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필기자] 누가 뭐라해도 2014년 갑오년(甲午年)은 '월드컵의 해'다. 8회 연속 월드컵 본선 진출에 성공한 한국은 브라질에서 사상 첫 원정 월드컵 8강 진출을 목표로 세웠다. 러시아, 알제리, 벨기에와 H조에 묶여 충분히 해낼 수 있다는 분위기다.
그러나 축구 대표팀을 이끄는 홍명보(45) 감독은 냉철한 마음으로 월드컵을 준비하고 있다. 주변에서 괜찮다는 낙관론을 펼쳐도 절대로 부화뇌동하지 않고 대표팀을 더 강하게 단련하는 데만 집중하고 있다. 월드컵을 해를 맞으면서 홍명보 감독의 얘기를 들어봤다.
"조별리그 통과 목표, 러시아전 반드시 잡아야"
홍 감독이 누구인가. 고려대 1학년이던 1990년 이탈리아월드컵에 첫 출전하며 어린 나이에 일찌감치 월드컵과 인연을 맺었던 그다. 1994 미국월드컵, 1998 프랑스월드컵에도 나섰고 2002 한일월드컵 4강 신화의 주역으로 활약한 후 대표팀에서 은퇴했다. 2006년 독일월드컵에는 대표팀 코치로 나섰고 이후 20세 이하(U-20) 대표팀(2009년)과 2010 광저우 아시안게임 대표팀 감독, 2012 런던올림픽 대표팀 감독을 거쳐 2014 브라질월드컵에서는 감독이라는 무거운 중책을 맡았다.
월드컵의 해를 맞이하는 홍 감독의 소회는 어떨까. 큰 목표를 세우기보다는 분위기를 만들며 취임 당시 목소리 높여 외쳤던 '원팀 원스피리트 원골'(One Team One Spirit One Goal)'을 완성하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했다.
홍 감독은 "기본적으로 조별리그 통과가 가장 큰 목표다. 조별리그에서 살아남으면 그 이후의 일은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라며 일단 조예선을 통과해 16강에 진출하는 것을 기본적인 목표로 삼았다.
경기 전략은 수없이 말해왔던 대로다. 특히 6월 18일 오전 7시(한국시간)에 열리는 러시아와의 1차전을 반드시 잡겠다는 목표다. 홍 감독은 "가장 중요한 것은 첫 경기다. 러시아전이 나머지 두 경기 전략에 큰 영향을 끼칠 것 같다. 첫 경기 중요성은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안다. 좋은 경기와 이기는 경기를 해야 된다"라며 러시아전 필승을 다짐했다.
한국은 2002 한일월드컵을 시작으로 2006 독일월드컵과 2010 남아공월드컵에서 잇따라 첫 경기 승리를 거두며 서서히 월드컵 본선에 대한 면역을 키워왔다. 남아공월드컵에서는 16강에 오르며 결선 토너먼트에 대한 경험도 길렀다.
홍 감독과 월드컵의 인연은 깊다. 그는 "내 인생에서 월드컵을 빼놓고 말하기는 어렵다"라며 "국가대표가 된 뒤 6개월 만에 월드컵에 나갔다. 코치로도 나가봤다"라고 되돌아본 뒤 "감독으로 나가는 것은 영광보다 책임감이 더 크다. 물론 책임감은 당연히 받아들인다. 부담 때문에 해야 할 일을 하지 못하면 안된다. 선수가 아니기 때문에 머리로 전체를 지휘해야 한다. 시간을 갖고 준비하겠다"라고 말했다.
"주전 80% 완성, 최종 엔트리 구상도 70~80%는 마쳐"
홍 감독에게 가장 부족한 것은 시간이다. 지난해 6월 아시아 최종예선이 끝난 뒤 부임해 월드컵까지 남은 시간은 1년이 전부였다. 홍명보호는 7월 동아시안컵을 시작으로 10경기를 치러 3승3무4패를 기록했다. 해외파들이 본격적으로 합류한 9월 아이티, 크로아티아와의 평가전부터 팀 완성도를 끌어올리기 시작했다.
선수들을 고루 살피며 옥석고르기에 집중했던 홍 감독은 "동아시안컵에서부터 페루전까지 국내 선수들을 볼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실질적으로는 9월 평가전이 중요했다"라며 기초를 잡는데 공을 들였음을 알렸다. 이어 "해외파와 국내파 사이의 갈등이 있다는 이야기를 밖에서 들었는데 예상외로 심각하지 않더라. 내가 새로 감독이 된 뒤 선수들이 노력을 한 것 같다"라며 대표팀의 변화된 모습을 이야기했다.
과제는 여전히 많다. 홍 감독은 "시스템의 기본은 4-2-3-1 형태이다. 미드필드가 삼각형이냐, 역삼각형이냐 하는 문제 등은 지금 결정해야 할 것이 아니다. 젊고 재능있는 선수들이 많은데 경험이 문제가 될 수 있다. 이번 1월 브라질-미국 동계훈련과 3월 K리그 개막 및 평가전 등을 보고 구성을 할 것이다"라고 계획을 전했다.
해외파와 국내파 간 시너지 효과는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렇다고 경쟁을 하지 않는 것도 무의미하다. 홍 감독은 "주전의 80%는 완성됐다. 최종 엔트리도 70~80%는 나왔다. 물론 누가 선발될 지는 아무도 모른다"라며 철저한 경쟁 속 틀 잡기가 이뤄지고 있음을 강조했다.
경험이 풍부한 베테랑급 선수 보강은 그래서 더 중요하다. 홍 감독은 "우리 대표팀 연령이 주로 22~25세 사이로 젊은 편이다. 이들보다는 조금 더 나이를 먹은 선수들을 알고 있다. 전체적인 팀내 영향을 고려해 조화를 이룰 수 있는 선수를 선발하겠다"라고 말했다.
그렇다고 나이 많은 노장급 선수를 무조건 다수 중용할 생각은 없어 보인다. 홍 감독을 '형'이라 부르는 선수들을 뽑을 생각은 없느냐는 질문에 "나를 형이라고 부르는 '애들'은 다 은퇴했다"라고 우회적으로 말한 뒤 "개인적인 인연은 생각하지 않는다. 경기장과 훈련장에서의 모습으로만 판단하겠다"라고 확실하게 선을 그었다.
부담을 즐기며 월드컵에 나서겠다는 홍 감독은 "월드컵은 우리 국민들에게 좋은 경험과 기억으로 남아있다. 2002년이 그렇지 않았느냐"라며 "최근 국민들 불만을 정리해보면 '왜 2002년 때처럼 못하냐'는 의견이 많다"라고 웃은 뒤 "대표팀 입장에서는 그런 욕구들을 얼마만큼 충족시켜줄 수 있는지가 중요하다. 결과로 말하는 인생이지만 기본적으로 과정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야 결과에 대해서도 잘 받아들일 수 있다. 후회없이 최선을 다해 준비하겠다"라고 다짐했다.
<②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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