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혜림기자] "확률의 신이 당신 편이기를."
영화 '헝거게임' 시리즈의 첫번째 편 '헝거게임:판엠의 불꽃(이하 '헝거게임')'은 확률에 목숨을 내맡겨야만 하는 이들의 절망적 현실에서 출발한다. 추첨을 통해 생존 게임에 차출될 확률, 24명의 참가자 중 유일한 생존자가 될 확률 속에서 "확률의 신이 당신 편이길 바란다"는 추첨자의 대사는 무책임하기만 하다.
극중 헝거게임은 독재국가 판엠이 혁명을 견제하고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만든 생존 전쟁이다. 일년에 한 번, 판엠의 지배 아래 있는 12개의 구역에서 남녀 각 한 명이 추첨을 통해 게임에 참가한다. 총 24명의 참가자들 중 유일하게 생존한 한 명이 우승자가 되는 게임이다.
12개 구역의 모든 사람들은 생중계되는 이 게임을 의무적으로 시청해야만 한다. 가족과 친구를 사지에 보낸 빈곤 지역의 주민들 역시 마음을 졸이며 스크린을 주시할 수밖에 없다. 이들의 모습은 화려한 옷차림을 하고 쇼를 즐기는 판엠의 수도 '캐피톨'의 시민들과 대비된다.
광업이 주 산업인 12구역에서 어린 동생을 대신해 참가를 자원한 캣니스(제니퍼 로렌스 분)는 활을 쏘는 뛰어난 실력과 남다른 패기로 게임의 우위에 선다. 그는 죽음에 대한 공포와 절망을 딛고 극한의 상황 속에서도 기지를 발휘하며 판엠의 지배자들을 당혹스럽게 만든다.
'헝거게임'은 '반지의 제왕'과 '해리포터' 등 대작들을 이을 판타지 액션 영화로 기대를 모았다. 그러나 베일을 벗은'헝거게임'이 지닌 매력은 화려한 영상과 절박함을 담은 액션보다 현 시대를 풍자한 재치있는 서사다.
극 중 살육전을 중계하는 TV 쇼는 현재 전 세계를 열광케 하고 있는 서바이벌 쇼 프로그램과 닮아 있다. 참가자들의 목숨을 건 고군분투는 오락의 소재로 소비됨으로써 현실이 아닌 스크린 속 낯선 볼거리로 재현된다. 이는 극중 시민들로 하여금 헝거게임이 반독재 혁명을 견제하기 위한 지배세력의 통치 수단이라는 사실조차 잊게 만드는 장치가 된다.
도전자들은 스타일리스트의 손을 거친 세련된 모습으로 토크쇼에 등장한다. 생사의 결투를 앞두고 태연히 웃으며 인터뷰에 응하기도 한다. 피지배층의 희생이 하나의 스펙타클로 전락했음을 은유한 셈이다.
영화 '헝거게임'의 통찰력은 독재국가 판엠이라는 배경에서도 발견된다. 12개 구역을 독재로 통치하는 판엠은 비단 영화 속에만 있지 않다. 빈곤국을 둘러싼 강대국들의 패권 경쟁은 판타지가 아니라 현실이며 극중 빈곤 지역으로 설정된 10·11·12 구역은 자본 논리에 종속된 주변부 국가들을 표상한다.
판엠의 지배자 스노우(도날드 서덜랜드 분)는 "겁을 주려면 죽이는 것이 빠르다. 그럼에도 헝거게임을 하는 것은 희망을 주기 위해서"라고 말한다. 두려움보다 강한 유일한 것이 희망이라는 그의 메시지는 생존자의 승리가 곧 지배받는 이들의 복종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믿음이기도 하다.
그러나 절망에서 시작한 영화는 주인공 캣니스의 도발로 새로운 국면을 맞으며 다음 전개에 대한 기대를 높인다. 공고했던 게임의 룰을 하나씩 바꿔나가는 캣니스의 모습에서 관객은 후속편이 다룰 혁명의 가능성을 본다.
배우 제니퍼 로렌스는 소녀와 전사의 양면적 얼굴로 주인공 캣니스를 무리없이 소화했다. 캣니스는 '헝거게임' 시리즈에서 날카로운 눈으로 활을 쏘면서도 진심을 담아 약자를 챙기는 혁명의 중심축으로 활약한다.
캣니스의 동료 피타는 조쉬 허처슨이 연기했다. 그는 "보는 순간 피타를 떠올렸다"는 게리 로스 감독의 전폭적인 지지로 캐스팅됐다.
이들의 멘토 헤이미치로 변신한 우디 해럴슨, 게임 참가자를 뽑는 추첨자 에피 역을 맡은 엘리자베스 뱅크스의 개성 넘치는 연기도 주목할 만하다.
영화는 지난 2008년 출간 이후 베스트셀러로 거듭난 수잔 콜린스의 소설 '헝거게임' 시리즈를 바탕으로 제작됐다. 원작은 3부작이지만 영화는 총 4부작으로 이어진다. 아카데미 각본상 후보에 두 차례 이름을 올린 게리 로스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다.
'헝거게임'은 지난 23일 미국에서 개봉돼 1억5천500만 달러를 벌어들이며 역대 오프닝 성적 3위로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했다. 러닝타임은 142분이며 오는 4월5일 개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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