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태기자] 한국시리즈 1차전은 삼성의 의도 대로 풀린 경기였다. 선발 윤성환은 깔끔한 투구로 SK 타선을 틀어막았고, 타선은 초반 큰 것 한 방으로 기선을 제압하며 투수진을 지원했다. 구원투수들은 착실한 계투로 상대의 후반 추격을 봉쇄했다.
삼성이나 SK나 두 팀 모두 '불펜야구'를 하는 이상 6회 이후에는 결과가 뒤집히기 쉽지 않다. 결국 선취점을 올린 팀이 유리하기 마련이다. 1회말 이승엽의 투런홈런이 터지면서 삼성은 경기를 수월하게 풀어나갔다. 자신들만의 '승리 공식'을 유감없이 보여줄 수 있었다.
◆사실상 1회에 승부가 갈렸다. 1회초 먼저 기회를 잡은 팀은 SK. 1사 뒤 박재상이 좌전안타로 출루했다. 그러나 3번 최정 타석 때 2루를 훔치다가 삼성 포수 이지영의 빨랫줄 송구에 횡사했다. 박재상은 한국시리즈에 첫 선발출장한 이지영을 흔들기 위해 과감한 도루를 시도했지만 결과적으로 실패했다.
이번 포스트시즌 첫 수비의 부담에서 벗어난 삼성은 1회말 곧바로 반격했다. 10년 만에 한국시리즈 무대를 밟은 이승엽의 방망이가 불을 뿜었다. 1사 1루에서 상대 선발투수 윤희상의 바깥쪽 128㎞ 포크볼을 밀어쳐 좌측 담당을 살짝 넘겼다. 이승엽도 잘 쳤지만 윤희상의 실투였다. 볼카운트 1-1에서 헛스윙을 노리고 던진 포크볼이 덜 떨어지면서 치기 좋은 공으로 둔갑했다. 산전수전 다 겪은 이승엽이 이런 공을 보고만 있을 리 없었다. 전체적인 마운드 높이에서 우위에 있는 점을 감안할 때 1회 얻은 2점은 삼성이 승리하기에 충분한 점수였다.
◆적시의 투수 교체도 돋보였다. 2-1로 SK가 추격하던 6회초 1사 2루. 안타 하나면 리드가 날아가는 순간, 류중일 삼성 감독은 과감히 투수를 교체했다. 호투하던 선발 윤성환을 투구수 73개만에 빼고 '전천후 불펜요원' 심창민을 투입했다. 사이드암 심창민은 등판하자마자 최정을 좌익수 플라이, 이호준을 3루 땅볼로 처리하고 간단히 위기에서 벗어났다. 적시에 과감히 투수 교체 카드를 꺼내든 삼성 덕아웃의 판단력이 돋보인 대목이었다.
SK 입장에선 최정이 심창민의 초구에 성급히 방망이를 돌린 게 아쉬웠다. '바뀐 투수의 초구를 노려라'는 야구 격언이 있지만 당시 상황에선 승부를 좀 더 길게 가져갈 필요도 있었다. 심창민은 올해 입단한, 이제 19세에 불과한 신인이다. 한국시리즈라는 '살 떨리는' 무대에 올라선 심창민은 손쉽게 첫 아웃카운트를 잡은 뒤 공에 자신감이 붙었다. 최대 고비를 넘긴 삼성은 심창민에 이어 7회 안지만, 8회 권혁과 오승환을 '교과서대로' 줄줄이 투입해 승부를 끝냈다.
◆'포수 이지영 카드'도 성공작이었다. '단짝' 윤성환과 호흡을 맞춘 이지영은 안정적인 투수리드와 강력한 어깨를 바탕으로 삼성 투수진을 노련하게 이끌었다. 1회 1사서 박재상의 도루를 무산시킨 송구는 이날 초반 흐름을 삼성이 유리하게 가져가게 된 결정적 요인 중 하나였다. 1점 차로 쫓긴 7회 1사 1루선 조인성의 파울 플라이를 몸을 날려 잡아냈다. 조인성의 타구는 홈플레이트와 1루 덕아웃 사이 백네트 쪽으로 솟구쳤다. 잡기에 쉽지 않은 까다로운 타구였지만 포기하지 않고 달려간 이지영은 엉덩이로 슬라이딩하면서 타구를 걷어냈다. 관중석을 가득 메운 홈팬들의 박수갈채가 쏟아졌다. 이지영은 7회말 선두타자로 나서 안타를 쳐 쐐기점의 발판을 놓는 등 공수에도 제 역할을 다했다.
7회말 삼성이 쐐기점을 내는 과정에서는 대주자 강명구의 기지가 돋보였다. 이지영 대신 주자로 나선 강명구는 보내기번트로 2루 진루한 다음 배영섭이 2루 베이스쪽 깊숙한 내야안타를 쳤을 때 홈까지 내달렸다. 공이 외야로 빠지는 줄 알고 3루를 돌았던 강명구는 공을 잡은 SK 2루수 정근우가 3루로 송구하는 순간 홈까지 파고 들었고, 결국 세이프 판정을 받아냈다. 3루로 귀루하지 않고 홈까지 내달린 강명구의 빠른 발이 추가점을 올려줌으로써 삼성은 승리를 낙관할 수 있었다.
--comment--
첫 번째 댓글을 작성해 보세요.
댓글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