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명의기자] '빅보이' 이대호(30, 오릭스)가 올 시즌 일본 퍼시픽리그 타점왕 타이틀을 차지했다. 한국 프로야구를 거쳐 일본에 진출한 선수가 개인 타이틀을 따낸 것은 사상 처음 있는 일이다.
이대호는 8일 소프트뱅크와의 시즌 최종전에서 4타수 2안타 1타점을 기록하며 유종의 미를 거뒀다. 올 시즌 이대호는 타율 2할8푼6리 24홈런 91타점 54득점 장타율 4할7푼8리 출루율 3할6푼8리의 성적을 남겼다. 타점 1위는 확정이 됐고 나머지 부문에서도 상위권에 오를 것이 유력해졌다. 퍼시픽리그는 9일 니혼햄-지바 롯데 한 경기만을 남겨두고 있다.
새역사를 쓴 것과 함께 이대호의 타점왕 등극에는 여러가지 의미가 담겨 있다. 먼저 적응력이다. 올 시즌 이대호는 일본에서 첫 시즌을 보냈다. 당초 일본에 진출할 때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것이 성공의 관건으로 꼽혔다. 결과는 '완벽한 적응'이었다.
생소한 투수들을 상대로 시즌 초반 다소 고전하기도 했지만 경기를 거듭할수록 진가를 발휘했다. 특유의 선구안을 바탕으로 좋은 공을 골라 치고 나쁜 공은 기다리며 볼넷을 얻어나갔다. 정교한 제구력을 앞세워 한국보다 한 수 위의 기량을 자랑하는 일본 투수들도 이대호와의 승부는 두려워하는 모습이었다.
동료들과의 친화력도 돋보였다. 이대호는 외국인 선수로서가 아닌 똑같은 오릭스의 일원으로서 팀과 융화됐다. 벤치클리어링이 발생했을 때는 가장 먼저 그라운드로 달려나가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입단이 결정된 뒤 "동료들에게 먼저 다가가겠다"고 말했던 것을 실천한 것이다.
첫 시즌을 성공적으로 보냈기 때문에 내년에는 더욱 뛰어난 활약이 기대된다. 한 시즌을 치르면서 상대 투수들에 대한 각종 데이터를 머리로, 몸으로 기억하고 있을 이대호다. 시즌 초반 겪었던 시행착오를 내년 시즌에는 생략할 수 있다.
무엇보다 대단한 점은 꼴찌팀 오릭스에서 타점왕 타이틀을 따냈다는 것이다. 오릭스는 올 시즌 퍼시픽리그 독보적인 최하위에 머물렀다. 57승10무77패의 성적으로 5위 지바 롯데와도 8경기의 승차를 보이고 있다. 앞뒤에서 받쳐줄 선수가 마땅치 않다 보니 이대호는 '외로운 4번타자'가 되고 말았다.
꼴찌 오릭스는 팀 득점에서도 최하위를 기록했다. 올 시즌 오릭스의 득점은 443점. 144경기를 치르며 경기당 평균 득점(3.08)이 간신히 3점을 넘는다. 그 중 이대호의 방망이로 만든 득점이 91점. 팀 득점의 20% 이상에 이대호의 힘이 미친 것이다.
물론 타격 7관왕을 차지하는 등 한국에서의 활약상을 생각한다면 부족해 보일 수 있는 성적이다. 타율도 3할을 넘기지 못했다. 하지만 일본 진출 첫 시즌, 그것도 약팀 오릭스에서 고군분투하며 거둔 성적인 것을 감안하면 훌륭했다고 표현할 수밖에 없다. 일본 프로야구가 최근 몇 년간 계속해서 투고타저를 겪고 있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시즌을 마친 이대호는 10일 귀국할 예정이다. '금의환향'하는 이대호에게 올 시즌은 일본에서 자신의 존재감을 확실히 알리며 한국 야구의 자존심까지 드높인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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