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태기자] 빠른 발, 넓은 수비 범위, 그리고 아쉬운 타격.
지난 해까지 정수빈(24, 두산)을 연상시키는 단어였다. 리그 최고의 1번타자로 자리잡을 수 있는 자질을 갖췄지만 정작 방망이 실력이 부족해 성장에 한계가 있다는 말도 나왔다. 잠재력은 큰 선수이지만 수비보다 타격이 중요한 외야수로서 기대에 못미친 점을 지적하는 말들이었다.
올 시즌 전반기까지만 해도 이런 평가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이종욱(NC)의 이적으로 주전 중견수 자리를 확보했지만 2할 중반대 타율에서 좀처럼 움직이지 못했다. 5월 월간 타율 2할6푼, 6월 2할5푼4리에 그치는 등 전반기를 타율 2할7푼6리 4홈런 28타점 도루 20개로 마감했다.
그러나 여름들어 정수빈은 몰라보게 달라졌다. 타격 성적이 갑자기 치솟았다. 컨택트 능력이 부쩍 좋아지면서 안타를 치는 비율이 급격이 높아졌다. 8월 한 달간 68경기서 타율 3할2푼4리를 기록하더니 9월에는 무려 4할3푼2리로 성적이 치솟았다. 올스타 휴식기 이후 그가 기록한 성적은 45경기 타율 3할5푼 2홈런 21타점 도루 12개다.
덕분에 13일까지 125경기를 치른 시즌 성적도 타율 3할5리 6홈런 49타점에 도루 32개로 몰라보게 좋아졌다. 2009년 데뷔한 그로선 타율·홈런·타점·도루 부문 모두 개인 최고 기록을 갈아치운 것이다(100경기 이상 출전 시즌 기준).
최다안타(128개)도 지난 20011년 기록한 118개를 넘어섰고, 루타수(177루타) 역시 당시 기록(154루타)를 이미 추월했다. 출루율(0.378)과 장타율(0.421)도 커리어 하이다. 올 시즌 OPS 0.799를 기록한 정수빈은 처음으로 이 부문 0.800 이상을 넘보고 있다.
변화의 계기는 잘 알려졌든 타격폼 수정에 있다. 방망이를 몸쪽으로 붙인 뒤 팔을 약간 내린 다음부터 성적이 급상승했다. "이 전에는 오른 어깨가 먼저 열리면서 공을 맞히는 데 급급했는데, 폼을 바꾼 다음부터 컨택트 능력이 부쩍 좋아졌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미리 몸이 돌아가지 않으니 공을 끝까지 볼 수 있게 됐고, 날아오는 공에 회초리 휘두르듯 날카롭게 배트를 돌리면서 안타 생산이 많아졌다는 것이다. 이른바 '서건창식' 타격폼이 크게 효과를 본 셈이다.
정수빈은 "테이크백 동작이 작아지면서 스윙도 간결해졌다. 변화구 대처 능력이 부쩍 좋아졌다"며 "무엇보다 심리적으로 안정감을 찾게 됐다. 타석에서 여유가 생기니 내 생각대로 투수와의 싸움을 주도하면서 타격도 가능해졌다"고 그는 말했다.
정수빈의 가파른 성장은 올 시즌 웃을 일 없는 두산에서 몇 안 되는 희소식이다. 3년만에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한 데다 라이벌들의 '가을 야구'를 집에서만 보게 돼 이래저래 쓸쓸한 두산으로선 정수빈의 급성장이 대견스러울 수밖에 없다.
이종욱의 공백을 수비와 주루는 물론 공격에서도 완벽히 메워준 덕에 당분간 1번타자 중견수 자리 걱정을 덜게 됐기 때문이다. 정수빈은 올 시즌 주로 9번타자로 나섰지만 일취월장한 타격 실력을 바탕으로 내년부터는 1번타자로 전진배치가 예상되고 있다.
당초 올 시즌을 마친 뒤 군 입대를 생각했던 정수빈은 구단과 상의 하에 내년에도 더 뛰기로 방침을 바꿨다. 당분간 두산 유니폼을 입고 잠실벌을 펄펄 누비게 된 것이다. 타격에 물이 오른 덕에 팀의 핵심 자원 중 하나로 분류됐다는 의미다.
"던져버려, 어제는 잊어, 달려나가면 돼(Throw it away. Forget yesterday. We'll make the great escape)."
정수빈의 테마곡인 매사추세츠 출신 록그룹 'Boys like Girls'의 The Great Escape은 내년에도 잠실벌에 울려퍼지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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