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상숙기자] "혹시 술 먹고 들어왔나 했는데, 진짜 땀이 있더라고."
선동열 KIA 감독은 한성구와의 첫 만남을 잊지 못한다. 기억은 애리조나 스프링캠프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선 감독이 새벽 운동을 위해 숙소를 나서는데 대뜸 한성구가 다가와 "안녕하세요"하며 인사를 했다. 새벽 5시가 조금 넘은 시각. '혹시 밤새 술 먹고 들어온 것 아냐?'하는 생각으로 "너 뭐하냐?"라고 묻자 "러닝하고 있습니다"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선 감독은 "그 시간에 러닝을 하더라. 얼굴을 자세히 보니 진짜 땀이 맺혀있더라. 그런 모습을 몇 차례 봤다"면서 미소를 지었다.
1군 합류 후에도 한성구는 쉬지 않았다. 선 감독은 "요즘에도 오전 9시 반이면 운동장에 나와 러닝머신을 타거나 웨이트를 하더라. 그리고 그라운드에서 또 훈련한다. 저렇게 하는 놈은 처음 봤다"며 혀를 내둘렀다.
이런 한성구의 성실함이 선 감독의 마음을 움직였다. 선 감독은 "야구 외에 다른 생각은 없는 것 같다. 그런 선수에게 기회를 주고 싶다. 야구 아니면 안 된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라면서 한성구의 마음가짐을 높이 샀다.
그 기회가 14일 목동 넥센전이었다. 한성구는 이날 7번 지명타자로 프로 첫 '선발' 출장했다. 전날 출장 소식을 전해 들은 한성구는 잠과 식사량까지 줄이는 등 만반의 준비를 했다. 한성구는 "이런 기회가 올 줄 몰랐다"고 감격스러워했다.
서울고-홍익대를 졸업한 한성구는 2011년 신고선수로 KIA에 입단했다. 드래프트에서 지명을 받지 못한 가장 큰 이유는 100㎏이 넘는 거구 때문이었다. 입단 테스트를 통과한 뒤 한성구는 마무리 캠프 때부터 무려 25㎏을 감량했다. 매일 아침 조깅을 한 이유도 체중 감량을 위해서였다. 한성구는 "러닝은 보험이라고 생각한다. 시즌을 치르려면 체력이 중요한데, 그 시작이 나에게는 러닝이었다"고 말했다.
한성구는 첫 선발 출전한 이날 4타수 3안타 3타점을 올리며 눈에 번쩍 띄는 활약을 했다. 특히 두번째 타석이던 3회초 2사 만루 찬스서 김병현의 직구를 밀어쳐 우익수 키를 넘기는 싹쓸이 2루타를 뽑아내 4-0 리드를 안겼다.
9회에는 투수 옆을 지나가는 강습타구를 날린 뒤 1루로 헤드퍼스트 슬라이딩하며 내야안타를 만들어내는 투지를 보였다. 이날 KIA는 한성구의 만점 활약을 앞세워 9-6으로 승리, 3연패를 끊었다. 선 감독은 "젊은 선수들의 투지가 타선에 힘을 불어넣었다"며 기뻐했다.
경기 후에도 한성구는 "아직도 심장이 요동치는 것 같다"며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했다. 구단 스카우트들은 자신을 외면했지만 뼈를 깎는 노력으로 입단 테스트를 통과했고, 1군 무대서 당당히 자신의 실력을 입증했다. 한성구의 야구가 이제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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