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필기자] '쇄국 축구' 포항 스틸러스가 15일 아랍에미리트연합(UAE) 아부다비로 1차 전지훈련을 떠났다. 21일까지 담금질을 한 뒤 장소를 '약속의 땅' 터키 안탈리아로 옮겨 2차 전지훈련으로 조직력 완성에 심혈을 기울인다.
전지훈련에서는 총 10차례의 평가전이 예정되어 있다. 샤흐타르 도네츠크(우크라이나)를 비롯해 사라예보(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등 동유럽 팀들과의 평가전으로 담금질을 이어간다.
기쁜 마음으로 전지훈련을 떠나야 하지만 포항의 사정은 그렇지 않다. 지난해 정규리그-FA컵 2관왕에 오른 뒤 연봉이 오르기를 바라는 선수들의 욕구를 충족시켜주기 어려웠고, 선수단 개편에 나서게 됐기 때문이다.
포항은 올 시즌에도 모기업 포스코에서 작년 수준인 100억원 안팎의 구단 운영 자금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팀 사정이 어렵다 보니 노장으로 고비마다 한 건씩 해줬던 노병준은 다른 길을 가게 됐다. 침묵을 지키던 노병준은 "나가라고 하니 나가야 하지 않겠느냐. 참 열심히 했다고 자부했는데…"라며 다른 팀을 알아보고 있다고 전했다.
'가을 전어'로 불렸던 공격수 박성호 역시 다른 팀을 알아보라는 통보를 받은 것으로 확인됐다. 이 외에도 상주 상무에서 전역한 중앙 수비수 김형일도 기존의 몸값에 부담을 느껴 이적을 권유하는 등 포항의 핵심 자원들이 줄줄이 이탈하고 있다.
포항 사정에 밝은 관계자는 "구단에서는 일률적으로 금액을 맞춰놓고 이 액수에서 더 이상 줄 수 없으니 알아서 하라고 해서 선수들 분위기가 그렇게 좋지만은 않은 것으로 안다"라고 전했다.
황선홍 감독이 그토록 바라던 외국인 선수 역시 영입에 난항을 겪고 있다. 사실상 백지화 내지는 없던 일이 될 것으로 보인다. 올 시즌 아시아축구연맹(AFC) 정상에 도전하겠다고 선언한 포항이다. 외국인 공격수 없이는 이뤄질 수 없는 꿈이라는 것을 분명하게 확인했음에도 그저 자금 부족이라는 이유로 지난 시즌과 마찬가지로 국내 선수로만 팀을 꾸릴 가능성이 더 커졌다.
이는 같은 모기업 포스코의 지원을 받는 전남 드래곤즈와 대비되는 행보다. 전남은 지난해 스플릿B에서 강등을 면한 뒤 자존심 회복을 위해 스테보, 크리즈만 레안드리뉴 등 새 외국인 선수에 김영우, 송창호, 마상훈, 현영민 등 알짜 자원들을 대거 영입했다.
전남의 폭풍 영입에는 박세연 사장의 선택이 한 몫 했다. 포스코 입사 후 노무, 교육 분야 보직을 거친 뒤 광고 회사를 운영해 타이밍을 인지하는 능력이 뛰어난 것으로 알려진 박 사장은 하석주 감독의 현실에 맞춘 영입 계획을 신뢰하고 힘을 실어줬다. 구단의 전폭적인 지원에 주변 여건이 좋지 않은 지방 구단이지만 선수들은 전남 입단을 선택했다. 전남 프런트도 박 사장의 과감한 투자에 자신감을 얻었다고 한다.
비슷한 자금이라도 경영진의 생각 차이에 따라 이렇게 팀 운영 방향은 달라질 수 있다. 포항은 지난해 2관광을 이루며 유스팀 출신 선수들의 비율을 더 늘려가는 팀 체계 굳히기가 성공했다고 자평하고 있지만, 외부 수혈과 조화를 이루지 않으면 성적이 다시 곤두박질칠 수도 있다. 지난해 포항의 '쇄국축구'를 이겨내지 못하고 자존심에 상처를 입은 전북 현대, FC서울, 울산 현대 등이 영입 전쟁을 벌이며 전력 강화를 모색하고 있어 포항이 좋은 성적을 기대하기는 더욱 어려워지고 있다.
포항의 목표는 K리그를 넘어 아시아 정상 복귀다. 빠져나가는 선수만 있고 들어오는 선수가 없는데 성적에 대한 모든 책임은 결국 감독이 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 만들어지고 있다. 유스팀 출신 자원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것을 국제무대에서 분명하게 확인했다. 포항이 언제까지 지갑을 열지 않고 버틸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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