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혜림기자] 이제 브라운관에서 가수 출신 연기자가 드라마의 발목을 잡는 시대는 확실히 지나간듯 보인다. 10대에 데뷔한 아이돌 가수, 뛰어난 가창력과 귀여운 외모로 사랑받았던 아이유는 두 번째 출연한 드라마에서 출중한 신인 연기자의 탄생을 확실히 예고했다.
지난 23일 방영된 KBS 2TV 드라마 '최고다 이순신'에서 아이유가 선보인 눈물 연기가 연일 화제가 되고 있다. 가수에서 배우로 활동 영역을 넓힌 지 약 2년 만에, 아이유는 극의 중심을 이끄는 주인공 역을 맡는 데 성공했고, 흔들리지 않는 존재감으로 안방극장 점령에 나섰다. '최고다 이순신'은 3주 전 방영을 시작한 후 내리 높은 시청률을 이어가며 인기몰이 중이다. 이날 방영분은 22.3%의 시청률을 기록, 주말극 최고 기록을 달성했다.
이날 '최고다 이순신'은 창훈(정동환 분)이 미령(이미숙 분)을 구하다 교통사고를 당해 숨지는 사건을 그렸다. 창훈의 죽음에 화살을 맞은 건 다름 아닌 순신. 특히나 그를 눈엣가시로 여겼던 유신(유인나 분)은 순신 때문에 아버지가 사고를 당했다고 여기기까지 했다.
이 상황에서, 아이유는 아버지를 잃은 슬픔에 잠긴 순신의 모습을 기대 이상으로 실감나게 그려냈다. 생전 아버지의 자상하고 따뜻한 얼굴을 떠올리며, 순신은 눈물을 감추지 못했다. 과하다 싶은 눈물 연기도, 억지로 짜내는 슬픔 연기도 아니었다.
아이유가 연기한 이순신은 특별한 재능도, 확실한 꿈도 없는 데다 잘난 언니들 사이에서 천덕꾸러기 신세를 면치 못하는 막내 딸이다. 연기 경력을 떠나, '국민 여동생' 아이유가 평범한 여자 아이 역을 맡아 얼만큼의 몰입도를 선사할 수 있을지에 대한 우려도 있었다. 순신은 그야말로 '그저 그런' 20대를 대변하는 인물. 일찍이 가요계를 평정한 아이유가 기존 자신의 이미지에 순신의 얼굴을 덧칠할 수 있을지에 시선이 모였다.
그러나 첫 화부터 지난 23일 방영된 5회에 이르기까지, 속은 깊지만 어리바리한 막내 순신으로 분한 아이유의 모습은 낯설지 않게 시청자에게 다가갔다.
아이유의 행보는 아이돌과 배우의 길을 나란히 걸으며 다방면에서 재능을 펼치고 있는 스타들을 연상시킨다. 수 편의 드라마에서 점차 성장하는 연기력으로 아이돌 출신의 꼬리표를 떼는 데 성공한 JYJ의 박유천, 신인답지 않은 실력으로 가수보다 연기자의 색채를 강하게 보여줬던 제국의 아이들의 임시완, 브라운관과 영화를 오가며 연기력을 쌓은 빅뱅의 탑 등이 그런 경우다.
아이유에게 보다 특별한 지점이 있다면, 그건 가수 데뷔 당시부터 그 어떤 다른 요건이 아닌 노래 실력만으로도 대중을 즐겁게 만들어줬다는 사실일 터다.
'최고다 이순신'은 주말 저녁 시간대 폭넓은 시청자들을 아우를 만한 홈드라마다. 보편적인 문법과 일반론적 주제 의식을 품는 것은 당연하다. 앞서 같은 시간대에 방영돼 국민적 인기를 얻었던 '내 딸 서영이'의 주인공 서영은 주말극의 전형성을 탈피한 입체성을 지녀 사랑받았지만, 모든 드라마가 이같은 캐릭터를 내세우길 기대하는 것은 무리다.
관건은 배우의 능력이다. 뻔한 신데렐라 스토리의 여주인공을 연상시키는 인물일지라도 어떤 배우의 호흡과 숨결을 타느냐에 따라 천차만별의 캐릭터가 안방을 찾는다. 이제 5회를 방영한 새 드라마지만, '최고다 이순신'을 보는 재미가 조금씩 아이유에게 옮겨지고 있다. 그가 자신만의 숨결과 얼굴로 순신의 성장기를 그려낼 수 있을지 지켜볼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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