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한준기자] 등번호 99번 하면 떠오르는 인물이 있다. 바로 류현진이다. 인천 동산고 시절과 한화 이글스에 처음 입단했을 때 그의 등번호는 99가 아니었다. 한화 입단 당시 류현진은 메이저리그 뉴욕 메츠에서 뛰고 있던 팀 선배 구대성이 달던 15번을 골랐다.
같은 좌완투수로 본받고 싶은 선배였기 때문에 류현진은 망설임 없이 그 번호를 선택했다. 그러나 구대성이 2006년 미국생활을 접고 친정팀 한화로 돌아왔다. 그래서 류현진은 선배에게 등번호 15번을 넘겨주고 비어있던 99번을 사용하게 됐다.
류현진은 한화가 팀 창단 후 첫 한국시리즈 우승을 차지한 1999년을 기리기 위해서, 그리고 자신이 뛰는 동안 팀을 다시 정상에 올려놓겠다는 의지의 표현으로 99번을 사용했다.
그러나 한화는 류현진의 신인시절이던 2006년 그 해 한국시리즈에서 준우승을 차지한 게 그 동안의 최고 성적이 됐다. 류현진은 팀의 에이스 뿐만 아니라 국내 프로야구를 대표하는 투수로 자리를 잡았지만 결국 한화의 한국시리즈 우승을 지켜보지 못했다.
한화에서 7년간 에이스로 군림한 류현진은 올 시즌이 끝난 후 염원이었던 더 큰 무대로의 진출에 성공했다. 류현진은 10일 오전(이하 한국시간) 계약기간 6년에 총액 3천600만달러(약 390억원)를 받는 조건으로 미국 메이저리그 LA 다저스와 계약서에 사인했다.
자신이 기렸던 선배 구대성에 이어 메이저리거가 됐다. 또한 올 시즌 국내로 복귀해 한 시즌 동안 함께 한솥밥을 먹은 선배 박찬호(은퇴)가 1994년 입단해 뛰었던 바로 그 팀 다저스에서 류현진은 '제2의 도전'을 시작하게 됐다.
류현진은 다저스에서도 한화 시절 달았던 99번을 그대로 사용한다. 그는 다저스 입단을 앞두고 자신이 사용하던 등번호 99를 미국에서도 계속 사용하고 싶다는 뜻을 내비친 적이 있다. 다저스 구단도 그의 뜻을 받아들였다. 11일 열린 다저스 입단식에서 류현진은 99번이 새겨진 유니폼을 입고 나왔다.
'베이스볼 알마닉'에 따르면 전신 브룩클린 시절을 포함에 LA 다저스 유니폼을 입었던 수많은 이들 중에서 99번을 단 선수는 2008시즌부터 3년 동안 뛰었던 외야수 매니 라미레스가 유일하다. 클리블랜드 인디언스와 보스턴 레드삭스를 거치면서 줄곧 24번을 달았던 라미레스는 다저스와 계약하면서 역시 24번을 달기를 원했다.
하지만 다저스에서 24번은 사용할 수 없는 등번호였다. 전 감독 월터 알스턴을 기리기 위해 지난 1977년 6월 24번은 영구결번 처리됐다. 라미레스는 그 다음으로 34번을 원했는데 그 번호 역시 사용하지 못했다. 다저스에서 34번은 1980년대 팀 마운드를 이끌었던 페르난도 발렌수엘라(멕시코)가 달았던 번호다. 영구결번 되지는 않았지만 다저스 선수들은 발렌수엘라를 기리기 위해 그 번호를 사용하지 않는다는 묵계가 있었다.
그래서 라미레스는 99번을 선택했다. 하지만 99번을 단 라미레스는 다저스에서 기대에 못미쳤다. 나이도 있었지만 클리블랜드와 보스턴 시절처럼 강력한 펀치력을 보여주지 못했다. 그는 3시즌 동안 223경기에 나와 42홈런에 그쳤고 2009년에는 금지약물 복용 혐의가 인정돼 50경기 출전정지 징계를 받기도 했다.
라미레스는 2010시즌 다저스를 떠나 시카고 화이트삭스로 이적했는데 여기서도 99번을 계속 사용했다. 그는 2011시즌 자신의 마지막 메이저리그 팀이 된 탬파베이 레이스에서 원하던 24번을 달았다.
다저스 선수들 중에서 라미레스 외에 가장 높은 등번호를 사용한 선수는 2006시즌부터 2008시즌까지 뛰었던 좌완투수 조 바이멜이다. 그는 97번을 사용했는데 주로 중간계투로 나와 다저스에서 3시즌 동안 13승 4패 3세이브 38홀드를 기록했다.
한편 류현진은 국내 프로야구에서 올 시즌까지 7시즌 동안 통산 98승 52패 평균자책점 2.80 탈삼진 1천238개를 기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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