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태기자] 하준호(25, 롯데)는 얼핏 추신수(32, 텍사스 레인저스)가 연상된다. 180㎝가 안 되는 키에 좌투좌타 코너 외야수다. 무엇보다 150㎞에 육박하는 '불덩어리'를 던지는 왼손 투수에서 타자로 전향한 점이 그렇다.
29일 사직 두산 베어스전을 앞두고 하준호는 집중적인 취재 대상이 됐다. 올 시즌 1군 1경기를 치른 선수로는 이례적으로 방송과 프로야구를 취재하는 여러 언론의 인터뷰를 차례로 소화했다. 지난 2012년까지 롯데에서 4년간 뛴 홍성흔(두산)이 "준호야, 너무 빠른 것 아니냐"며 우스갯 소리를 던질 정도였다.
후반기 들어 웃을 일 별로 없는 롯데에 하준호는 시원한 청량음료와 같은 존재로 부각되고 있다. 야수 전향 후 처음 1군 호출을 받은 지난 27일 잠실 LG롯데전에서 첫 안타를 신고하더니 28일 같은 팀을 상대로 2타수 1안타 볼넷 2개로 만점에 가까운 활약을 펼쳤다.
정교한 타격과 수준급 선구안. 여러모로 추신수가 떠오르지만 그는 '자신만의 스타일'을 강조했다. "사실 야수 전향 후 처음에는 추신수 선배의 동영상을 보고 타격폼과 송구 동작 등을 따라해 봤다. 그런데 역시 안 되더라. 나만의 스타일을 만들어가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완성되려면 멀었지만 지금도 조금씩 나만의 방식을 찾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 한 명 연상되는 선수가 있다. 롯데 출신으로 일본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에서 맹활약 중인 이대호다. 하준호는 이대호가 지난 2011년까지 11년간 롯데에서 뛸 때 사용한 등번호 10번을 달고 있다. 사실 이대호가 일본으로 떠난 뒤 10번은 다소 '불길한' 번호로 여겨져왔다. 이 번호를 물려받은 송창현은 한화로 트레이드됐고, 이 번호를 사용할 예정이던 미국인 투수 스캇 리치몬드는 2012년 시즌 뒤 롯데와 계약했으나 이듬해 스프링캠프 첫날 무릎부상으로 방출되는 수모를 겪었다.
하준호는 그러나 오히려 자신감을 내비쳤다. "주위에서는 '너도 어떻게 될지 모른다'며 놀리기도 했지만 사실 내가 잘 하면 마케팅 측면에서도 큰 효과가 나타나지 않겠느냐"며 "나만 잘하면 이대호 선배의 이름이 붙여진 10번 유니폼을 입는 분들이 앞으로 내 이름으로 바꿔달 수도 있는 일"이라고 당차게 말했다.
지난 2008년 경남고를 졸업하고 2차 1라운드 2순위로 롯데에 입단한 그는 2011년 시즌 뒤 공익으로 군복무를 시작했다. '좌완 파이어볼러'라는 기대감에도 불구하고 고질적인 제구 난조와 토미존 수술 등의 요인이 겹친 그는 지난해 8월31일 소집해제된 뒤 윤동배 현 상동 관리소장의 권유로 타자로 전향했다.
2년에 걸친 조련 끝에 어느 정도 '야수의 틀'을 갖춘 그는 올 시즌 퓨처스 48경기에 출전하며 구단 내부의 주목을 받았고, 이틀 전 마침내 1군으로 승격됐다. 2군에선 타율 2할1푼1리로 아직 다듬어지지 않은 모습이지만 147타수 동안 볼넷 26개를 얻을 만큼 인내심을 인정받았다.
하준호는 "타격할 때는 긴장이 안 된다. 다만 주자가 있을 경우 사인을 착각할까봐 굉장히 떨렸다"며 "그 외에는 평소처럼 했다. 내가 잘 하면 결과가 좋을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결과도 반대로 나올 뿐이라는 각오로 임하고 있다"며 중고신인 답지 않은 자신있는 모습을 드러냈다.
하준호는 29일 사직 롯데전에서도 우익수 겸 1번타자로 변함없이 선발출전했다. 이날은 4타수 무안타로 침묵했지만 한 번 더 1군 경험을 쌓았다는 데 작지 않은 의미가 있었다.
하준호의 올 시즌 목표는 20-20. 흔히 알려진 20홈런-20도루가 아닌 20경기 출장에 20안타 기록을 의미한다. 이제 남은 수치는 17-18로 줄어들었다. 그는 "20-20을 달성하면 그 다음은 30-30이 될 것"이라며 차근차근 팀 내에서 자신의 입지를 구축하겠다는 야망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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