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기범기자] 시즌 막바지 롯데의 고질적인 불안감이 다시 증폭되고 있다. 흔들리고 있는 불펜 탓이다. 뒷문 단속이 헐거워지면서 거인이 신음소리를 내고 있다.
롯데는 16일 청주 한화전에서 속쓰린 패배를 당했다. 치고받는 난타전 속에 승리의 9부 능선을 넘었지만, 불펜진의 방화로 또 한번 어이없이 무너졌다. 양승호 감독의 속은 새카맣게 타들어갔을 터다.
이날 롯데는 초반부터 한화와 치고받는 난타전을 펼쳤다. 1회초 이대호의 투런포 등으로 4점을 선취하자 1, 2회말 6점을 내줘 역전당했고, 이후 차근차근 추격해 4회초에는 8-7로 재역전 리드를 잡았다. 그 과정 속에 이대호는 3연타석 홈런포까지 쏘아올렸고, 분위기상 롯데의 승리로 판가름나는 듯했다. 특히 7회초 전준우의 2타점 적시타로 10-7까지 도망가면서 롯데의 승리를 의심하는 이는 많지 않았다.
그런데 롯데는 10-12로 주저앉았다. 8회말 1사 후 등판한 임경완이 이대수와 장성호에게 연속안타를 허용하더니 아웃카운트 한 개도 잡지 못하고 나성용에게 동점 스리런포를 두들겨맞았다. 득점공방 끝에 힘겹게 잡아낸 리드가 한순간에 동점이 됐고, 롯데의 악몽은 시작됐다.
아니나다를까, 9회말 사단이 났다. 구원등판한 이재곤이 첫 타자 대타 전현태를 볼넷으로 내보낸 것이 불행의 시작이었다. 이후 전현태를 견제로 잡아내고, 오재필을 유격수 땅볼로 솎아내 안정을 찾는 듯 싶었지만 2사 후 최진행을 볼넷으로 내보내 끝내 화를 불렀다. 불안해진 양승호 감독은 마무리투수 김사율을 마운드에 올렸지만, 그마저 가르시아에게 끝내기 투런포를 얻어맞고 말았다. 그 순간 경기는 허망하게 종료됐다.
롯데로선 속이 쓰릴 대로 쓰린 1패다. 1회초 4점을 뽑아 잡은 리드를 지켜내지 못한 선발 부첵의 부진을 화력의 힘으로 메워냈지만, 마지막 2이닝에서 불펜투수들이 홈런 2방을 내주면서 무너진 것이다. 지켜보는 팬들로서는 속이 뒤집힐 노릇이었다.
특히 역전을 경계하는 와중에 벌어진 상황이어서 아쉬움이 더욱 진하게 묻어난다. 최근 롯데는 '9.9 참사'라고 불려질 만큼 어이없는 패배를 경혐한 바 있다. 지난 9일 SK전에서 7회말까지 8-1로 리드하다 2이닝동안 7실점해 연장에 돌입했고, 연장 10회초 손아섭의 솔로포로 다시 리드를 잡았지만 10회말 김강민에게 끝내기 역전타를 얻어맞았다. 당시에도 이재곤-강영식-김사율로 이어진 계투였고, 양승호 감독은 "방심한 것이 패인"이라고 언급했다. 실제로 한 박자 느린 투수교체가 부른 역전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날 양승호 감독은 막판 방심없이 총력을 다하며 '지키기'에 돌입했지만, 믿었던 임경완, 이재곤, 김사율이 모조리 무너졌다. 그래서 더욱 불안하다. 막아내려고 나름 총력을 다했지만 홈런포를 펑펑 맞아 손쓸 도리가 없었던 것이다.
롯데에게 불펜진의 단체방화는 딱히 새삼스러운 일도 아니다. 시즌 중반까지만 해도 양승호 감독은 "7점차는 앞서 있어야 그나마 안심이 된다"라고 언급할 정도였다. 와중에 7월 들어 불펜진이 안정화되면서 롯데는 폭풍의 여름을 보냈고 뒷문에 대한 불안감은 잊혀지는 듯 싶었다.
그런데 시즌 막바지 2위 싸움이 절정에 오른 상황서 또 악몽이 되살아나고 있다. 이날 한화전 패배로 롯데는 2위 자리를 SK에 내주고 승차없는 3위로 미끄럼을 탔다. 불펜 안정 없이 롯데는 원하던 목표를 달성할 수 없다. 더욱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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