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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회' 속살 없는 정사신, 엔딩을 상상케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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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재 집 구석 구석 비춘 카메라, 무엇을 의미할까

[권혜림기자] 애초 JTBC '밀회'가 시선을 모았던 데엔 파격적인 소재가 한 몫을 했다. 완벽해보이는 40세 커리어우먼과 가난한 20세 청년의 사랑 이야기였다. 유부녀와 미혼 남성의 로맨스이기도 했다. 안판석 감독과 정성주 작가는 극의 주 소재인 피아노를 제대로 활용했다. 피아노 연탄만으로 절정을 그렸다.

지난 8일 방송된 '밀회' 8화에선 두 주인공의 정사를 비췄다. '밀회'가 그저 그런 불륜 드라마가 아니라는 사실 정도는 시청자들도 일찍이 눈치챘다. 그러나 조금의 맨살도, 침대 한 켠도 제대로 등장하지 않은 정사신은 예상을 뛰어넘었다. '진도'를 떠나, 벌써부터 엔딩의 방향을 상상하게 만드는 장면이었다.

이날 방송에선 오혜원(김희애 분)이 겪어야 했던 삶의 무게를 알아챈 이선재(유아인 분), 그 앞에서 자신의 속내를 모두 들키고 만 오혜원의 이야기가 그려졌다.

선재와 박다미(경수진 분)의 관계를 질투하고, 연습 중 괜히 크게 호통을 치기도 했던 혜원은 예고 없이 선재의 집을 찾았다. 오랜 세월 감정을 억누르며 우아하게만 살아 온 혜원은 순수한 선재의 저돌적인 사랑에 스스로를 돌아보던 참이었다. 요며칠 히스테릭한 얼굴로 동료들과 남편을 의아하게 만들었던 그는 선재 앞에서 오랜만에 평온한 미소를 지었다.

"여친 코스프레"라며 선재의 옷을 입고 그를 기다리던 혜원은 "오늘은 좀 놀다 들어갈 것"이라고 선전포고한다. "걔(여자친구)는 저희 엄마 거 입고 있던데요?"라는 선재의 말엔 "그건 여친 아니고 가족이야. 내 말이 맞어. 토 달지 마"라고 답하며 선재와 다미의 관계를 장난스레 언급하기도 한다.

"걸리면 (다미에게) 질 것"이라는 선재의 경고엔 "도망갈 데 봐 놨어"라고 응수한다. 넋이 나간 듯 미소를 지어보인 선재는 "겁나 섹시해요"라는 말로 혜원의 미소를 자아낸다.

'밀회'는 이후 둘의 관능적인 정사 신을 예상했을 뭇 시청자들의 뒤통수를 때렸다. 여느 베드신과 달리 카메라는 배우들의 속살을 비추지 않았다. 가난하게 살아온 선재의 정갈한 생활이 고스란히 묻은 집 안을 향했다.

들려오는 두 사람의 대화 사이 사이에 형광등, 찢어진 장판, 가스레인지, 싱크대 위 그릇들, 식용유와 간장 등이 놓인 선반, 잘 접혀진 밥상 같은 것들이 화면을 채웠다. 혜원이 벗어 걸어 둔 흰 셔츠는 어두운 색채인 선재의 옷들 위에서 그대로 빛났다. 시청자들에게도 이미 익숙한, 크고 근사한 혜원의 집과 선재의 집은 구석 구석 쉽게 대비됐다.

청각의 자극이 시각 못지 않게 강렬할 수 있다지만, 이날 정사 신의 대사는 그 수위가 높지 않았다. 다만 혜원은 처음으로 자신의 속마음을 자의로 드러냈다. 간간이 이어진 신음 소리만큼 관능적이었던 것은 혜원의 태도였다.

"잘 못할 수도 있어요"라는 선재의 말에 "너 진짜 처음이야?"라고 묻는다든지, "생각해보니까 아닌것같네요"라는 그에게 "그걸 생각해봐야 알아?"라고 웃으며 답하는 순간들은 그 어느 장면에서보다 진솔한 오혜원의 모습을 담았다.

"너 그때 눈치챘지? 나 선수 아닌 거"라는 고백, "내가 너보다 더 못할지도 몰라"라는 걱정은 또 어떤가. 20세 어린 청년에게 자신이 빛 좋은 개살구라는 사실을 그는 에둘러 밝혔다. 마작패로 얻어맞은 이마를 보이고 당혹스러워하던 때보다야, 모텔방을 잡은 선재를 두고 달아나버리던 때보다야 여유롭다.

2분여의 시간이 지나고 카메라는 선재의 낡은 운동화와 혜원의 구두, 다시 혜원의 흰 셔츠를 비춘다. 침대 아래 앉은 혜원은 선재와 맥주를 마신다. 선재와 함께 첫 음주의 기억을 떠올리던 혜원은 "나야 뭐든 여우같이 다 적절하게 했지. 태어날때부터 마흔살이었나봐"라고 너스레를 떤다. "혜원아"라는 과감한 호칭을 시도한 뒤 "여자 발에 약하다"며 말과 몸으로 장난을 시도하는 선재. 혜원도 걱정 없이 웃는다.

그간 '밀회'는 속도와 짜임새 모두를 놓지 않은 연출로 호평받아왔다. 오혜원의 도움을 얻어 자신의 불륜을 감추려는 서필원, 그의 타깃이 됐던 연변 출신 여성의 에피소드는 지난 7화의 가장 인상적인 장면들로 손꼽혔다. 또렷한 자기 주관을 지닌 연변 여성 앞에서 혜원은 여러 모로 부끄러움과 굴욕감을 느꼈다. 도무지 예상 못할 전개 덕에 더 매혹적인 '밀회'다.

선재와 혜원의 첫 만남은 물론 첫 키스, 8화의 첫 정사 역시 그랬다. 청년을 향해 떨리는 가슴을 부인하려던 혜원은 이내 속내를 감추려 애썼다. 그러다 자신의 감정에 지배당했다. 종국엔 질투를 거쳐 먼저 손을 내밀었다.

이날 선재의 집기들과 혜원의 셔츠로 둘의 정사를 담은 연출은 또 어떤 엔딩으로 이어질지, 어떤 은유로 남을지 흥미롭다. 진솔한 고백이 있었대도 낭만적인 하룻밤을 이유로 선재를 위해 모든 것을 버릴 혜원은 아니다. 자본주의 질서의 먹이사슬을 체화한 그다. 처지를 자조하면서도 재벌가의 뒷일을 놓지 않아온 데엔 이유가 있을 것이다.

어쩌면 혜원은 남편 강준형(박혁권 분)의 일갈처럼 근사해보이는 삶을 위해 여신을 닮은 노예를 자처했을지 모른다. 다시 강조하자면 정갈해도 남루함을 씻지 못한 선재의 집은 전경 자체로 화보 같던 혜원의 집과 너무나 달랐다. 혜원이 아무 것도 없던 자신의 과거를 닮은 선재의 현재를 껴안을 수 있을까.

혜원이 선재에게 자신을 내던지는 엔딩, 부와 명예를 잃는 대신 영혼의 자유와 사랑을 얻는 결말은 아름다울지언정 날카로워보이진 않는다. 다른 결말도 있다. 재벌가와 예술 엘리트들의 사이에서 여전히 생존 전쟁을 펼치는 혜원의 모습, 선재를 통해 성장했지만 그를 위해 희생하진 않는 엔딩도 가능할 법하다. 속살 하나 나오지 않은 정사 신으로 결말의 구도를 예측하는 일, '밀회'라서 재밌다. 역시 평범한 드라마는 아니다.

조이뉴스24 권혜림기자 lima@joy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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