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혜림기자] 배우 김동욱이 필모그라피를 굵직하게 장식할만한 작품으로 돌아왔다. 오는 6월6일 개봉하는 '후궁:제왕의 첩'에서 그는 정치에도 사랑에도 무력한 왕 성원대군을 연기했다. 복잡한 심연을 눈에 가득 담고 곤룡포를 입은 '후궁' 속 김동욱은 전작들과는 180도 다른 얼굴로 관객들을 만난다.
지난 23일 조이뉴스24와 만난 김동욱의 눈빛은 시종일관 차분했다. '후궁'을 작업한 매일 매일이 고민과 부담의 연속이었다는 그는 관객들의 반응을 기다리며 숨을 고르고 있었다.
◆"나 때문에 영화 망칠까 힘들었다"
"매 신을 소화할 때마다 산을 넘는 기분이었다"고 운을 뗀 그는 "4개월의 촬영 기간 동안 하나의 산을 넘고 나면 또 다른 산이 등장하는 듯했다"고 고백했다. 그에게 성원대군은 높은 고개들이 이어진 산맥과도 같았다.
"시나리오를 보자마자 무조건 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렇지만 워낙 어려운 인물이어서 연기를 하면서도 '할 수 있을까' 싶은 마음이 들었죠. '할 수 있을거야. 무조건 해야 돼'라고 최면을 걸면서 작업했어요. 멋진 영화가 나온 데에는 감독님과 동료 배우들, 스태프들 덕을 많이 봤죠. 개봉 후 혹여 아쉬운 평을 듣는다 해도 다 인정할 수 있어요. 후회 없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했으니까요.
'후궁'은 '번지점프를 하다'와 '가을로', '혈의 누' 등 여러 작품들로 깊은 인상을 남긴 김대승 감독이 6년 만에 내놓는 신작이다. 이 역시 김동욱에게는 큰 부담으로 다가왔다.
그는 "다른 작품들보다 유독 고민이 깊었다"며 "무척이나 부담이 됐고 중간 모니터를 할 때마다 내가 영화를 망치는 것은 아닌지 싶어 힘들었다"고 털어놨다.
"캐릭터에 대한 고민이 쉽게 해결되지 않아 긴장을 늦출 수 없었어요. 특히 선배들과 함께 등장하는 장면은 더 했죠. 워낙 잘 하시니까요. 그런데 나중에 들어보니 다른 배우들도 한결같이 자신이 영화에 흠이 되지는 않을지 걱정했다더라구요.(웃음)"
◆"'후궁' 속 정사신에 사랑은 없다"
마음 고생을 한 만큼 '후궁'은 김동욱을 성숙하게 만들었다. MBC 드라마 '커피프린스 1호점'과 영화 '국가대표'로 대중에게 확실히 얼굴을 알린 그지만 이번 영화는 작품을 대하는 자세에 근본적인 영향을 끼쳤다.
"제대로 사극을 찍는 것이 처음이라 성원대군을 연기할 때 참고할만한 작품과 캐릭터를 찾아본 적이 있어요. 여러 작품들을 소개받았지만 그렇게 만들어가면 안될 것 같더라고요. 다른 작품을 참고한다는 건 결국 성원이란 인물을 제3자로서 보고 있다는 거잖아요. 비춰지는 이미지를 연기하는 것에 그칠 수도 있죠. 그래서 직접 만들어보자고 생각했어요."
'후궁'은 개봉 전부터 배우들의 수위 높은 노출로 화제를 모은 작품이다. 영화가 베일을 벗은 뒤 '후궁'의 화두는 노출이 아닌 행위의 동기, 정사의 배경에 쏠렸다. 초반의 한 장면을 제외하면 '후궁' 속 숱한 정사신들에서 사랑의 감정은 찾아볼 수 없다. 처절하게 슬픈 광기만이 번뜩일 뿐이다. 김동욱은 "감독님의 의도가 온전히 받아들여진 것 같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기존 영화들 속 베드신과 전혀 다른 장면들을 찍어보자고 하셨어요. 사랑을 나누는 행위가 거의 없잖아요. '후궁' 속 정사신들은 야하다는 말보다는 파격이라거나 자극적이라는 말이 어울리죠."
◆김동욱, '후궁'으로 30대를 열다
김동욱은 올해 우리 나이로 서른이 됐다. 그는 "인생이 30대를 맞았다는 것에는 큰 의미가 느껴지지 않는다"면서도 "연기자로서 서른이라고 생각하니 그만큼 성숙한 모습을 보여야겠다는 부담도 있다"고 고백했다.
"더이상 20대가 아니니 '어린 친구가 저 정도면…' 같은 반응을 기대할 수 없어요. 30대 배우들 중엔 연기를 잘 하는 선배들이 무척 많잖아요. 그 분들과 경쟁을 하게 될 수도 있고요. 도망갈 구석이 줄어든 셈이죠. 30대를 시작하면서 '후궁'을 만났다니 복 받은 거죠."
여전히 순정만화의 주인공같은 마스크를 자랑하는 그에게 "맡을 수 있는 캐릭터에 한계를 느끼지는 않는지"를 물었다. 그는 "처음에는 그런 생각을 했었다"며 "어릴 때는 성숙해보이고 싶기 마련"이라고 입을 열었다. 김동욱의 현답이 이어졌다.
"나이가 들어보였으면 아마 성원대군 역이 들어오지 않았을 거에요."
'후궁'을 선택할 관객들은 여전히 소년같은 그의 모습에 새삼 안도할 법하다. 그의 얼굴이 솔직한 세월을 담았더라면 김동욱의 성원대군을 만날 수 없었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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