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태기자] "경기를 많이 해보면 안다. 1차전은 적은 점수차로 승부가 결정된다."
양승호 롯데 자이언츠 감독은 두산 베어스와의 준플레이오프 1차전을 이렇게 예상했다. 양 감독의 말처럼 경기는 흘러가는 듯했으나 변수가 있었다. 바로 실책이었다.
한 순간의 집중력 부족이 큰 화를 불렀다. 두산과 롯데의 준플레이오프 1차전이 열린 8일 잠실구장. 초반 롯데 쪽으로 흐르던 경기 흐름은 5회말 단번에 두산 쪽으로 바뀌었다. 롯데의 계속된 실책이 자초한 결과였다.
3-0으로 앞선 상황. 더구나 선발 송승준이 4회까지 무사사구로 깔끔하게 두산 타선을 봉쇄하고 있었다. 그러나 5회말 두산 공격이 시작되자 롯데 수비진은 귀신에 홀린 듯했다. 무엇보다 롯데의 버팀목인 베테랑 2루수 조성환의 실책이 연발됐다.
선두 임재철의 평범한 땅볼을 조성환이 제대로 잡지 못해 옆으로 흘리는 실책을 범하면서 분위기가 묘하게 흘렀다. 이어 송승준의 견제 동작 중 보크 선언으로 무사 2루.
후속 양의지의 중전 적시타로 스코어는 3-1. 갑자기 위기감에 휩싸인 롯데는 선수 전체가 뭔가에 쫓기는 느낌이었다. 다음 타자 김재호의 타구는 짧은 3루땅볼. 3루수 황재균이 잡아 2루로 던질 때만 해도 문제가 없었다. 그러나 공을 잡은 조성환이 병살을 노리고 1루로 던진 공이 그만 1루수 박종윤의 키를 훨씬 넘기는 악송구가 되고 말았다. 2사가 될 상황이 1사 2루로 변했다.
기가 산 두산은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후속 이종욱이 좌익수와 파울라인 사이에 떨어지는 2루타로 김재호를 불러들였다. 스코어는 3-2.
롯데는 계속된 2사 2루서 김현수를 고의4구로 내보낸 뒤 오른손 4번타자 윤석민과의 승부를 선택했다. 그러나 경기는 전혀 예상치 못한 엉뚱한 플레이로 분위기가 바뀌었다. 2루에 주자가 있는 점을 감안해 롯데 1루수 박종윤은 베이스에서 떨어져 있었다. 1-2루간 내야땅볼에 대비한 정상 수비를 했다.
이 때 1루주자 김현수가 베이스에서 멀리 벗어나 있는 점을 포착한 송승준은 1루로 견제구를 뿌렸다. 투수와 포수, 1루수 사이에 교감이 이루어진 견제 플레이였지만 송승준과 박종윤의 타이밍이 맞지 않았다. 1루로 뿌린 송승준의 송구는 뒤늦게 베이스로 들어가던 박종윤이 길게 내뻗은 미트를 맞고 튕기며 뒤로 빠져나갔다. 1루측 펜스까지 공이 굴러가면서 2루주자 이종욱이 여유 있게 홈을 밟아 3-3 동점.
계속된 2사 3루서 윤석민은 깨끗한 중전 적시타로 경기를 뒤집었다. 이날 처음 두산이 리드를 잡게 된 안타였다. 두 차례 실책으로 역전의 빌미를 제공한 조성환은 6회말 수비가 시작되면서 손용석으로 바뀌었다. 문책성 교체였다.
이날 5회 롯데가 범한 실책 3개는 포스트시즌 한 이닝 최다실책 타이기록이었다. 준플레이오프 2번째, 포스트시즌 전체에선 6번째 나온 진기록이었다. 이날 롯데가 범한 실책은 모두 4개. 모두가 1루수와 2루수 쪽에서 나왔다.
어안이 벙벙해진 롯데는 그래도 저력을 발휘하며 완전히 무너지는 상황은 막아냈다. 3-5로 뒤진 8회초 대타 박준서의 투런홈런으로 다시 동점을 만드는 데 성공한 것이다. 조성환과 박종윤의 얼굴도 조금은 환하게 펴질 수 있었다.
박준서의 홈런 한 방으로 가라앉았던 분위기를 살려낸 롯데는 연장 10회초 황재균의 역전 2루타 등으로 3점을 내 8-5로 승리를 따내며 실책 악몽을 어느 정도 털어낼 수 있었다.
비록 실책이 직접적으로 승패를 가른 상황으로 연결되지는 않았지만 야구의 오랜 격언을 다시 한 번 떠올리게 한 '마(魔)의 5회'였다. '가을 야구'는 작은 플레이 하나에서 경기 양상이 달라질 수 있다는 점을 한 번 더 확인한 1차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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