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태기자] 무엇이 잘못된 걸까.
FA 시장에서 알토란 같은 '집토끼' 3마리를 모두 잃은 두산 베어스는 유구무언이다. 팀의 주전 1번타자, 유격수, 4번타자가 동시에 팀을 떠나는 초유의 사태에 할 말이 있을 리 없다. 구단의 책임 있는 관계자들은 지난 16일 자정 우선 협상 기간이 마감된 뒤 한동안 외부 접촉을 기피하며 칩거모드에 접어들었다. 주전 3명을 한꺼번에 놓친 후폭풍을 크게 두려워한 분위기다.
따지고 보면 예견됐던 사태이기도 하다. 올해 FA 시장에서 선수들의 몸값이 폭등할 것이란 점은 일찌감치 예고됐다. 이른바 '류현진 장학금'을 고스란히 보유한 한화가 '큰 손'의 역할을 벼르고 있었고, 강민호라는 '대어'를 빼앗길 수 없었던 롯데도 오랜만에 지갑을 열 계획이었다.
하지만 두산은 '합리적인 가격'이 아니면 들어줄 수 없다며 완고한 자세를 고수했다. 우선협상 초기부터 "FA에 끌려다니지 않는다"며 "우리만의 잣대와 원칙"을 유독 강조했다. 일부 구단과 몇몇 선수간 사전접촉설이 나도는 상황에서 이러한 자세는 "남으면 좋지만 떠나도 어쩔 수 없다"는 투로 풀이됐고, 결과는 예상과 다르지 않았다.
문제는 결국 돈다발의 규모였다. 두산은 당초 3명을 다 잡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고, 최소 한 명은 붙잡기 위해 총력을 다했다. 특히 부동의 1번타자인 이종욱 만은 꼭 사인을 받아내야 한다는 부담도 적지 않았다. 그러나 이종욱은 끝까지 고민하다가 결국 두산의 손길을 뿌리쳤고, 우선협상 다음날인 17일 '절친' 손시헌과 함께 NC 입단을 확정했다. 두산 측은 "발표된 액수만 놓고 보면 총액에서 차이가 없는 건 아니다"면서도 "선수의 마음이 다른 데 가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협상 막판에는 논의가 무의미한 게 아닌가 하는 느낌마저 들었다"고 털어놓았다.
이유야 어쨌든 중요한 건 현실이다. 한국시리즈 주전 라인업 9명 가운데 3명이 빠진 터라 당장 다음 시즌이 문제다. 물론 선수층 두텁기로 둘째 가라면 서러워할 팀답게 대체재는 확보돼 있다. 정수빈, 김재호, 오재일 등이 각각 이들 3명을 대신할 선수들로 우선 거론되고 있다. 올 시즌 개막전부터 한국시리즈 7차전까지 주전 경쟁을 벌인 두산이다. 또 다른 후보 선수들로 이들과 주전 싸움을 붙이면서 선수들의 기량이 동반상승되는 효과를 노릴 수 있다.
그러나 이런 '리빌딩 과정의 반복' 만으로는 정작 우승 전력을 일굴 수 없다는 게 야구계의 시각이다. 매번 "우승에 도전할 후보"라는 평가를 받으면서도 정작 한국시리즈 우승에는 12년째 실패한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봐야 한다는 것이다. 우승에 필요한 요소를 외부에서 충원하기는 커녕 오히려 애써 키운 내부 자원을 계속해서 빼앗기는 악순환에 대한 지적이다.
물론 대내외적인 제약이 프런트의 발목을 잡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14일 금융감독원 공시에 따르면 두산그룹의 지주회사인 두산은 올해 3분기 연결기준 당기순이익 225억원 손실로 적자 전환했다. 매출액 5조1천606억원, 영업이익 2천447억원으로 지난 분기보다 각각 11.7%, 35.9% 감소했다. 주력 계열사인 두산건설에 이어 두산중공업, 두산 인프라코어까지 한꺼번에 어려움에 빠진 결과다. 이런 상황에서 '돈 못버는' 계열사 중 하나인 야구팀이 눈치 보지 않고 돈다발을 풀기는 쉽지 않다.
두산은 서울구단이라는 상징성과 한국에서 가장 먼저 창단된 프로야구단이라는 정통성까지 보유한 팀이다. 2000년대 들어 외형적인 덩치가 커졌고, 꾸준히 4위권 안에 들면서 강호의 이미지도 확립했다. 하지만 정작 과감히 투자해야 할 때 소극적인 모습을 보이면서 팬들의 아쉬움을 적잖게 사고 있다.
의도했든 그렇지 않든 타선의 핵심 자원 3명이 한꺼번에 빠져나가면서 또 한 번 대대적인 라인업 수술이 불가피해진 두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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