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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 수상' 문병곤 감독 "뭣도 모르고 비관적이긴 싫다"(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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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이프', 제66회 칸국제영화제 단편 부문 황금종려상

[권혜림기자] 예상보다도 앳된 얼굴이었다. 아이같은 눈에는 묘한 장난기도 묻어났다. "바로 한국에 들어온 게 잘 한 일인지 모르겠다"면서도 쏟아지는 인터뷰 요청을 "새로운 경험"이라며 즐기고 있는 그를 만나 인터뷰인지 사담인지 모를 대화로 두어 시간을 보냈다. 한국 나이로 서른 하나, 제66회 칸국제영화제 단편 부문에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문병곤 감독을 만났다.

지난 5월27일 오전(한국 시간), 칸국제영화제 페막과 동시에 기대치 못한 낭보가 날아들었다. 장편 부문에 한국 영화가 단 한 편도 초청되지 않은 이번 칸 영화제에서 문병곤 감독의 '세이프(Safe)'가 단편 부문 황금종려상(Palme D'or)을 수상한 것.

13분 남짓의 이 영화는 불법 사행성 게임장의 환전소에서 일하는 여대생과 도박에 중독된 사내의 이야기를 그린다. 짧은 러닝타임, 넉넉치 않은 예산 안에서도 돈의 논리에 갇힌 이들의 비극을 강렬하게 시사하는 데 성공한 작품이다.

지난 2011년, 중앙대 영화학과 졸업 작품이었던 단편 '불멸의 사나이'로 제64회 칸국제영화제 비평가 주간에 이름을 올렸던 문 감독은 초청 두 번 만에 단편 부문 최고상을 품에 안았다. 2년 전 첫 초청 땐 내심 수상에 대한 기대가 있었다. 비장한 각오로 비행기를 탔고, 상영 후 반응도 좋았지만 트로피를 안는 데는 실패했다. 실망이 컸다. 그러나 이번엔 달랐다. '세이프' 작업을 함께 한 여자친구와 함께 칸을 찾은 문 감독은 상에 대한 기대 대신 "편하게 놀다 오자"고 마음을 다잡았다.

그는 "뭔가 좋은 일이 생길 것 같으면 사람들은 몸을 사리지 않냐"며 "2년 전엔 술도 잘 마시지 않고 깍듯한 자세로 있다 왔는데, 이번엔 술도 그냥 마시고 장난도 치고 가벼운 실수도 했다"고 웃으며 말했다.

"여자친구와 (황금종려상을) 받을 수 있을까, 없을까를 두고 이야기하긴 했어요. 영화가 비극적이고 장르적이라 못 탈 거라고 이야기했었죠. 이번엔 온 것만으로도 만족하자고요. 수상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어요. 상을 받고 나서 이렇게 이목이 쏠리는 것이 오래 갈 것 같지는 않아요. 관심에 붕 뜨기보다는, 부담스러워도 다음 작품을 계속 고민해야 할 시간인 것 같아요. 새로운 경험이라 여기고 좋게 생각하려고요."

문병곤 감독은 수상 후 바로 한국에 들어올 것인지를 두고도 잠시 고민을 거쳤다. 세계적 영화제에서 큰 상을 받았으니 쏟아지는 축하와 관심도 즐겁게 기대했을 법한데, 다소 의외의 고백이었다. 이유를 묻자 "민망해서"라는 간단한 답과 함께 말 그대로 '민망함'이 묻은 웃음이 튀어나왔다. "(중앙대) 선배의 조언으로 한국에 들어왔는데, 귀국하길 잘 한 것 같다"며 "이왕 왔으니 적극적으로 하자고 생각했다"는 답도 이어졌다.

문 감독은 밀려드는 인터뷰와 방송 출연 요청을 차근차근 소화하고 있었다. 휴대폰 스케줄러에 입력된 일정은 각 하루에 할당된 화면을 빈 틈 없이 꽉 채웠다. 여기저기서 축하 메시지도 날아들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에선 박근혜 대통령의 축사를 전달했고, 감독이 아르바이트를 했던 CJ E&M의 정태성 영화부문 대표도 축사를 보냈다. 중앙대 총장은 난을 선물했고 영화과 친구들은 학교에 현수막을 걸었다.

16일 방송되는 KBS 1TV '문화 책갈피' 녹화에선 가수 겸 배우 김창완과 만났다. 문병곤 감독은 "(김창완을) 형이라고 부르기로 했다"며 웃어보이고는 "무척 자유로운 분이더라. 오랜만에 존경할 수 있는 분을 만났다"고 말했다. 문 감독에게선 수상 자체에 대한 기쁨만큼 그를 매개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게 됐다는 즐거움이 느껴졌다.

"수상을 통해 만나고 있는 사람들이 많아요. 신기하고 좋죠. 칸 수상으로 작가적 비전이나 감독으로서 야망을 보여주게 됐다는 생각보단 그런 즐거움이 커요."

'세이프'는 문 감독이 중앙대 영화과 동기이자 영화 감독인 권오광의 시나리오를 영화화한 작품이다. 신영균예술문화재단의 단편영화 창작지원사업 필름게이트에서 후원받은 500만원과 감독의 자비 300만원이 제작비로 쓰였다. 충분치 않은 예산 탓에 촬영에 필요한 시공간도 제약적이었다. 극의 주요 배경은 환전소로 설정된 한 평 짜리 컨테이너다.

문 감독은 "공간이 많지 않아 소리를 통해 분위기와 상황을 바꾸려 노력했다"고 설명했다. 지폐 계수기가 돈을 세는 소리부터 컨테이너를 두드리는 마찰음까지, 묘한 공포감을 불러일으키는 '세이프'의 음향은 영리하게도 제약을 효과로 승화시킨 결과였다.

"돈이 없으니 컷 수도 줄어들고, 소리에 신경을 많이 썼어요. 공간이 주는 상황과 분위기를 소리로 전달하려 했죠. 옆에서 일어나는 상황을 같이 보는 것처럼 느낄 수 있게요."

단편적 사건을 그린 짧은 영화지만, 자본주의 사회에 '세이프'가 던지는 메시지는 의미심장하다. 내 돈이 될 수 없는 엄청난 현금더미와 한 공간에서 일하던 여대생은 가불금을 갚기 위해 환전소의 돈에 몰래 손을 댄다. 그가 철옹성처럼 안전해만 보이던 금고에 스스로 갇히게 되는 이야기는 '안전한'과 '금고'를 동시에 뜻하는 중의적 제목과 함께 강렬함을 안긴다. 문병곤 감독은 "사실 '세이프'는 주제 넘는 이야기였다"며 "영화를 찍으며 잘 모르는 분야에 대해 공부를 했고, 그를 통해 성장하고 싶었다"고 이야기를 이어갔다.

"관심은 있는데 잘 모르는 분야들이 있어요. 그냥 이 사회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궁금했는데, 관심만 갖기보다 알아야 할 것 같았죠. 공부를 통해 세상을 대하는 내 태도를 정리하고, 문제를 발견하고, 사람들과 이야기하고 싶었어요. 막히는 부분이 있으면 여러 사람들을 만나보고, 책도 읽고요. 뭣도 모르고 비관적이고 싶진 않거든요. 쉽게, 명쾌하게 이야기하려면 잘 알아야 해요. 모르면 아는 걸 어렵게 이야기하게 되잖아요. 확실히 안다는 생각이 들면 그걸 이해하기 쉽게 풀어내고, 마지막엔 세상을 향한 주장을 보여주고 싶어요. 그러기 위해선 나다운 태도를 만들어야 하고요."

이 젊은 감독이 선보인 13분 짜리 영화는 벌써부터 그의 장편 상업 영화에 대한 기대감을 높이고 있다. 문 감독은 '세이프'를 끝으로 단편 기획은 접고 이제 장편에 집중하고 싶다고 알린 바 있다. 머릿속에 하고 싶은 이야기는 많지만 그것이 꼭 사회 비판적 메시지인 것만은 아니다.

"'연애의 온도'를 무척 재밌게 봤다"는 문 감독은 "'세이프'에서와 같은 메시지를 더 발전시킬 수도 있지만 사회적이지 않은, 감정의 문제를 이야기하게 될 수도 있다"고 넓은 외연을 드러냈다. 그러면서도 "사실 비극인 '세이프'를 만들며 우울했다"며 "다음 영화에선 희망적이고 즐거운 메시지를 주고 싶다"는 속내를 알렸다.

"첫 번째로 중요한 건 공감이에요. 그 안에서 제가 제시할 수 있고 영화로 전달할 수 있는 저만의 태도를 보여주는 게 좋지 않을까 해요. 아마 저에게 영화는 계속 그런 도구일 것 같아요. 물론 돈을 벌면 좋고, 그래야 다음 작품을 할 수 있으니 수익도 생각해야 하죠. 쉽고 재밌고 상업적인 영화를 만들려면 메시지를 더 많이 고민해야 할 것 같아요. 저도 제가 어떤 영화를 만들게 될 지 궁금해요."

조이뉴스24 권혜림기자 lima@joynews24.com 사진 정소희기자 ss082@joy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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