱어'의 공략점은 달랐다. 가수들의 커버(Cover) 전쟁은 관심사가 아니었다. 오랜 세월 농익은 팬심(心)이 만들어낸 진짜보다 더 진짜같은 목소리, 가수의 노래 인생과 함께 자라온 모창 능력자들의 친근하고 평범한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었다.
"출연 가수 재조명, 굉장히 보람있는 일"
2014년 11월 창간 10주년을 맞은 조이뉴스24는 2년 만에 명실공히 JTBC의 간판 프로그램이 된 '히든싱어'의 조승욱 PD를 만났다. 그는 첫 방영부터 시즌3 왕중왕전을 앞둔 현재까지 '히든싱어'를 이끌어왔다. 인기의 정점을 달리고 있는 '히든싱어'를 두고 조승욱 PD는 "사실 시즌3까지 올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파일럿 두 편을 방영할 때만 해도 연말 특집쇼로 의미 있게 마무리할 것이라 생각했었다"고 돌이켰다.
"준비하는 과정이 쉽지 않아 계속 하긴 어려울 것이라 생각했어요. 그런데 생각보다 좋은 반응이 왔죠. 매주 할 수는 없어도 시즌물로 10~12편씩 미리 준비하면 계속 가는 것도 가능하지 않을까 싶었어요. 원조 가수의 예전 노래들이 방송 후 재조명될 때는 굉장히 보람있어요. 최근 이승환 선배의 노래들이 음원 차트를 역주행했던 것도 그랬고요. 출연 후 공연 티켓이 빠르게 매진되는 것을 봐도 기분이 남다르죠. 많은 사람들이 좋은 가수를 다시 찾고 기억하게 된다는 이야기니까요. 젊은 친구들에겐 이렇게 좋은 가수가 세상에 존재했다는 것을 알려줄 수 있으니 좋죠."
그간 '히든싱어'에는 각 시즌 면면이 화려한 가수들이 출연했다. 특집 방송의 박정현과 김경호를 비롯, 정규 프로그램으로 편성된 첫 번째 시즌에는 성시경·조관우·이수영·김종서·바비킴·장윤정·박상민·백지영·김종국·이문세·윤민수·김건모가 모창 능력자들과 한 무대에 섰다.
지난 2013년 방영된 시즌2에도 쟁쟁한 인물들이 등장했다. 임창정·신승훈·조성모·김범수·주현미·윤도현·아이유·남진·휘성·박진영·김윤아가 원조 가수로 출연했다. 세대와 장르를 아우르는 출연진이었다. 마지막 방송으로는 故김광석 편을 준비해 안방에 짙은 감동을 안겼다.
시즌3 첫 화로는 이선희가 출격했다. 긴 설명이 필요 없는, 한국 가요계에서 최고의 존재감을 자랑하는 인물이라 그 관심도 더욱 뜨거웠다. 이후엔 이재훈·박현빈·환희·소녀시대의 태연·태진아·이적·인순이·윤종신·이승환·김태우가 출연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방영 회차가 쌓일수록 '히든싱어' 제작진의 고민은 깊어진다. 폭넓은 세대에 인지도를 지닌, 각 라운드에 쓰일 네 곡 이상의 히트곡을 보유한 실력파 가수를 찾아 섭외를 성사시키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가수의 목소리를 분간이 가지 않을 정도로 비슷하게 따라하는 모창 능력자들까지 찾아내야 하니, '히든싱어'는 분명 변수가 많은 프로그램이다.
"처음엔 '히든싱어'라는 프로그램과 JTBC라는 채널에 대해 설명하는 일에만 시간이 오래 걸렸어요. 대부분의 가수들이 이 프로그램을 알게 된 시즌2부터는 설득 비용이 줄기는 했어요. 하지만 '히든싱어'에 출연할 수 있는 가수들의 풀이 넓지 않아요. 많은 국민들이 알 만한 네 곡의 히트곡이 있어야 하고 팬층도 두터워야 하죠. 사실은 가수를 섭외해도 모창자가 없으면 만들 수가 없어요. 변진섭 선배 편을 정말 하고 싶었는데 아무리 찾아도 모창 능력자가 많지 않았거든요. 결론적으로 시즌을 거듭할수록 섭외는 더욱 힘들어졌어요. 시즌3 이후 당분간은 빨리 돌아오기 어려울 것 같아요."
"그룹 멤버 섭외, 지드래곤 탐난다"
매 회 주옥같은 노래와 사연으로 사랑을 받았던 '히든싱어'지만, 몇 편의 방송은 더욱 특별한 감흥으로 회자되곤 했다. 팬과 가수 사이에 얽힌 남다른 사연으로 원조 가수의 눈물을 쏙 뺐던 시즌1의 이수영 편, 원조 가수가 준우승에 그쳤지만 어느 화보다 아름답고 훈훈했다는 평을 얻은 시즌3의 이승환 편 등이 그랬다.
"이수영 편은 '히든싱어'가 오늘날까지 오게 하는 데 중요한 방송이었던 것 같아요. 가수와 팬 사이의 상호작용이 드라마로 이어질 수 있었거든요. 아슬아슬한 승부의 '쫄깃함'을 보여준 것은 김종서 편이었고요. 이승환 선배의 경우 출연을 설득하기 쉽지 않았는데, 가수에게도 모창 능력자들에게도 특별한 경험이었던 것 같아요. 출연진과 이승환 선배, 지인들과 함께 홍대 카페를 빌려 방송을 같이 보기도 했죠."
그런가 하면 원조 가수의 2라운드 탈락으로 충격을 안겼던 시즌2의 조성모 편이나 최초의 그룹 멤버 출연자였던 소녀시대 태연 편 등은 비평의 시사점을 남기기도 했다. 조성모 편에선 데뷔 초와 비교해 달라진 창법과 목소리가, 태연 편에선 그룹 곡의 소절 구분이 변수였다.
"청중은 원곡, 오리지널의 목소리에 반응해요. 그 노래를 당시 가수의 목소리로 기억하죠. 조성모는 최근 방송 활동을 자주 하지 않아 요즘의 창법과 목소리를 몰랐던 분들이 많았던 것 같아요. 청각은 시각보다 더 혼란에 약한 감각이니, 그런 면이 오히려 '히든싱어'를 흥미진진하게 만드는 듯해요."
"아이돌 팀은 N분의 1로 노래를 하니 어떻게 소절을 나눌지 가장 고민이었어요. 태연의 인기 솔로곡도 있지만 음악 활동의 90%가 소녀시대 곡으로 이뤄졌으니까요. 태연의 경우 솔로곡도 여럿 있고 소녀시대라는 그룹 자체가 '국민 걸그룹'의 이미지를 지녀 섭외가 가능했어요. 다른 아이돌 가수로는 지드래곤을 섭외하고 싶네요."
가수 섭외의 풀이 워낙에 좁을 수밖에 없다지만, 시청자들이 '히든싱어' 출연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는 가수들은 아직 많다. 허스키한 보이스와 탄탄한 가창력으로 꾸준히 사랑받아 온 박효신도 그 중 한 명이다.
"제작진 역시 출연을 기다리고 있는 가수에요. 접촉했었지만 섭외가 성사되진 않았죠. 박효신 편을 비롯해 조용필·이승철·김동률·이소라 편은 개인적으로 꼭 하고 싶어요. 그런데 대부분 방송 활동을 자주 하지 않는 분들이라 섭외가 쉽지 않더라고요."
"전현무 없는 '히든싱어' 상상할 수 없다"
'히든싱어'의 출발부터 함께 해 온 MC 전현무는 이제 프로그램의 트레이드 마크가 됐다. 다양한 채널과 프로그램을 오가며 활약 중인 전현무지만 그 스스로도 "대표작은 '히든싱어'"라고 답할 정도다. 조승욱 PD는 그를 가리켜 "말 한 마디도 표정도 팔딱거리는, 살아있는 MC"라고 평했다.
"MC도 제작진도 프로그램을 하면서 성장하듯, 전현무 군도 저희 프로그램을 하며 스스로 더 많이 성장한 것 같아요. '히든싱어'는 원조 가수와도 '밀당'을 해야 하고, 일반인 모창 능력자도 한 명씩 보살피며 사연을 들어줘야 하고, 연예인 패널과 두뇌 게임도 해야 하는 어려운 프로그램이에요. 전현무는 빠른 시간 안에 감을 잡아서 자신만의 매력으로 색깔을 잘 입히더라고요. 지금으로선 전현무 없는 '히든싱어'는 생각할 수 없게 됐죠."
원조 가수, 그리고 그를 똑같이 따라하는 모창 능력자들의 대결이라는 '히든싱어'의 신선한 포맷은 국내 뿐 아니라 해외 미디어에서도 큰 관심을 얻었다. 그 결과 지난 2013년 5월 중국 콘텐트 전문업체 한예문화에 포맷을 수출했다. 최근에는 미국 NBCU의 자회사인 유니버셜 미디어 스튜디오즈 인터내셔널(Universal Media Studios International)과 글로벌 포맷 판매와 해외판 제작을 위한 계약을 체결했다. KBS에서 이적해 JTBC의 개국 멤버로 함께해온 조 PD에게도 고무적일 법한 반응이다.
"'히든싱어'는 출연한 모창자에 따라 한 회 한 회가 특집이라고 생각해요. 가수의 노래가 지닌 힘에 의해, 그 가수를 대하는 팬들의 팬심에 의해 매번 다른 이야기와 내용이 나오거든요. 그것이 '히든싱어'의 재미이기도 하죠. 같은 이유로 제작진은 더 힘들기도 해요. 보장성이 없다는 뜻이니까요. '히든싱어'와 JTBC를 두고 밖에선 좋게 봐 주시지만 아직은 갈 길이 먼 것 같아요. '다행이다' 생각하면서도 앞으로가 더 중요하다고, 확실하게 시청자들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프로그램들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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