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태기자] 정재훈은 9회가 항상 두렵다.
어느 마무리나 마찬가지이지만 팀 승리를 지키기 위해 나서는 9회는 참 '살 떨리는' 순간이다. 평정을 찾으려 노력하지만 좀처럼 쉽지 않은 게 마무리다. 그는 첫 붙박이 마무리로 30세이브를 거둔 2005년부터 이런 경험을 수 없이 했다. 팀이 원할 때 마다 '마지막 투수'로 등판해 경기를 끝냈다.
지난 시즌 중반 두산 불펜이 크게 흔들리자 임시 마무리로 나서 14세이브를 거두며 두산이 후반 탄력을 받는 데 보이지 않는 공을 세운 그는 올 시즌에도 또 다시 '템포러리 클로저'로 나서고 있다. 약물 파동으로 징계를 받은 이용찬의 공백을 대신 메우기 위해 또 다시 어려운 일을 떠맡은 것이다.
이용찬의 징계가 시작된 지난 4일 잠실 삼성전 9회초 부랴부랴 마무리로 나서 2사 후 2개의 볼넷을 내줬지만 무실점으로 마무리하며 5-4, 1점차 승리를 지켰다. 쉽지 않은 상황이었지만 관록을 앞세워 삼성 강타선의 추격을 멈춰 세웠다.
9일 잠실 LG전에선 2-2 동점이던 연장 10회말 결승점을 내줬지만 다음날인 곧바로 실수를 만회하는 '오기'도 보여줬다. 7회까지 12-4로 크게 앞선 두산이 경기 후반 LG의 무서운 추격에 12-11까지 쫓겼다.
그러나 9회말 1사 1,3루에서 급히 불을 끄기 위해 마운드에 오른 정재훈은 전날 끝내기 안타를 허용한 정의윤을 루킹삼진으로 잡아냈고, 임재철 마저 삼진으로 돌려세워 팀 승리를 지켜냈다. 이날의 귀중한 승리로 두산은 오랜만에 위닝시리즈의 기쁨을 한껏 누릴 수 있엇다.
정재훈은 올 시즌을 앞두고 '믿음을 '강조했다. "지난 해보다 더 나아진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이다. 2006년의 모습, 그 때와 같은 팀에서의 믿음, 내가 내 자신에 대한 믿음, 주변에서의 기대와 믿음. 그것을 기대하고 되찾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했다.
사실 프로 입문 첫 해부터 그의 목표는 화려한 수치나 거창한 계획과는 멀었다. 30세이브를 거둔 2005년 시즌을 마친 뒤 그는 "올해보다 한 단계 더 올라서고 싶습니다. 큰 목표는 없어요. 그저 매년 조금씩 발전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을 뿐이에요. 그러다보면 저도 조금은 큰 선수가 돼 있지 않겠어요"라고 말했다. 그 때나 지금이나 초심을 잃지 않은 정재훈이다.
그는 "마무리 투수는 항상 잘 해도 한 번 승리를 날리면 고개를 들기 어려운 보직"이라며 "그래서인지 조금도 긴장을 풀 수 없다. 나를 믿고 지켜보는 동료들을 위해서라도 '실패'를 아무렇지 않게 여길 수 없다"고 했다.
이재우가 잠시 2군에 내려가 있는 상황에서 1군 투수진 최고참이 된 정재훈이다. 어수선한 팀내 상황에서 정재훈 같은 베테랑이 뒤에 버티고 있는 점은 분명 축복이다. 언제나 한결 같은 바로 그 정재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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